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나팔꽃 콘서트에 다녀온 이후로
한달 내내 가을걷이 돕는다고 힘든 나날이었다.
힘에 부쳐서 털푸덕 주저앉아 징징 울기도 했지만
추수를 끝내고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나의 가을 외출이 시작되었다.
* 10월 30일 토요일
호출 차량을 예약해 놓았는데
열 두시 즈음 가회 대병쪽으로 가시는 분이 계셔서
동승을 하게 되었다.
6월부터 시각장애인 심부름 차량이 생겨서
앞을 전혀 못 보시는 분들에게 손발이 되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합천호 주변 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데
가을 단풍은 벌써 잎을 하나 둘씩 떨구고 있었다.
'민속마을'에서 점심 먹고
문학회 회원이셨던 김남희님께서 어린 제자들의 그림을 모아
작품전을 열게 되었는데 잠깐 들렀다가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아이들의 해맑은 그림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
* 10월 31일 일요일
은정네 식구들은 청송에 사과 따러 가고
나도 주섬주섬 챙겨서 중간에 선욱을 만나 팔공산으로 갔다.
10월 마지막날 시마을 가을 문학 행사가 있는 날인데
어리버리 길치인 내가 동화사엘 못 찾아갈까 봐
동행해 주었는데 앞날 산행을 해서 힘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남다른 참 고마운 친구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마을 가족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면인데 난 처음 참석한 모임이라 좀 뻘쭘했지만
운영자이신 양현근 시인님을 비롯해 많은 님들이 반겨주었거니와
박해옥님과 양종화님은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더 반가웠다.
참석한 인원이 모두 36명이었는데
나와 김계반님과 산저기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가벼운 산행을 하고
김계반님은 전통차 시연회 준비를 하시고 난 선욱과 이야기를 나누고...
산채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차 시연회를 하고 시낭송을 하고...
손정봉님의 '길'이라는 시는 시마을 모임에 관한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시였는데 모두들 포복절도를 하였다.
난 '그리운 그대'를 낭송했는데 휴~ 얼마나 떨렸는지... ㅠ.ㅜ
노래방에서 신재한님의 춤과 노래는 또 얼마나 웃겼는지...
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멀리서 오신 분들 때문에 모임은 여섯 시가 채 안되어 끝났는데
가을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몰렸는지
버스를 타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 기다린 게 무척 힘들었는지 저녁에 정신을 못 차리고 곯아 떨어졌다.
* 11월 1일 월요일
진주에서 '詩의 날' 기념행사가 있는 날이다.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콩깍지님의 초대로
부산행을 뒤로 하고 진주행 버스를 탔다.
마중 나오신 콩깍지님과 점심을 먹은 후
'시가 좋아라' 행사장에서 시화전을 둘러보고...
콩깍지님 댁에서 잠깐 쉬었다가
저녁을 먹은 후 '시가 좋아라' 행사장으로 갔는데
비가 뿌려서 조금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화요문학회 여러 선생님들께서 반겨주셨고
남가람문학회 문수암님을 뵙게 되어 반가웠고
시노래패 '푸른 고래'의 축하 공연과 시낭송...
뒷정리를 도와 주고 콩깍지님과 함께 돌아왔는데
마침 콩깍지님과 친구 수정이가 사는 아파트는 같은 곳이었다.
5층과 14층만 달랐을 뿐...
수정이네에서 묵기로 했는데 주원이는 자고 있었고
주원 아빠는 결혼식 후 처음 보는 것이었다.
* 11월 2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 수정과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오지랖도 넓게 5층으로 내려가 콩깍지님과 점심을 먹었는데
새로 담근 배추김치가 너무 맛있었다.
쑥차를 마시고 오래된 친구처럼 수다를 늘어놓다가
늦은 오후에야 부산으로 향했다.
해운대의 밤바람은 그리 차갑지 않았다.
날씨가 춥거나 더우면 택시요금 기본 거리인데
그냥 걷고 싶었다.
장산역에서 내려 오빠네 집까지 천천히 걸어갔는데 딱 30분이 걸렸다.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학래, 영래가 환호를 지르며 무지 반겨준다.
저녁 먹고 나서 비디오 가게에 가서
'Love Actually'와 '달마야 서울 가자'
비디오 두 편을 빌려왔는데 'Love Actually'를 보고 잠을 청했다.
