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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2026.03.16. (월)
새벽기도회
(2026.02.13. 새벽기도회)
인도 : 담임목사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송 :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인도와 보호]
1.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후렴]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아멘
2.
때때로 괴롬 당하면 때때로 기쁨 누리네
풍파 중에 지키시고 평안히 인도하시네
3.
내 주의 손을 붙잡고 천국에 올라가겠네
괴로우나 즐거우나 예수가 거느리시네
4.
이 세상 이별할 때에 마귀의 권세 이기네
천국에 가는 그 길도 예수가 거느리시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성경 : 행 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4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my only aim is to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od news of Godʼs grace.
말씀 : 담임목사님
https://www.youtube.com/watch?v=jTp5vLwQEUE
제목 : 결승점의 아름다움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 런닝
런닝이 인기 있기 위해서는 신앙도 인기가 있어야 한다.
런닝은 신앙과 공통점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폭탄 --- 2013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결승점 근처에서 폭탄이 터졌다.
결승점 --- 결승점까지 완주할 수 있는가?
바울의 결승점까지의 RUNNING
1. 분명히 결승점의 방향을 알아야 한다.
- 마라톤은 정해진 코스를 그대로 뛰어야 한다.
- 결승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의미가 있고 뛸 수 있다.
2. 주님을 알게 되면 우리의 인생의 결승점이 바뀐다.
바울의 세상에서의 성공 =>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
=> 오직 주 예수께 받은 복음을 위한 사명으로 목표가 바뀌게 되었다.
미국 어떤 목사님 =>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가짐 => 결승점이 바뀜 => 주님께 도달하는 것
'승리가 무엇인가'를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승리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 매일 새벽 예배만 나와도 승리하는 것이다.
- 성경 읽기 : 매일 성경을 몇장씩 읽겠다. => 실천 => 성공
* 쓸데없는 승리에 목숨 걸지 않아야 한다.
예배, 하나님께 칭찬 받는 것
영화 [불의 전차] ---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 경기 금메달 리스트 '에릭 리델'
하나님을 바라보고 결승점을 향해 뛰는 런닝을 해야 한다.
마라톤은 후반부가 힘들다. Wall을 만난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한다.
관중이 있으면 선수들이 힘을 낸다.
박수가 없는 자리에서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
선한 일을 할 때 낙심하지 말고 결승점을 바라보고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인내의 본을 보여 주셨다.
인내가 귀한 것이다.
우리도 인내하여 결승점을 향해 뛰어가야 한다.
결승점에는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결승점에는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우리에게 주신다.
담임목사님 기도
주기도문 --- 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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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명성교회
구역성경공부교재
2026. 03. 13.(금)
고린도후서(13) :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본문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Awaiting the New Body
1 For we know that if the earthly tent we live in is destroyed, we have a building from God, an eternal house in heaven, not built by human hands.
2 Meanwhile we groan, longing to be clothed instead with our heavenly dwelling,
3 because when we are clothed, we will not be found naked.
4 For while we are in this tent, we groan and are burdened, because we do not wish to be unclothed but to be clothed instead with our heavenly dwelling, so that what is mortal may be swallowed up by life.
5 Now the one who has fashioned us for this very purpose is God, who has given us the Spirit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6 Therefore we are always confident and know that as long as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way from the Lord.
7 For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8 We are confident, I say, and would prefer to be away from the body and at home with the Lord.
9 So we make it our goal to please him, whether we are at home in the body or away from it.
10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so that each of us may receive what is due us for the things done while in the body, whether good or bad.
■시작찬송가
438장(통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주와 동행]
■헌금찬송가
449장(통377장) 예수 따라가며 [ 제자의 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잠시 머무는 나그네입니다. 우리의 몸은 언젠가 벗게 될 장막과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영원한 집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부활 신앙은 단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이 땅의 삶도 귀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영원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믿음, 그것이 바로 장막 신앙입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며 우리 안에 있는 이 귀한 소망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 무너지는 것과 영원한 것
고후 5:1-4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아느니라”라는 고백으로 이 말씀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고 붙잡아야 할 진리는 이 땅의 몸은 잠시 머무는 장막이지만, 하늘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진리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부활을 아는 것, 영생을 아는 것, 하나님의 약속을 아는 것이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됩니다. 가정과 교회가 기준점이 되어야 하듯, 우리 신앙의 기준점은 바로 부활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됩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을 ‘장막’에 비유합니다. 장막은 텐트와 같아서 임시적이고 제한적입니다.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한 집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막 신학은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진리입니다.
하늘 장막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고후 5:6,8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바울은 주님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죽음을 원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섭리의 정점은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마지막 그날에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섭리입니다.
바울은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4:8)”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입니다. 그날이 우리 믿음의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 진정한 장막 신앙
우리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모세처럼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으면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가는 길 가운데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장막의 신앙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걸어가지 말고, 믿음의 눈을 뜨고 믿음으로 걸어가시길 축복합니다. (2022.09.07. 수요기도회 중)
[말씀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Q7JtRq0aqAM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라
고후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장막의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믿음의 신앙’입니다. 부활과 장막에 대한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영어로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길을 걸었고, 롯은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눈으로 산다는 것은 눈에 보기 좋은 것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그때마다 이 장막은 잠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영원한 장막을 바라보며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믿음의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땅에서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고후 5:9-10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장막 신앙의 마지막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몸을 입고 있을 때도, 몸을 벗을 때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원한 집이 있다고 해서 이 땅의 삶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이 땅의 삶을 빨리 끝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잘 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 충실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장막, 이 몸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을 잘 돌보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장막 신앙입니다. 동시에 이 장막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영원한 집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 하나님 앞에 기쁘게 서기 위해, 오늘 이 땅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믿음의 것을 선택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풍성한 나눔을 돕는 질문
1. “우리가 아느니라”는 고백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2. 나의 삶의 기준점은 무엇인가요? 가정, 교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의 삶에서 어떤 기준점이 되고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3. 이 땅의 삶과 하늘의 소망 사이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라”는 말씀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요? 혹시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봅시다.
▶ 장막 신앙
존 칼빈은 장막 신앙이란 세상의 안락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의 닻을 하늘에 내린 채 매일매일 영적으로 행진하는 ‘순례자의 태도’ 를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장막 신앙은 이 땅의 삶이 잠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것에만 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을 바라보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장막 신앙은 현실을 포기하는 신앙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며 오늘을 더 책임 있게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한마디 : 영원한 집을 소망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됩시다!
공동 기도 제목
1.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대통령, 안보, 외교, 통일 등)
2. 교회를 위해서(교회와 속한 기관 및 봉사자, 교역자, 선교사 등)
3. 해외선교지를 위해서(에티오피아 MCM, 캄보디아, 필리핀 등)
4. 국내선교와 기관선교를 위해서(안동성소병원, 소망교도소, 장학관 등)
5. 교회 안의 이웃을 위해서(군장병, 해외유학생, 환자 등)
6. 세상의 이웃을 위해서(새터민, 이주노동자, 노숙자, 소년소녀가장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