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후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연탄 난로에 불을 피우는 일
신문지를 지피며 마른 나무로 그리고 부수러트린 연탄에 불을 지피기까지
초벌과정에 나는 연기가 순간적으로 호흡을 잠시 숨죽여 오만상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내 습관화 된 익숙한 솜씨로 그 과정을 마무리 한다.
대부분의 상점에서 동시에 시작되는 이 작업은 상가지역을 온통 매캐한 연기로 가득 메우는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 청도 구 도심의 상가내 겨울 난방은 대부분 석탄 그리고 연탄을 시용한다.
일반적으로 연탄은 화덕에 밑불을 두고 그 위로 새로운 탄을 올려놓아 구멍을 맞추어 일정한 시간을 유지한 후
정해진 시간에 갈아주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연탄을 일부러 부스러트려 사용한다.
이게 화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다.
2009년 12월 기준으로 19공탄 연탄 한 장 가격은 80전
보통 하루 8장을 태우는데 비용을 따져보니 하루 6원 40전, 한달이면 192원,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35,000원 정도이니
한달 난방 비용으로는 싼 편이다.
그는 일본 마쓰다자동차 부품대리점을 하고 있다.
규모는 작은편으로 주로 엔진부품이나 하체부품 위주로 장사를 한다.
가끔 사고차의 판금부품도 처리하는데 그 때 그의 모습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쓰윽 문지르면서
사뭇 비장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럴 수 있는 것이 한마디로 그 날은 대박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판금부품의 매출은 상당하다.
점심을 먹고나면 하나 둘 상가 중심에 있는 그의 사무실이나 맞은편 나의 사무실에 사람이 든다.
업자간의 한담을 나누려는 생각에 찾아 오지만 그 것은 곁들이는 것이고
이내 주위에서 두는 장기에 모두들 빠져든다.
그의 장기수준은 남바 2
남바 1은 바로 옆 상가의 블랙스톤 타이어 판매상 라오따이다.
남바 1과 남바 2의 장기는 막상막하로 중간에 끝나는 경우가 없다.
실력차이가 크면 중간에 싱겁게 승패가 결정나지만 이 두 사람의 장기는 언제나 장기전이다.
중국장기의 특성상 모든 장기알이 제 역할을 끝내고 최후를 맞이 할 때에 거의 승패가 나는 관계로
한 판의 장기가 거의 바둑 한 판 수준의 시간이다.
그 기다림의 미학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과 중국장기의 차이점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상의 역활이 제일 돋보인다.
한국의 상은 밭전자에 한 일자가 더 붙어 활동범위가 넒은 반면
중국의 상은 정확히 밭전자로 정해진 길 이외는 갈 수가 없으며 특히나 중앙을 즉 상대방의 진영을 넘을 수가 없다.
한국의 장기는 상이 종횡무진 내달리며 승부를 빨리 끝내려는 빨리빨리의 습성이 있는 반면
중국의 장기에서 상은 철저히 제 자리를 지키며 거미줄 같이 상대의 길목을 차단하는 함정의 묘미가 있다.
자신이 중국장기를 두면서 느꼈던 가장 무서웠던 점이 바로 이점으로
무언가 빨리 이기려는 마음에 서두르다 결국에는 그 함정에 덜컥 걸리는 것이다.
나중에야 그 것을 알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보지만
오히려 답답함과 초조함은 한 층 배가되어 도무지 그들을 감내 할 재간이 없다.
그는 나의 장기 사부이다.
어떻게든 상대를 답답하게 만들라는 즉 상대가 무엇을 둘 지 막연하게 만들라는 그의 주문이다.
한판 한판 그와 교류가 쌓이면서 나는 중국장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길가에서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의례이 벌어지는 장기판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흥미거리로
나는 종종 길거리에 그들과 같이 쪼그려 앉아 담배도 얻어피며 수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다.
특히나 터미날 같은 곳에서 두는 야바위장기도 재미가 있다.
예전 한국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 개꾼들이 바람을 잡고 어리버리한 사람을 상대로
외통수로 몰아 넣는 그 수가 신기하여 나의 사부에 자문을 구해보았는데 역시 이길 수 없는 수다.
그 판을 그대로 재현하여 수십가지 경우의 수를 늘어 놓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절대로 그런데 휩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사부의 말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있다.
그럭저럭 2년 정도 배우고 나니 자신의 장기 수준이 상가내에서 중간정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부지기 수다.
이른바 국가 대항전 명목으로 그 들은 나를 선호하였다.
여기까지 한 폭의 그림같은 정겨운 풍경이지만 사부의 진 면목은 이제 부터다.
뺨을 맞고서도 훈수를 둔다는 속담이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디서 누가 장기를 두고 있으면 그는 가계의 전화를 핸드폰으로 옮겨 놓고 그 자리의 가운데에 낀다.
그러면 장기두는 두 사람은 그를 경계하며 훈수두지 말라고 경고를 하지만 이내 못 미더워하는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중반쯤 되면 십중팔구 사단이 난다.
그렇게 하지 말래도 그게 자신의 의지대로 안 되나 보다.
그는 훈수를 두다 두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직접 제 손으로 장기알을 옮기기까지 한다.
그러면 당사자는 그의 손을 내리치며 기울어가는 판세를 화풀이 하듯 그를 탓하다가 계속되는 그의 훈수에
결국 참다못해 장기판을 엎어버리고 그의 멱살을 잡고 대판 싸우는 형국이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다.
