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미녀 통해 전통적 정치문화 비판
- 젱 리우(Liu Zheng)
젱 리우는 1969년 중국 허베이 성에서 출생, 현재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다. 신문사 사진기자로도 활동한 바 있는 젱 리우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인이 현대사회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모습을 포착해내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4대 미녀’는 중국 역사 속의 대표적인 미녀인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의 초상을 전통적 방식의 개인초상이 아닌 황제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함께 등장시킨 누드 그룹 초상화이다. 4대 미녀들의 미모에 집중하기보다는 황제들의 정치적인 음모와 남성들의 야망에 이용 당하고 결국 희생양과 전리품으로 전락하는 여성들의 기구한 운명에 초점을 맞춘 작품. 이 작품에서 젱 리우는 4대 미녀의 비극적인 말로를 통해 에로티시즘과 폭력으로 점철된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동화속 정형화된 여성상의 뒤집기
- 미와 야나기(Miwa Yanagi)
미와 야나기는 1967년 일본의 고베에서 출생, 현재 교토에 거주하며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한 전시활동을 하고 있다. 대도시의 상업공간 속에서 마치 복제인간처럼 서있는 ‘엘리베이터 걸’ 시리즈로 처음 등단했으며, 2000년부터는 ‘나의 할머니들’과 ‘나의 손녀들’ 시리즈를 통해 남성중심사회에서 보여지는 정형화된 여성상에 대한 발언을 지속해 왔다. 이번 출품작 ‘우화 시리즈’는 동화 속에 숨겨진 다양한 상징들로 내면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여성과, 위험과 공포로 가득 찬 감각적 에로티시즘을 시각화하고 있다. 작가는 흙, 물, 불, 눈 등의 자연적 요소에 양모, 깃털, 털가죽, 머리털 등의 촉각적인 성적 상징을 개입시키는 제시를 통해 비가시적 요소로 가시화되는 에로티시즘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면을 쓰거나 주름투성이로 재현된 늙은 여자는 그 자체가 그로테스크의 표상이자 소녀 속에 내재된 미래의 공포를 예견시킨다. 여성 신체의 성적 함의 대신 촉각적인 에로스의 공간을 제시하면서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콘크리트로 내몰린 태국 코끼리
- 마니트 스리와닛품(Manit Sriwanichpoom)
마니트 스리와닛품은 1961년 태국 방콕에서 출생, 도시화, 환경문제와 같은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주제로 사진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의 사진은 세계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정신을 담고 있다. 대표작 ‘분홍빛 남자 시리즈’는 소비주의에 물들어 이전 세대의 희생을 잊은 현대 태국인들에게 과거 세대의 희생과 현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 보도록 하는 작품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는 방콕 시내를 누비는 코끼리들을 소재로 한 ‘콘크리트 정글’이 출품된다. 전통적으로 불교와 태국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던 성스러운 상징인 코끼리가 현대에 와서는 뜨거운 콘크리트 위에서 관광객이나 상대하는 눈요기거리나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세태를 비판하며, 현대 태국사회에서 코끼리를 위한 새로운 자리는 없는지 의문을 던진다.
디지털로 재탄생한 중국의 기록사진
- 장 달리(Zhang Dali)
장 달리는 1963년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 현재 중국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대화와 자본주의로 변화되고 있는 중국의 사회적 혼란기를 그리고자 한 작가는 중국도시의 새로운 집단계층을 이루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흉상을 사진으로 담거나 합성수지로 제작한 익명의 얼굴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해 자본주의를 추구하면서 발생되는 중국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번 출품작은 100여개의 디지털 프린트 사진들로, 화보 또는 기사에 실렸던 중요한 기록사진들과 그 속에 담긴 문화적 특수성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디지털 영상기법으로 변형한 것들로, 서로 쌍을 이루어 설치된다. 작가는 이 사진을 통해 관객들이 실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불교고전의 재해석
- 홍 레이(Hong Lei)
홍 레이는 1960년 중국에서 출생, 현재 중국 남부의 장쩌우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중국의 거의 모든 고전이 불교적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옛 대가 중 한 사람인 리안카이의 ‘산에서 내려오는 석가모니’라는 작품에 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석가모니의 몽환적 이미지와 세속적 인습에 사로잡히지 않은 시선 처리가 잘 표현된 원작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재현기법을 통해 현실적인 사진작품으로 재구성한다. 원작에서 석가의 모습은 평화롭고 자비로워 보이지만 홍 레이의 작품 속에서는 놀라 눈을 부릅뜬 표정을 하고 있다. 작가는 원작 속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극적인 이미지로 연출해낸다.
역사적 장소의 입체화된 풍경사진
- 손봉채(Shon Bong Chae)
손봉채는 1967년 전라남도 화순에서 출생, 현재는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물리적인 시간들이 쌓이면서 이루어진 특정 장소의 현재 모습을 통해 정신의 시간에 집적된 역사의 기억을 불러낸다. 작가는 우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남도지역의 특정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던 장소를 찾아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리고 각 사진이미지를 여러 장의 투명 아크릴이나 유리 위에 전사시켜 몇 겹의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입체화한다. 이렇게 완성된 손봉채의 입체 풍경은 보는 시점, 시각, 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데, 이는 마치 수묵의 농담과 공기원근법으로 표현된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이것은 또한 사진, 설치와 동양화 표현어법이라는 상이한 요소들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조형언어로, 손봉채가 기존의 기계적 설치작업과 그림자 작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꾸준히 시도해 온 동서양 조형성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아랍의 전쟁과 혼란 재현한 18점
-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y)
아크람 자타리는 레바논의 사이다에서 출생, 베이루트에 거주하며 비디오 아티스트, 큐레이터, 필름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중동의 역사와 아랍문화에 대한 선입관을 깨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출품작 ‘디스 데이(This Day)’는 점점 심각해지는 중동도시들의 안전문제를 다룬 비디오와 사진작업으로 전쟁 중의 중동도시들을 대상으로 한 진행형 프로젝트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내러티브한 전쟁의 모습을 재현한 전쟁사진 18점이 전시되며, 사진과 함께 ‘폭풍 후에(After the Blast)’라는 베이루트의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100여 컷의 이미지들로 구성된 포스터가 전시장 바닥에 함께 놓인다.
일곱 개 채널 통해 본 하나의 사건
- 멜릭 오하니언(Melik Ohanian)
아르메니아계 프랑스 출신인 멜릭 오하이언은 1969년 프랑스 리옹에서 출생, 몽트펠리에 순수미술학교와 리용 순수 미술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비디오나 사진 또는 텍스트를 이용한 멀티미디어작품을 통해 영토와 공간의 개념을 탐구하며,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근원을 추적하고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에는 일곱 개의 채널 비디오 작업인 ‘7분 전’을 통해 서로 상충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미지를 한면이 아닌 사물의 모든 면에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일곱 개의 장면은 하나의 사건이며, 관객은 한 번씩만 보여지는 일곱 개의 이미지를 통해 사건이 발생한 전후를 보게 된다. 각각의 스크린마다 내용과 서스펜스를 곁들여 시간과 공간이 서로 분리되어 상충하는 새로운 영역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글 진달래기자(월간사진 2006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