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에스라하우스 노 우 호 목사
고대 브라만교의 오류와 부정을 개혁하기 위하여 일어난 사람이
바로 불교의 비조(鼻祖)가 되는 석가모니였다.
우리가 무신론(無神論)을 이야기 할 때
고대 무신론으로 석가모니의 불교적인 무신론을 빼 놓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교가 무신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석가모니가 무신론자(無神論者)라는 말을 들어도
그가 어떻게 무신론자가 되었는지를 대개는 잘 모르고 있다.
석가모니가 무신론을 주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적인 무신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석가모니는 본명이 아니라 하나의 존칭이었다.
그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그는 인도의 카필라성에서 성주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의 인도에서는 브라만교가 건재하고 있었다.
브라만교는 인간을 네 가지 계급으로 나누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이를 카스트제 혹은‘사성제‘라고 한다.
카스트제도란
‘브라만‘계급의 사람들이 종교적인 직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고
그 아래는 ‘크샤트리아‘계급의 사람들이
정치. 무사 등 관료의 직무를 맡아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바이샤‘라고 하는 평민들이 있고
다시 노예계급으로는 ‘슈드라‘계급이 있었다.
얼른 보기에는 왜 그렇게 계급사회가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인도의 고대역사를 통하여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인도에는 크게 두 가지 인종이 살고 있다.
먼저 인도의 원주민족(原住民族)
혹은 선주민족(先住民族)으로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드라비다족이라고 한다.
드라비다족은 황갈색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거기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후대에 인도를 침입한 아리안 족이 물러가지 않고
그 땅에 눌러 살게 되면서 카스트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아리안‘이란 말은 ‘고상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들이 드라비다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만든 계급제도를 두고
4성제라고 부르게 되었다.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위의 두 계급(브라만. 크샤트리아)은
아리안 족의 차지가 되고 아래로 두 계급(바이샤 슈드라)은
원주민족이었던 드라비다족에게 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가모니는
카필라 성의 성주 아들로 태어났으니
그는 아리안 족이었다.
그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를 낳다가 죽었고
석가모니는 어린 시절 그의 이모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매우 우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정반 왕은 아들을 기쁘게 해 보려고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석가모니의 우울증은 차도가 없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생각이 깊은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는 상당히 비판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었고
분석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편이었다.
후에 결혼해서 아들을 낳기까지 했지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상적인 방황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장차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그 이전에 역사적인 진리와 종교적인 진리를 파고들었다.
석가모니는 티베트의 고산준령을 넘나들며
고승대가들을 만나서 설법을 들어보았지만
머저리 같은 브라만교의 중들에게서는
판에 박힌 넋두리들 외에는 들을 것이 없었다.
구도에 지친 석가모니는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는 사실 앞에 좌절도 경험했다.
그러한 고승대가들을 만나고 또 만나서
싯다르타가 깨달은 것은
브라만교에 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브라만교는 다신론적인 종교였다.
브라만교에서는 여러 가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거기에는 천계의 신 댜우스(Dyaus)가 있었다.
창공의 신 바루나(Varuna).
새벽의 신 우샤스(Ushyas).
광명의 신 미트라(Mitra).
태양의 신 수르야(Surya).
전쟁의 신 인드라(Indra).
불의 신 아그니(Agni).
보존의 신 비쉬누(Vishnu).
파괴하는 신 시바(Shiva)와
그의 배우자인 칼리(Kali)가 있었다.
번영의 신 락쉬미(Lakshmi)가 있었다.
그리고 비쉬누라는 신이 성육신(成肉身)하여 나타난 신이 바로
크리쉬나(Krishna)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고대 인도의 평민들
즉 바이샤와 노예 계급인 슈드라들은
그 많은 신들을 섬기느라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싯다르타가 의심을 품은 것은
바로 [이러한 많은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가?]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연구를 거듭하여
이 모든 것이 다 인조신(人造神)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이러한 많은 신들은 모두
인간이 고안하고 창안한
인간 두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싯다르타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은 후
비로소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직설적으로 가르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조용한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다.
그것은 브라만교를 힘으로 타도하는 방법이 아니라
조용하게 사람들을 깨우치려고 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그 말이 오늘날은 참으로 많이 왜곡되어
불교인들은 불교의 교리나 불교의 경전에
무슨 고차원의 세계가 있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아무런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사실 깨달은 것이다.
해인사의 이성철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당시에 깨달은 것은
브라만교에서 섬기라 하는 모든 신들은 가짜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여 본 결과
브라만교의 모든 제도는
아리안 족이 선주민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악한 제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성제라는 계급제도 역시
인간의 지배욕에서 나온 기만적인 제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우리가 석가모니를 이야기 할 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채 이야기해서는
일평생 아니라 몇 천년을 연구한다고 해도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무슨 진리를 말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석가모니의 무신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브라만교에서 가르치는 신들은 다 가짜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인도의 계급제도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질서를 위하여 사도(邪道)를 버리고
정도(正道)를 설정하여 가르치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邪道는 곧 당시의 브라만교를 말하는 것이요
그가 가르치던 정도는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음 카페 펌..
첫댓글 마산 샤론교회 목사 노우호는 온갖 양분법으로 자기생각과 다른 종교인이나 그 어느 누구의 사상이나 철학을 인정하지 않는 그야말로 자신이 사도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를 속이고 있는 자입니다. 이 글 올린 목적 무엇인가요. 대꾸할 논지조차 없는 이런 쓰레기에 불과한 글을 삭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