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어느 율법사에게 하신 이야기다
율법사가 저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영생, 무얼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물어봤다
구원은 우리쪽에 권한이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에 의해, 언약에 의해 하나님이 끌고 가시는거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이다
근데 내가 뭘 해야 영생을 얻어요 라고 물어봄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거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성경에는 뭐라 써있니?’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래, 가서 그렇게 해’
‘저 다 했는데요 앞으로도 다 할 수 있어요 내 이웃이 누구인가만 얘기하세요 완전하게 사랑해 버릴께요’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내 이웃이 누굽니까 라고 묻는 그 율법사에게
강도 만난 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겠니 라고 물으신다
그러면 그 율법사를 누구 취급하고 있는건가
선한 사마리아인?
강도 만난 자 !
내 이웃이 누굽니까 하고 있다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에
‘니가 강도 만난 자야’
‘나는 다 사랑할 수 있어요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거니까 나는 사랑할 수 있어요 율법을 다 지켰으니까 이웃이 누군지만 얘기해 주세요‘
그 때 예수님이 강도 만난 자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니가 누구를 사랑하여 구원받는게 아니라
니가 강도 만난 자라는걸 깨닫고 선한 사마리아인, 유대인들이 보면 죽여버리고 싶은 이방인, 그 예수에 의해 이 세상의 이방인인 예수에 의해 사랑을 받아야 구원받는거야 이 바보야‘
이 이야기 해준거다
거기에 제사장과 레위인이 등장한다
그냥 지나간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을 돌보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절대 부정한걸 만지면 않된다
그들은 24개조로 나눠서 일주일씩 일 년에 딱 두 번 성전에서 일한다
일년에 딱 두 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건 그 일을 하기 위해 하는건데
자기 일을 위해서 그들은 강도 만나 벌거벗겨져 거반 죽은 자를 도울 수가 없다
율법에 의해 그들은 부정한 것을 만지면 일 년에 딱 두 번만 하는 성전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라, 이렇게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처하는 유대인은 율법을 지키느라 진짜 사랑해야 하는 이웃이 죽어있는데 지나가 버린다
이게 율법, 구약이다
세상의 노마디즘이고
자기만을 위한 거다
율법을 지키기는 지키는데 자기를 위해 지킨다
거기에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키신다 개 취급도 받지 못하는....
그런데 예루살렘과 여리고의 중심에 사마리아인이 오는거다
율법주의와 완전히 다른 이방인인, 유대주의 율법주의의 원수인 사마리아인이 와서 강도만난 자를 살려내는거다
이 강도 만난 자, 율법사, 유대주의, 이 세상 인간들이 뭘 강도 맞았을까?
강도, 마귀, 세상에게 뭘 빼앗겼을까?
돈, 건강, 명예 ? 그건 마귀가 주는거다 오히려...
‘나에게 절만 해 그럼 세상 부귀 영화 다 줄게’ 다 준다
그러면 뭘 빼앗아 갈까?
하나님을 빼앗아 간다 아버지를 빼앗아 간다
근데 이들이 아버지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강도 만난 자라는걸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사마리아인이 오면 거부하는거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기어갈 힘만 있으면
사마리아인이 와서 ‘내가 기름발라 고쳐줄게’ 할 때 도움받았을 것 같은가?
않받는다
‘이 개가 어딜 와서 내 몸을 만져?’
근데 이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그 강도 만난 자를 도울 수 있었나?
거반 죽었을 때 움직일 힘이 없으니까
내가 강도 만난 자, 하나님을 빼앗긴 자라는걸 깨닫고 나는 죽은 자이니까 나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 하나님을 돌려받아야 된다 라는 인식이 있는,
강도 만난 자, 난 죽은 자, 개, 돼지, 지렁이 같은 자, 죽은 흙이라는걸 알고
‘하나님, 내가 무슨 하나님의 구원에 도움이 되겠습니까’하고 자기 심장에 칼을 꽂는 사람
아니 하나님에 의해 옛사람의 심장에 공격을 받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근데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 후에도 얼마나 우리가 펄떡펄떡 뛰어서 살아있는가?
