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적어간 사람이 경화 너 밖에 없구나. 급하게(?) 오나라..
다른 친구들 주소는 챙겼는데 토목과 애들꺼만 못 챙겼다. 훗.
다들 잘 지내지? 나도 잘 지낸다.
오늘이 9월10일.군대온지 딱 7일째 되는 날이다. 추석 연휴라고 이렇게 편지 쓸 시간도 다 주는구나.
부모님한텐 이미 썼고, 팔도 아픈데 한장 보내서 가장 많이 답장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해서 너희에게 쓴다. ㅋㅋ
편지 받는 즉시 까페에 주소 올리고 위문 편지 쓰라고 해라.
뭐 사실 오기 전에 그렇게 떨리지도 않았지만 막상 와보니 역시나 별 거 아니다.. 훗. 나는 강하다.
원래 침대에서 자던 것도 아니라 잠자리 불편하지 않고 밥도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다. 사람들이 하도 군대 짬밥 맛 없다고 해서 입이 고급인 나는 그게 제일 걱정 됐는데..
음 어느정도 나면 "신세계 푸드"정도?
자생관 신세계 푸드에 길들여진 나는 전혀 거부감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신세계 푸드 만세!! 만세!! 만세!!
쫌 어리버리한 애들이 아직까지 큰 소리로 말 안해서 혼나는데 나는 처음부터 큰 소리가 나왔다. FM이라고 생각하니 쉽드라.
우리 내무실에서 내가 제일 엘리트다. 아마 우리 소대 통틀어도 그럴꺼다. ㅋㅋ 놀랍지 않냐?
그래서 근무자 현황판이란 걸 맡았다.
밤에 불침번 서는 사람 명단 작성해서 보고하는, 아주 아주 똑똑한 사람만 할 수 있는거다.
내 이름이 독특해서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내 이름은 우리 내무실 애들 다 외었다.
"야! 26번 신발 정리해" 이렇게 말하는데 나한테는 다 "계왕아"라고 말한다. 놀랍지 않냐? 훗.
내 옆에 옆에 앉은 애가 알고보니 단대부중, 휘문고 후배다. 2살 어리다.
처음에 모리고 말 놓다가 어제 알았다. 말 높이라고 했더니 "여긴 군대야~^^*"라며 웃는다. 카리스마로 압도해서 지금은 형이라고 부른다. 훗
'일체 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원효스님이 중국으로 유학 가다가 해골바가지에 있는 물 먹고 깨달았다는 바로 그것이다.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렸다.
의식적으로 마음 달리 먹으려고 노력하니 적응도 빨리되고 좋드라. 밥 맛 없어도 신세계 푸드 생각하며 맛있게 먹고 얼차려 힘든 거 살 빠진다고 생각하면 덜 힘들다.
팔 굽혀 펴기를 좀 했더니 벌써 근육 나올려구 한다. 울룩불룩.. 뿌듯하다.
이제 바느질도 잘한다. 못하는게 없다.
저번에 부사단장이자 목사님이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군대 오기 전에는 그 노래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그 노래 들으니 눈시울이 붉어지드라.
종교 행사 갈 때 불교로 갔는데 초코파이 하나 줬다.
교회에선 오늘 햄버거와 콜라 준댄다. 오늘 교회 갈끄다.
의식이 족해야 예를 차리지..
아. 군대오니 좋은 점 한 가지는 전혀 우울하지 않다는 거야.
예전엔 뭐가 그리 꿀쩍꿀쩍 했는지..
여기 중위가 여자인데 25살 이랜다. 열리 이쁜적 하는데 못 봐 주겠다.
화나면 "개새끼야!!" 하면서 소리치는데 좀 귀엽긴 하다.(내가 변탠가?)
군대 오기 하루 전에 메신저로 공부방 애랑 상담했는데 꿈이 없댄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지금부터 공부한다고 대학 갈 수 있을꺼 같지도 않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은 해줬지만 나도 사회인이 아닌 이상 대학만 가면 장땡이라고 장담할 순 없었다.
그러나 이젠 걔네에게 추천해줄 수 있다. 여군 되라고..
특별히 공부 잘 못해도, 집에 돈이 없어도 특전사 들어가서 대통령 앞에서 낙하시범 조이면 중위달고 월금 200나온댄다.
세상엔 할 수 있는게 참 많다고 느꼈다.
걔네를 가르치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꿈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지금은 막연하게 꿈만 있지만 앞으로 부딪히며 살다보면 언젠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군대오니 참 다양한 애들이 있다.
이런 비슷한 감정을 대학 처음 들어와서 느꼈었다.
비슷한 동네에 비슷한 학군, 비슷한 생활을 하며 지낸 아이들만 만나다가 대학들어와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애들을 보며 느꼈던 것.
그래도 다 고대 올 정도의 비슷한 실력이고 다 착하지만..
여긴 고졸, 중퇴도 있다. 아니 많다.
편부, 편모, 이혼, 고아, 양부모인 애들도 반 정도 된다.
이런 애들 앞에서 "아~ 엄마 보고싶다." 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점점 커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재밌다.
여긴 험상궂게 생긴 애도 삭발시켜놓으면 다 똑같다. ㅋㅋ
그대도 여기 온 애들은 다 몸 건강한 애들이지만 나중에 사회나가면 몸도 부자연스러운 사람도 많이 만날테지..
아띠~ 편짖 모자란데 많이도 썼다.
여기 나눠준 편지지 외엔 더 없댄다. 우표도 마찬가지.
답장쓸 때 안에 꼭 여분의 편지지와 우표 몇장, 봉투를 꼭 동봉해 주면 고맙겠다.
다른 애들한테도 꼭 그리 일러라!
쫌 있음 고연전이네..
고연전 재밌게 잘 보내고 다른 애들한테도 잘 지내고 공부 잘 하라고 안부전해주렴.
그럼 이만.
PS1. 답장 쓸 때 편지지, 우표, 봉투 넣는거 꼭 잊지마라!!
PS2. 훈련병 때는 면회 안된다. 자대배치 받으면 면회와라.
벌써 오려고 하지 말고...ㅋㅋ
PS3. 추석 연휴 꼈다고 7주 교육이다. 3일 쉬고 일주일 더 한다. ㅠㅠ
10월 25일 퇴소니까 일찍일찍 답장써서 편지지 공급해 주라.
지금 4장 남았다.ㅠㅠ
여기까지가 곽계가 보낸 편지다.
쉼표하나, 마침표하나 전부다 곽계가 쓴대로 고대로 적느라(중간에 틀린 철자 고치고자하는 충동이 왈칵 들었으나..꾹~참았음) 눈도 아프고 손가락도 뻐근하다야.
군대가더니 디게 쎈치해지셨구만..ㅋㅋ
곽계한테 편지 써 주고 싶으면 아래 주소로 우표1장 넣어서 보내줘라.(생각해보니까 봉투는 뒤집어서 써도 될것 같드라. 편지지도 앞뒤로 적으면돼고..^^;;)
첫댓글 와...역시 곽계 멋지당!! ^^ 몸 건강히 훈련병 생활 잘 하길 기도할게!! 곽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