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팬인지라 호기심에 한번 읽어봤습니다.
1995년에 일어난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인데
거부한 많은 사람들을 빼고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만을 실었는데도 상당히 방대한 내용입니다.
소설을 쓸때처럼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피해자들의 진솔한 말을 경청하려 노력한 모습이 보입니다.
책을 읽고 느낀점들은...
1. 일본 수도권 사람들의 통근 생활이 놀랍도록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만원전철안에서 낑겨서 가는 모습이라던지,
최대한 내릴것 같은 사람 앞에서 내리기를 기다리고, 앉아서 가기위해 지하철구간 시작역에서 내려 줄을 서서 열차를 몇대 보내고
앉아서 가는 모습등, 제가 한국 수도권에서 보고 느낀 모습과 정말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착석에 대한 욕망은 일본과 한
국의 승객에게 똑같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그 욕망을 서비스로 충족시키고 이익으로 가져갈 방법, 착석서비스를 빨리 한국
에도 도입해야겠다고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2. 옴 진리교는 정부 관청가로 통근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는 점입니다. 테러가 발생한 노선은 치요다선 요요기우에하라방
향, 마루노우치선 오기쿠보, 이케부쿠로방향, 히비야선 나까메구로, 키타센쥬방향 입니다.
처음에는 혼잡한 노선을 골라서...라고 생각했지만 그 기준이라면 긴자선과 토자이선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테러 목표가 되었던 세 노선은 모두 관청가가 몰려있는 카스미가세키역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실행범들이 사린봉지를 터뜨린 시점
또한 카스미가세키역에 다가가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옴진리교의 정확한 목적은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지만 자기들이 타락했다고
생각하는 일본 정부의 관료들에게 일침을 가하려는 의도가 아니였는지....
3. 많은 사람들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역무원들은 피해를 입은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사린봉지를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목숨을 잃게된 역무원들도 있었습니다. 승객들중에는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떻게서든 회사에 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린 중독으로 몸이 거의 최악의 상태에 이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승객들은 회사에는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
다. 자신의 몸을 생각하면 올바른 판단은 아니었지만 출근에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도시시민의 무관심함도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고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평소의 제 행동 패턴을 생각해봐
도 대부분의 경우 저도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침 출근시간의 경우 자신의 직장으로 가는 일이 너무나 바쁜 나머지 조
금 이상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그사람 나름의 사정이 있겠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자기 갈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꽉 짜여진 도시의
생활로 사람들이 다른사람에대한 생각을 할 여유조차 박탈시킨것 같은 그런 슬픈 기분도 들었습니다.
5. 그외에...
역무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피해를 줄인 히비야선, 치요다선의 경우와 달리 마루노우치선의 경우 사린이 살포된 열차가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림 운행을 하며 피해가 계속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치요다선과 히비야선의 실행범에 비해 마루노우치선의
실행범이 사린봉지를 불완전하게 찔러 급격한 피해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일본의 철도에
서도 안이한 모습이 보일때도 있었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외상후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었지만 결국은 대부분 다시 지하철을 타고 통근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만큼 다들 '대안이 없다'라고 판단하는것 같습니다. 통근 방법을 조금 바꾼사람도 지하가 두렵기 때문에 JR을 이용하는 정도였습
니다. 아마 한국이였다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다수 자가용이나 버스로 통근방법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만
큼 일본에서는 시내도로정체가 극심하고 주차사정이 더 열악하기 때문에 철도의 비교우위가 더 강한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한 역무원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다큐, 토큐, 세이부등에의 취직도 고려했지만 결국은 에이단 지하철(현재의 도쿄메트로)
을 선택했고 잘했다고 생각되는점중에 하나가 철도회사에 들어갔는데 백화점으로 발령날일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사철
회사들의 다른사업에의 진출이 느껴지는 구절이었습니다.
책에 실린 인터뷰의 양이 워낙 방대하고 읽다보면 서로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일본의 지하철 시스템과 그 속
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큰 사건으로 드러난 시스템의 결점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분은 각 열차별로 인터뷰 1~2개씩만 읽어도 대충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