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에서 내려서 팔각정으로 잠시 오르는 계단에는 자물쇠들이 가득히 채워져있다. 온갖 색깔의 고리들과 함께 묶여져 있어서 알록달록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렇게 굳건하게 증표를 남기고 갔는데 모두들 변함없는 사랑 중인가? 산산조각 부서진 사랑도 꽤나 많을 터인데 다시 와서 지우고 가야 하는가? 몇 년 전에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떠오른다. 서울의 남산 위에 연인들이 사랑의 증표로, 파리의 센 강변 다리처럼 자물쇠를 묶어놓는 곳이 있는데, 미국에서 날아온 젊은 여성이 오래전 여기에 연인과 함께 묶어두었던 자물쇠를 잘라버리고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 맺힌 파경을 잊으려고?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의지가 대단하다. 태평양을 비행기를 타고 건너와서...
Seoul Tower 라고 불리는 전망대에 섰다. 예전에는 스모그로 멀리 보이지 않던 곳까지 보인다. 아직도 더 좋아져야 하지만 지금은 아주 공기가 많이 좋아졌다. 오른쪽 끝 윗부분으로는 경복궁,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
유리창 위에 옛 지명도 쓰여 있고, 남대문시장, 장충체육관, 안중근 기념관 등의 위치도 표시돼 있다.
오후에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으로 (The War Memorial Of Korea).
1950년 남한을 침공하는 6.25 전쟁을 명령하는 북한군 제4사단 전투명령 1호 문서.
오직 한반도의 온전한 통일을 염원에 둔 한국측의 반대로, 한국측 서명없는 6.25 전쟁의 정전협정 조인서.
북한의 김일성, 중공군 그리고 유엔군의 Mark W. Clark 대장이 서명하였다.
카나다의 참전 기록과 당시 카나다군의 전시물품들. 버튼을 누르면 자세히 알려준다. Canada 는 1950년 7월 25일부터 1957년 7월 6일까지 7년 동안, 1개의 보병여단과 8척의 수송대 군함 등 모두 26,791명을 파병하였다. 1,212명이 부상을 당했고, 516명이 전사하였다. 태평양 건너의 이역만리에 참전한 이름 모르는 젊은이들의 값진 희생으로 자유한국이 지켜졌다.
다음날인 3월 21일. 오늘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남산이 시원스럽게 보이도록 건물의 가운데가 뻥 뚫어져 있는 현대적인 모습의 박물관이다.
1층은 선사시대, 고대관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이조시대를 거치는 중세, 근세관이다.
신라시대 5세기. 금 새날개모양의 관꾸미기 (Gold Wing-Shaped Crown Ornament) 그리고 고깔모양 관 (Gold Cowl Cap).
서울의 북한산 비봉에 있었던 (서기 16년) 신라 진흥왕 순수비.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에 지역을 둘러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새운 비석이다. 국보로 지정되어 지금 이곳의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 1348년. 경천사 십층석탑 (Ten-story Stone Pagoda). 한국에서는 보기드문 대리석 탑이다. 고려의 전통과 중국의 원나라 (元朝) 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시간에 쫓겨서 2층의 서화관, 기증관을 지나치고 곧장 3층의 분청사기, 백자, 청자실로 왔다.
매병. 작약꽃 (Peony) 으로 덮여진 항아리 병인데 작약은 구리 안료를 사용해서 더 섬세하게 그려졌다.
구리 안료 (Copper Pigment) 를 그릇 전체에 발라서 짙은 갈색을 표현하는 것이 동채기법이다. 구리 안료는 높은 온도에서 휘발되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재료였지만, 고려의 장인들은 청자의 동채 기법을 세계 최초로 사용했다.
청자 상감 매화-대나무-학무늬 매병.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12-13세기의 고려청자이다.
여유로운 공간 배치와 붓으로 그린 듯 섬세한 상감무늬가 뛰어나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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