22장 15-24절
15-16.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וַיִּקְרָ֛א מַלְאַ֥ךְ יְהוָ֖ה אֶל־אַבְרָהָ֑ם שֵׁנִ֖ית מִן־הַשָּׁמָֽיִם׃
וַיֹּ֕אמֶר בִּ֥י נִשְׁבַּ֖עְתִּי נְאֻם־יְהוָ֑ה כִּ֗י יַ֚עַן אֲשֶׁ֤ר עָשִׂ֨יתָ֙ אֶת־הַדָּבָ֣ר הַזֶּ֔ה וְלֹ֥א חָשַׂ֖כְתָּ אֶת־בִּנְךָ֥ אֶת־יְחִידֶֽךָ׃
부르다라는 와이크라(וַיִּקְרָ֛א 기본형은 카라)는 기도하다, 부르짖다 라는 의미가 강하다. 진리를 넘겨주기 위한 부름이다. 11절에서 첫번째 부름이 있었다.『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첫번째 기도는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두번째는 복을 약속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의 돌판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신이라고 하여 제사를 하므로 첫번째 돌판은 깨어진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돌판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첫번째 깨어진 돌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맹세에 관한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맨세하지 말라는 것이다. 맹세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은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스스로 맹세를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스스로 맹세를 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맹세한 것을 변경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맹세대신에 계약을 하는 것이다. 계약을 어기면 보상을 해야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6장 13절에서 하나님은 맹세하실 수 있는 분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네가 이같이 행하여(아사)』네가 이 말씀을 성취하였으므로 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말씀을 어떻게 완성하였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완성의 내용은『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에트 벤 에트 야히드אֶת־בִּנְךָ֥ אֶת־יְחִידֶֽךָ׃)』이다. 유일한 아들을 독(생)자로 번역했는데, 헬라어로 모노게노스 휘오스 라고 한다. 휘오스에 해당하는 단어가 바로 벤(아들)이다. 모노게노스가 야히드(독생자)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유일한 아들은 이삭이다. 독생자는 유일한 아들로서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음욕을 품는 간음에 대해서 말을 하면서 마태복음 5장 29절에서『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눈과 손은 보고 행하는 것이다. 간음을 행하는 절대적인 것이다. 눈은 영혼의 창으로 표현한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서 일곱 눈은 일곱 영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눈은 진리를 의미한다. 진리를 보고 행하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있으면 빼어버리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핵심은 그들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돌성전인 것이다. 돌성전이 영적 간음을 불러 일으킨다는 말이다. 돌성전이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진리에 비추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영적 간음과 비유된 것이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돌성전을 마치 우상처럼 떠받드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눈과 손은 이삭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서 믿음과 약속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레, 그를 보았다 라고 말을 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이삭을 제거하는 사건이 바로 모리야 산 사건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아끼지 않은 것은 하나님 자신이 독자를 아끼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모리야 산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러나 모리야 산에서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창세기 2장 21-22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아담이 잠드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첫사람 아담이 죽으므로 하와가 분리되어 나온 것이다. 하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죽으므로 교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옛성전(그리스도의 몸)이 파괴되고(십자가에서 죽고), 새성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율법 속에 있던 옛사람의 신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눈과 손이 제거됨으로 새사람의 상도가 되는 것이다.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כִּֽי־בָרֵ֣ךְ אֲבָרֶכְךָ֗ וְהַרְבָּ֨ה אַרְבֶּ֤ה אֶֽת־זַרְעֲךָ֙ כְּכֹוכְבֵ֣י הַשָּׁמַ֔יִם וְכַחֹ֕ול אֲשֶׁ֖ר עַל־שְׂפַ֣ת הַיָּ֑ם וְיִרַ֣שׁ זַרְעֲךָ֔ אֵ֖ת שַׁ֥עַר אֹיְבָֽיו׃
