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춘우
주말을 맞아 창원으로 돌아온 셋째 토요일이다. 올봄 비가 잦음에도 주말은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제주도와 남녘 해안부터 강수가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한단다. 새벽녘 잠을 깨어 하루 동선을 그려보니 근교 산행이나 둑길 산책은 어려울 듯했다. 낮은 산기슭을 누비면서 봄내음을 맡을 수 있는 산나물을 뜯어 일용할 찬거리로 삼을 수 없음이 아쉽기는 하다.
아침나절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수령에 오래된 여러 그루 벚나무는 꽃이 피기 시작했다. 예전엔 사월 초 개화하던 벚꽃이 보름 정도 일러진 듯했다. 이웃 동에 사는 초등 친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자기네 동 주변 꽃밭에 두엄을 내고 있었다. 수선화와 히말리야바위취가 꽃을 피워 화사했다. 도청에서 퇴직한 친구는 여가에 꽃을 가꾸면서 유튜브로 그 꽃들을 소개하고 있다.
동정동으로 나가 마트에서 곡차를 마련해 배낭에 챙겨 담고 북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지개리에서 대한마을과 고암마을을 둘러가는 버스였다. 승산마을을 지난 갈전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갈전마을 반대 방향인 건너편 산기슭으로 들었다. 드넓은 감나무 농원과 젖소 축사가 위치한 두우실이라는 골짜기다. 근래 주말 농장을 가꾸려는 이들 텃밭에는 컨테이너 농막이 몇 동 들어섰다.
축사를 지나기 전 묵혀진 밭뙈기로 갔다. 예전 양봉업자가 벌통을 두었다가 어디론가 옮겨간 묵정밭이다. 검불 속에는 부지깽이나물이 절로 자랐다. 지난 봄방학 때 지인 농장을 찾았을 때 부지깽이나물을 캐서 봄 향기를 맡은 바 있다. 그새 잦은 봄비에 부지깽이 나물을 파릇하게 자라 나왔다. 이른 봄이면 고라니나 노루가 부지깽이나물을 좋아하는데 녀석들이 몰랐던 모양이었다.
빗속에 부지깽이나물을 캐 봉지에 채웠다. 묵정밭을 나와 산기슭에 위치한 지인 농장을 찾아갔다. 감나무 그루 주변에는 퇴비를 내어 놓았다. 지인은 건령이 오래되 농막을 헐어내고 그 자리 새로 지을 터를 닦아 놓았다.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곡차 잔을 비우고 있어 내가 합류했다. 비가 와 산행이나 산책이 어려워 농장을 방문한다고 했다. 가는 빗줄기는 그칠 낌새를 보이질 않았다.
지인과 환담을 나누는 사이 이웃 텃밭에 사는 지인들이 나타났다. 둘은 대기업에서 현역으로 근무하면서 주말이면 텃밭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굴현고개 맛집으로 알려진 오리탕을 포장해 두 손에 들었다. 가스 불에 오리탕을 데워 점심상을 차려 안주를 겸해 먹었다. 두우실은 주택은 들어서지 않아도 여기저기 텃밭을 가꾸는 이들로 평일보다 주말에 사람이 많이 나타났다.
점심자리가 길어질 듯해 먼저 일어났다. 배낭을 둘러메고 야트막한 산자락을 넘어갔다. 산비탈을 개간한 과수원엔 자두꽃이 피기 시작했다. 고개를 넘은 산기슭에는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화천리로 나가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명곡교차로에서 창원대로를 거쳐 교육단지를 두르는 버스였다. 충혼탑 사거리에 내려 교육단지 피기 시작한 벚꽃을 감상했다.
내가 거제로 가기 전 교육단지 여학교에서 삼 년 간 근무해 감회가 새로웠다. 교육단지 거리는 주말이라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인적이 끊겼다. 벚꽃이 활짝 피었으면 비를 맞은 꽃잎이 길바닥에 수를 놓을 텐데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교육단지에서 집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타서 아파트 맞은편 상가로 갔다. 아침에 뵌 초등학교 친구와 안부를 나누는 곡차 자리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배낭에 든 부지깽이나물 몇 줌을 주인 아낙에게 건넸다. 비 오는 날 전으로 부치면 좋은 안주거리가 될 듯했다. 초등 동기는 교단에서 퇴직한 선배와 같이 나타났다. 주점 주인은 풋풋한 부지깽이나물로 전을 부쳐내고 아삭한 튀김으로도 해주었다. 상가 관리소장이 합석에 넷이 비워가는 곡차 병이 점차 늘어갔다. 나는 취가가 알맞게 오르는 듯해 그들을 두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21.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