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종식 마지막 희망 '집단면역'.. 한국, 내년 10월 마지노선 국민일보
양한 백신 추가 물량 확보 주력.. 미·영은 5∼7월쯤 집단면역 가능
시민들이 23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집단면역’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백신의 추가 물량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감염병에 있어 ‘집단면역(herd immunity)’은 유행을 종식할 유일한 수단이다. 집단면역은 전체 인구의 60~71.4%가 특정 감염병에 면역성을 갖게 될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후 감염병은 확산이 느려지거나 멈추게 된다.
코로나19 백신을 본격 접종하기 시작한 영국과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이르면 내년 5~7월쯤 이런 집단면역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백신 확보가 다소 늦은 한국이 지금 같은 3차 대유행의 혹독한 겨울을 또다시 맞지 않으려면 내년 9~10월 내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집단면역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가 제시한 백신 접종 완료 시점(내년 11월)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구매에서 한발 늦었더라도 다양한 백신의 추가 물량 확보에 주력하고 아울러 우선 접종 순위, 운송·보관(콜드체인), 전담 의료기관 지정, 효과·부작용 모니터링, 국민 설득 방안 등 백신 접종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워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집단면역은 자연감염 뒤 회복(항체 형성)되거나 백신 접종을 통해 가능하다. 코로나19 초창기 몇몇 국가에서 ‘느슨한 방역’으로 자연감염에 의한 집단면역을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스웨덴은 최근 국왕이 직접 나서 집단면역 실패를 공식 선언했다.
대다수 국가는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에 희망을 걸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우선 접종에 들어간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최종 3상 임상시험에서 평균 94~95%의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3일 “이는 개인 차원의 효과를 말하며 만약 집단에서 95% 효과를 발휘하면 유행 종식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피해가 큰 미국과 영국의 경우 자연감염에 의한 면역 획득에 백신 접종이라는 지원군까지 얻어 집단면역 달성에 유리해진 측면이 있다. 정 교수는 “미국인 집단면역의 절반 정도는 자연감염에 의한 것이고 여기에 백신 접종까지 이뤄지면 집단면역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미국은 내년 6~7월쯤 집단면역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도 환자 급증에 따른 자연면역 형성이 어느 정도 돼 있고 총인구보다 훨씬 많은 백신 물량을 확보한 상태에서 접종에 들어갔기 때문에 내년 전반기, 5~6월에는 집단면역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7일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에 들어가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일부(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와 인구의 몇 배 분량을 확보하고 접종을 시작한 캐나다를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22일 아시아에서 처음 화이자 백신 도착) 등 20여개국이 내년 전반기에 집단면역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물론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에 걸림돌이 없는 건 아니다. 먼저 항체 지속 기간이 명확하지 않다. 모더나 백신의 경우 4개월 정도 면역 효과가 지속된다고 나타났지만 다른 백신들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면역 유지 기간이 짧으면 백신을 여러 번 맞거나 독감 백신처럼 매년 접종해야 해 집단면역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변이·변종 바이러스 출현도 변수다. 최근 영국 등 유럽에 변이 바이러스가 퍼져 전 세계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영국 정부와 백신 제조사들은 “현재 개발된 백신 효과를 무력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김 교수는 “만일 현재 백신으로 커버가 안 되는 변이·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한다면 출발선에 다시 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집단면역 도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접종 과정에서 새로운 부작용이 발견되거나 백신 원료 부족, 시스템 문제로 공급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정 교수는 “백신 회사 한두 곳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전체 공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항상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백신 접종 거부도 집단면역 달성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확보 계획을 밝힌 백신 물량은 전체 인구의 88%인 4400만명분(6400만 도스)이다. 국제 백신 공동 구매분배 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명분, 제약사와 개별 협상해 3400만명분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제약사와 개별 협상에선 현재 아스트라제네카 1000만명분만 구매 계약이 성사됐고 화이자와 모더나, 존슨앤드존슨-얀센은 아직 계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예방효과가 좋게 나온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확보가 늦어진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는 62~90%(평균 70%)로 먼저 긴급승인된 두 백신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또 집단면역을 앞당기려면 4400만명분으로 불충분하며 다른 나라에 비해 첫 접종 시기가 늦은 데 대한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내년 2~3월 도입과 접종이 가능하다고 밝혔으나 나머지 3개사 제품은 내년 1분기 도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 교수는 “무조건 전 국민 대상 물량을 확보할 필요는 없지만 20~30%는 추가로 더 확보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협상하는 4곳 중 한 곳에서 구매나 공급, 또는 접종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20~30%의 공급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그만큼 여유분을 챙겨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 교수는 최소한 전 국민 대상이거나 배 이상의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들은 항체 형성률이 다소 낮아 집단면역 효과가 떨어질 수 있고 면역 지속 기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여러 번 혹은 매년 맞아야 하는 상황에 대처하려면 최대한 많은 양을 확보해 놓는 게 낫다”고 했다. 현재 4곳 외에 3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노바백스나 큐어백 등 다른 제약사와도 최대한 선구매를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