복은 하늘의 복을 의미한다. 씨는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오는 복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식은 이스마엘과 이삭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의 복을 가진 씨는 이삭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대로 땅의 복을 가진 자는 이스마엘이 될 것이다. 즉 땅의 복으로 인하여 천하만민으로 번성되고 그 천하만민이 이삭(예수 그리스도)을 통해서 하늘의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큰 복이 아니라 복에 복을 주신다(כִּֽי־בָרֵ֣ךְ אֲבָרֶכְךָ֗ )고 되어있다. 앞의 복은 히브리어로 바라크(בָרֵ֣ךְ), 뒤의 복은 아바라크(אֲבָרֶכְךָ֗)다. 앞의 바라크는 땅의 복(첫사람 아담), 뒤의 복은 하늘의 복(마지막 아담)이 되는 것이다. 바라크의 실체는 쩨라(씨)이다. 바라크는 복을 주다, 저주를 하다 라는 상반된 의미가 있다. 하늘의 복은 십자가의 죽음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히브리어로 번성하다(라바) 또 번성하다 (아라바)라는 것이다.『번성하라』는 것은 땅에 온 모든 천하만민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번성하라는 것이다. 창세기 12장 1-3절에서『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이 땅의 사람, 즉 율법(이스마엘)을 따르는 자들(모래)도 많아지고, 영적으로 그리스도(이삭)을 따르는 자(별)도 많아질 것이다. 하늘의 별은 하나님의 아들(메시야)을 상징한다. 민수기 24장 17절에서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도 새벽별이라는 표현을 한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모래에 대해서 예레미야 15장 8절에서『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모래와 과부를 연결시킨다. 하박국 1장 9절에서『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모래는 포로를 의미한다.
『네 씨가 그 대적(야사브)의 성문(샤아르)을 차지하리라』문자적으로는 성문을 차지하여 승리하는 모습이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권세(πύλαι 퓨라이, 기본형은 퓨레)가 바로 문이라는 것이다. “샤아르” 라는 것이다.
대적은 원수지간이다. 별과 모래에서 대적은 모래이고 율법의 자녀이지만,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옛사람이며, 돌 성전인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성문은 견고한 진이며, 예수님은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이 옛사람의 성을 무너뜨린다. 십자가의 죽음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율법의 자녀였던 성도가 별이 되는 것이다.
18.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וְהִתְבָּרֲכ֣וּ בְזַרְעֲךָ֔ כֹּ֖ל גֹּויֵ֣י הָאָ֑רֶץ עֵ֕קֶב אֲשֶׁ֥ר שָׁמַ֖עְתָּ בְּקֹלִֽי׃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스마엘로 인하여, 땅의 복인 천하만민이 되고, 이삭을 통하여 하늘의 복인 영적 이스라엘의 복을 얻게되는 것이다. 이렇게 복을 받는 이유는『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샤마)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말을 준행하다”는 콜(קֹלִֽ)은 부르짖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의미다. 기도를 통해서 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19.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וַיָּ֤שָׁב אַבְרָהָם֙ אֶל־נְעָרָ֔יו וַיָּקֻ֛מוּ וַיֵּלְכ֥וּ יַחְדָּ֖ו אֶל־בְּאֵ֣ר שָׁ֑בַע וַיֵּ֥שֶׁב אַבְרָהָ֖ם בִּבְאֵ֥ר שָֽׁבַע׃ פ
브엘세바는 일곱이라는 우물이며, 약속의 성취로 살았다는 것이다.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브엘세바라는 우물로 표현된 것이다.
20.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이 일 후에』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말씀을 마치고, 리브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 세명의 아들, 즉 아브라함 나홀 하란이 있었다. 그런데 셋째아들 하란에게서 난 딸 밀가가 삼촌인 나홀과 결혼을 해서 자녀들을 낳은 것이다. 그 나홀과 밀가가 결혼해서 나은 아들이 부두엘이고 그 부두엘이 나은 딸이 리브가다. 창세기 22장에서 소개하는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이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사라를 통하여 이스마엘과 이삭을 낳은 것처럼, 리브가도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에서와 야곱은 이스마엘과 이삭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에서는 활쏘는 자이고(에돔의 조상), 야곱은 이스라엘이다. 영적으로는 이스마엘 즉 땅의 사람들이고, 야곱은 하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해 리브가를 이렇게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지금 이삭은 자기 아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치밀하게 그 이삭을 위해 여호와 이레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22장 마지막 부분에 족보가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나홀의 열두 아들 중 브두엘이다. 브두엘의 딸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고 야곱의 어머니가 되고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할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브엘세바로부터 800km나 떨어진 밧단아람에서도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