Love Actually Is Around...
* 11월 3일 수요일~4일 목요일
'달마야 서울 가자'는 그냥 웃자고 빌려 왔는데
실컷 웃으면서 재밌게 본 것 같다.
서재에 가서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펴 들었고...
다시 비디오 한 편을 빌려왔는데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영화 본지 20분도 채 안 되어 눈물을 뽑았다.
봄이 끝나갈 무렵...
분명 슬픈 장면은 아니었지만...
스님이 동자승에게
"네가 돌멩이로 묶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에
한 생명이라도 죽어 있으면 너는 네 등뒤에 있는 돌을
평생 가슴에 지고 살아갈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왜 눈물이 솟구쳤을까?
죄와 상처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면서...
내가 상처 받은 것보다 내가 상처 준 것이 늘 마음이 아팠다.
상처 주지 않고 죄를 범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욕망은 집착을 부르고 집착은 살인을 부른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사랑...
과하지 않게 욕망을 잘 다스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참고 견디는 거... 버리는 거...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괜찮은 것 같았다.
오후엔 잠깐 외출할 일이 있어서 나갔는데
우체국에 가서 시조황제님께, 고령문협지부장님께 시집 부치고
은행에 들렀다가 송정으로 갔다.
바닷가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파도는 심술이 났는지 성질을 잔뜩 부리고 있었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벤치에 앉아 기탄잘리를 읽다가...
송정역에 들러 기차표 네 장을 예매하고...
* 11월 5일 금요일
아침부터 서둘렀다.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대전역에서 환승...
무궁화호를 갈아타고 평택에서 내렸는데...
무슨 위로가 될까마는...
달려가 손이라도 꼬옥 잡아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두 시간쯤 후 다시 기차를 탔다.
영등포역에서 내려 전철로 한 시간 가량 달리다가
도봉역에서 그(^^)를 만나 도토리에 가서 코코아를 뽑아와 마셨다.
길을 헤매다가... 팔각정에 갔는데...
비가 와서 화려한 야경은 보지 못 하고 추워서 벌벌 떨다가 왔다.
촌놈 서울 야경 구경 시켜줄려고 큰 맘 먹고 나섰는데 고맙~! ^^*
쪽지에 가서 싱가폴식 볶음밥을 먹고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먹다가 체할 뻔했음)
레몬티를 마시고...
반가움과 고마움과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고...
주말이라 청량리역에는 야간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잘 생긴 총각이라도 옆에 앉아주길 바랬는데...
우C~ 껌 떽떽 씹는 아저씨는 나의 환상을 사정없이 깨버렸다. -_-;
밤새도록 기차는 달렸고...
* 11월 6일 토요일
새벽에 닿은 정동진은 파도보다 먼저 샛별과 반달이 반겨주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동대구행 기차에 올랐는데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이 참 예뻤다.
역시 기차 여행은 완행열차가 제격이다.
산과 산기슭과 강을 따라 기차는 달렸고
바람도 따라 흘렀고 늦가을 풍경도 흐르고
더덜컹 더덜컹 기차가 내는 숨소리,
그 소리마저 예쁘게 들렸다.
대구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나붓나붓 낙엽이 떨어지는,
낙엽이 쌓여있는 두류공원을 산책하다가...
늦은 오후에 합천행 버스에 올랐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서야 집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길게 일주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기쁘다.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 만났던 풍경
모두 다 아름답다.
모두 다 사랑스럽다.
2004. 11. 7. 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나팔꽃 공연에도 다녀오셨군요.
넵~ 나팔꽃 공연에는 세 번 갔었어요. 작년 12월과 올해 6월, 그리고 10월에요. 참 따뜻하고 소박한 공연이었지요. ^^
나팔꽃에는 거의 가는 편인데....주로 김용택 선생님 출연하실때... 다음에는 만날 수 있겠네요.
나두 김용택 선생님 나오실때...ㅋㅋ 저도 데리고 가요...
제 고등학교 때 친구중에 권현자 라는 친구가 있었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짧은 머리...꼭 남자 같은 외모였지만 노래를 할때면 그애의 고운 목소리에 놀라곤 했었지요. 그리고 가끔 창밖을 보며 가볍게 읊조리던 싯구들... 님의 글들은 그 친구를 생각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