더하여 그는 웃통을 벗이 재끼고 남산만한 배를 들이대며 연신 침을 튀겨 가면서 자기말을 안 들어서 졌다는 등
알려주면 고맙다고 하지 왜 자기한테 책임을 떠넘기냐며 스스로를 강변한다.
밖에서 일을 보고 상가에 들어설 때 심심챦게 들려오는 그의 싸우는 목소리를 들으면 반갑기도 하고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사무실에서 한참 일하는 중 소음속에 들리는 그의 격양된 목소리에 옆자리의 파트너는 또 시작이구나 하는 푸념도
어느새 익숙해 졌다.
몇 번 중간에서 뒷 수습을 하다 지쳐버린 나는 어느정도 판의 형세를 읽고는 일찌감치 자리를 뜨거나
그의 눈을 벗어나 몰래 다른 사람과 한 판의 장기를 두는 스릴를 맛보기도 한다.
그래도 용케 나를 찾아내 옆에서 훈수를 두는 그가 참 대단함을 건너뛰어 경의를 표할 수준이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판의 장기는 남바1 라오따이와의 결전이다.
나의 사부와는 열 판에 한 판 정도는 이기는데 그에게는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먼저 장기판에 마주 앉으면 그의 포스가 강렬하니 느껴지는 것이 스스로 기가 죽는다.
여러방법으로 공격을 해도 철옹성같은 그의 수비는 빈틈이 없어 뚫을 수가 없다.
제 풀에 지쳐 공격을 뒤로하고 수비로 전환하면 특히나 의미없는 한 수를 두고나면
그 때부터 무지막지하게 쳐들어오는 공격에 속수 무책이다.
오랜 과정을 지나 남바 1과 딱 한 번 무승부를 두었다.
나로서는 거의 이겼다고 생각한 판을 그는 원점으로 되돌렸다.
후반 나의 월등한 수에도 기막하게 무승부를 만들어 내는 남바 1의 집중력은 신묘할 정도다.
이 판을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은 남바 2가 훈수두는 것을 거의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판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판이 끝나고 남바1과 주위의 사람들이 인정해 준 부분이 바로 그 것이었다.
나의 사부 또한 잘 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주었다.
상가에서 언덕을 거슬러 10분 정도 오르면 공원이 있다.
이 곳이 그 주위에 내노라하는 장기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나의 사부는 한국에서 온 나의 희소성을 그들에게 소개하고픈 마음에 함께 가자고 제의를 하였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가지를 못하였다.
사실 얽매임이나 과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내가 한국으로 오게 되었을 때 가장 아쉬워 했던 그
그의 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원을 운영하는데 영어가 전문이다.
은근히 자식 자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디에서나 같은 마음이리라.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마음에 운영상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는데
그 쪽 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딱히 대답해 줄 수가 없어 은근히 미안스러웠다.
이따금 장기를 두지 않고 책상 컴퓨터앞에서 골똘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뭐 하냐고 물으면 싱긋이 웃으며 와보라고 손짖을 한다.
자신이 아껴 마시는 노산의 귀한 녹차를 대접하고는 틈틈히 습작한 자신의 글을 나에게 보여준다
눈오는 날! 첫 사랑의 추억과 자신의 가족사를 그린 글이 다분히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이 목가적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서 나의 질문에 친절히 설명해 주는 그의 다정함이 그립다.
한국에 있으면서 인간적으로 생각나는 그와 상가내의 풍경이다.
6월 초 그 곳을 방문해야 할 일이 있다.
일도 일이지만 아무리 바빠도 내 사부와 한 판의 장기를 두고 와야겠다.
첫댓글 사부와 재회가 사뭇 기대됩니다. 잘 다녀오시고 좋은결과 있으시길~ ^^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선전하셔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전화 했었는데~ 없는 번호로 나오네요!
010-6870-2935입니다. 오늘 연안부두근처에 갔다가 전번이 없어서 전화 못드렸습니다.
내일부터는 제주에서 있다 주말에 청도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시골버스님의 글 보다는 부족하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 대하동 맞습니다. 산악회가 있기 전 그 곳을 찾았을 때 자신과 잘 어울린다~ 아니 어울리고 싶었습니다.
하노이에 한번 들르시지... 6~7년전 나를 박살낸 놈을 소개시켜 줄팅께... 흐흐흐 그때 그놈이 중학교 1학년짜리였지 아마...
베트남에도 장기가 있나요? 어떤식인지 궁금하네요!
캬~ 간만에 주옥같은 글 대하니 대하동이 새삼 그리워지네? 라고 말하면 좋겠지? ㅋㅋ..
6월에 온다니 그 때 함 만나서 이바구 하자, 칭구야~~
그립다구 하면 쑥스럽구나! ㅎㅎ 칭구는? 오빠한테
오빠같은 소리 허네..
예전에 동북가셨을 때 호랑이 보신 얘기가 생각납니다.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 건강하시죠? 오신다니 소주 한잔해요~
그 거 사실이라니까!
장기 사부가 그립지요? 청도 출장 오신다니 기다려집니다.
스프링님이 그립지요!
찬찬한 글솜씨가 일품입니다.~~
인천 대하동에? 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오시는 날이 인천에서 야구했으면 좋겠네요! 야구 좋아 하실려나?
저랑 장기 한판 어때요? 저 아마 2단입니다.ㅎㅎ
기사님하구 장기 둘 시간이 있겠나? 수울 마셔야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