굉장히 나는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하는건 다 연극하는거다
그 잘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서 좋은 평가를 얻고 싶은거지, 진짜 잘하는거 아니다
내가 진짜 강도 만나 거반 죽은 자라는걸 알고
나와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를 갖고 와서 ‘나에게 져라, 용서해라, 참아라, 니 행위 하나님 앞에 공로로 가져갈 생각하지 말어’ 라고 이야기하는 이 세상의 진짜 노마드,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는거다
그게 영생이다
그게 아브라함이었고 그게 라합이었다
거기에 접붙임을 받아 구원받는게 성도인거다
근데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있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거반 죽이는거다
그러니까 성도의 신앙 생활은 반 죽는 삶인가?
아니다 완전히 죽는거다
그래서 거반 죽어가는게 우리의 인생이다
그래야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도움만 받아야 돼요
벌거벗겨져서 이렇게 거반 죽어 누워있는 존재가 하나님을 위해 뭘 한다는거에요?‘
이렇게 내 자신이 부인될 때 내 안에 있는 새 생명이 살아 올라오는거다
내 안에 있는 예수의 삶이 문득문득 나오는거다 나도 모르게...
그게 진짜 선한 사마리아인 진짜 착한 삶이다
남에게 인식이 되는 착한 삶은 내꺼 아니다
마귀꺼다
나에게 점수가 되는 자기 스스로에게 카운트가 되는 착한 일 선한일 그게 죄이다
그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그 앞에서 계속 죽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모리아 산 앞에 서게 된다
우리의 심장에 칼을 꽂을거다
그 길을 향해 매일매일 죽는거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한 것처럼
내 겉 사람이 날마다 죽으면, 내 껍데기가 벗겨지면 벗겨질수록 ‘아 나는 않되는군요 나는 하나님에게 절대로 점수 받을 존재가 못되는군요’ 하고 폭로될 때 내 안에 있는 예수가 쪼끔씩 겉으로 나오는거다
그걸 부활이라 한다
부활절에 우리는 달걀 까먹으며 부활절을 기뻐하지 않는가
그 날은 우리가 죽는 날이다
내 심장에 칼을 꽂는 날이다
하나님 나라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완성이 부활절이다
완전히 내 심장에 칼이 박혀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게 부활이지 않는가
그 날마다의 부활을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지금 시켜가고 계신거다
그래서 거반 죽는거다
이게 신앙 생활이다
근데 무슨 사회에 나가서 정화하고 개혁하고 착한일을 하고 뭘하겠다는건가?
노숙자들에게 밥 한숟가락 더 먹게 해주는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으로 볼 때 이게 진짜 착한일인가?
마귀들에게 빵 나눠주는게 착한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빵 나눠주는거?
빵을 하나님이 뺏어가서 진짜 우리는 하늘의 떡으로만 사는구나를 가르쳐주기 위해 뺏어갔는데 자기들이 나눠주고 있으면 그게 선한 일인가?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서.....
진짜 착한일은, 하나님 나라의 착한일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납작 엎드려 죽는거다
거기서 예수가 일을 하시게 만드시는거다
마태19장에 똑같은 사람이 나온다 부자 청년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 얻습니까 똑같이 물어본다
예수님이 ‘율법 지켜’
‘다 지켰는데요’
‘진짜 다 지켰어?’
‘네 다 지켰어요’
‘그럼 니가 가진거, 네가 가진 소유(맘몬, 하나님과 대척점에 있는 세상 신)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
이게 뭔가 사랑이지 않는가
근데 율법 다 지켰다고 하는 그 인간이 ‘그건 좀 곤란한데요’
율법을 다 지켰다는 그 청년에게 예수님이 그거 팔아서 네 소유, 맘모나스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 이건 십계명의 제1계명을 묻고 계신거다
주 너의 하나님 앞에 다른 우상 가져오지마라 그래서 지금 네가 우상, 붙들고 있는 돈 다 팔아서, 진짜 사랑한다면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라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게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는거다
그 율법을 이야기하셨더니
‘그건 곤란한데요’
첫째 계명도 않지켰다는거다
결국 하나도 않지켰다는거다
예수님이 그 사람의 뒷통수에다 대고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않된다는거다 인간은...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이게 영생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어려운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성경을 보면 어려울거 하나도 없다
이 시대의 교회는 성경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않본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
진정한 노마드가 되어서 죽어야 한다
근데 세상 사람들은 절대 못죽는다
내 나라, 또 챙긴다
그래서 애들까지도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저기가는 저 노인 우물쭈물 하다간 큰일납니다~~’ 노래하고 다닌다
내 앞을 가로막으면 노인네고 뭐고 다 죽여버리겠다는거다
이게 가짜 노마드
귀여운 척 예쁜 척 순진한 척 하는데 노인네 않비키면 죽일거야 다 필요없다는거다
그 방향과 정 반대로 행해 가야하는게
노마드, 예수님의 노마드인
성도의 올바른 노마디즘이다
첫댓글 그 길을 향해 매일매일 죽는거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한 것처럼,
감사합니다
영생을 얻는길
1. 예수의 대속을 믿는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실때 그것이 바로 자기를 위한 기도임을 믿는자) - 심판이 면제된다
2. 위의 범주에 들지 아니하고 심판을 받게 되었을때 살았을때의 행위가 주님의 기준에 합당한다 (마태복음 25:31절 이후에 나오는 심판) - 아들은 선한 사마리아 인들이다. (종교나 신앙에 관계 없음)
마태 25장에서
양과 염소는 비슷하게 생겨서 사람의 눈으론 잘 구분이 않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서로가 다 양인줄 착각하고 살지요
심판때에 판가름 해주시는데 그것은 쉽게 얘기해서 하나님 마음대로라고 말합니다
염소로 판결난 사람들이 '우리가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하고 대들자 너희는 '작은 자에게도 않한자들이다'하시고 내어쫓으시고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 저는 죽여도 할 말 없습니다 무익한 종입니다'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다 했단다' 하시며 양으로 여겨주신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이 생각하는대로 절대로 그렇게 않될거라는 것이죠
자기가 생각한 대로 절대로 않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뜻대로 입니다
글 감사합니
주님의 산상보훈에 "긍휼히 여기는자는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라" 하셨던 걸로 기억됩니다.
비록 불신앙인이넜거나 신앙인이었어도 결함있는 신앙생활, 예로서 목사로서 금전적인 비리를 저질렀거나 성도와의 불미스러운 행위등, 을 했었더라도 거리에 나가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하나님앞으로 인도한 사람들이나, 다른 은혜가 번드르 한 교회의 목사들이 쓸모없다고 내쫓은 신도들을 품어주고 하나님앞으로 인도하신 분들은 분명히 쭈님께서 긍휼히 보시고 구제해 주실것으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은 바로 그 "긍휼" 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이삭줍기" 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이석호(Salzburg) 인간의 잣대로 선과 악을, 구원과 불택을 판단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않으시고
그 속, 생각하는 것으로 심판하신다 했습니다
우리는 행동으로 죄를 짓지않아도 생각으로는 오만가지 죄를 짓습니다
이 땅에는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가 예측불허하는 하나님의 전권입니다
나중이 참 많이 기대됩니다
읽어주시고 많은 생각을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석호(Salzburg) 그리고 이 땅에는 긍휼을 가진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번은 긍휼을 베풀 수는 있어도
완전을 이룰 수는 없는거죠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궁휼을 이루신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나의 옛자아를 죽이고, 나를 부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