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너 어딜 가니?"
늦가을의 별빛이 스미는 창문 틈새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오느라 생채기 가난 날개를 쓰다듬던 붙나방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뒤를 돌아다 보니 하루살이와 파리였습니다.
"난 붙을 찾아 여기로 날아들있어 . 근데 너희들 거기서 뭐하니?"
자세히 보니 그들은 천장에 기타랑게 매달린 끈끈이 띠에 붙어 음짝달 싹 못 하는 처지였지요.
"보면 모르니? 우리는 지금 만찬을 즐기고 있다고."
"아름다운 향기와 입에 찍쩍 달라붙는 즙이 얼마든지 흐르고 있자니. 너도 몹시 허기가 진 표정인데 이리 가까이 와서 맛 좀 보렴."
그러나 불나방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난 싫어. 너희들이 먹고 있는 만찬은 가짜야. 사람들이 너희들을 잡기 위해 가짜 꿀 냄새가 나는 아교풀을 발라 놓았다고. 너희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깜빡 속은 것일 뿐이야."
"홍, 속았다고?'
입가에 끈끈한 아교풀을 잔뜩 문힌 파리가 코웃음 을 쳤습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고? 그런 너는? 년 저 휘황찬란한 촛불의 유혹을 못 이겨 여기로 날아든 게 아니냐 고?"
"그건 사실이야."
불나방이 시인을 하자 더욱 기세가 오른 파리가 다그쳤지요. "우리가 인간한테 잡혀 죽는 모습을 네가 보게 될 확률보다 불에 뛰어들어 날개와 살이 타서 죽 는 너의 꼬락서니를 우리가 먼저 구경하게 될 확률이 휠씬 높을걸? 안 그러니 하루살이야?'
"글쎄. 난 장담하기 어려워. 오늘 밤 자정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잘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너희들도 알다시피 난 하 루살이 아냐? 자정을 넘길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넌 선택을 잘한 거야. 자정이면 맹 칠 목숨, 피곤하게 날깃짓 하며 하루 종일 푸드덕거려 봤자 제대로 얻어먹기라도 하냐 이기야. 차라리 이렇게 한 상 떡 벌어진 끈끈이 띠에 달라붙어 곧 죽을 때까지 호의 호식하는 게 장땡이지 뭐. 하지만 사실 너보다 며칠은 너끈히 더살 수 있는 난 약간 억울한데 이거."
그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좀 우울해졌습니다. 그래서 창문턱에서 휴식 을 마치고 막 날아오르려는 불나방을 붙잡고 물어보았습니다.
"불나방아, 너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나나 파리보다도 휠씬 오래 살잖아."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그런데 왜 스스로 뜨거운 불꽃에 몸을 함부로 던지려 하는 거지? 그건 너무 끔찍하잖아? 차라리 우리처럼 향기와 단물이 흐르는 끈끈이 띠에 발을 붙이고 한나절이나마 잘 지내다 사라지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누가 너에게 그 일을 시켰니?"
불나방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습니다.
"아무도 내게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강요하지 않았어." "그럼 도대체 무슨 까닭이야?"
"그건 말로 설명할 순 없어. 느낌이 중요해."
"무슨 느낌?"
"말하자면 자유 같은 거겠지.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 봐. 우리는 그동안 항상 허기를 느끼는 빈 위장과 단물을 쭉쭉 빠는 데 이골이 난 혀의 노 예로만 살아왔어."
하루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냐?"
"물론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사느라고 우리가 치른 엄청난 대가들을 생각해 봐. 어느 구석인지 입을 벌리고 있을 음흥한 거미들의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물망을 염려하느라 몸을 움츠려야 했어. 또 공포스러운 사마귀의 턱이나 새들의 단단한 부리에 우리의 연약한 미 리통이 깨질까 걱정하느라 습도 제대로 못 쉬었어."
"그건 그래."
하루살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일렁거리며 현란한 춤을 추는 불꽃을 한번 보라고. 얼마 나 아름답고 자유스러워. 곤충 주제에 무슨 아름다움이고 자유를 찾냐 고 비웃을 수는 있어.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쪽의 오만이고 편견일 뿐이야. 자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그런 것을 추구할 권리는 결코 어느 한쪽에서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가 없을걸. 우리 모두 의 권리야. 오오, 저 춤추는 아름다운 불꽃!'
"하지만 날개가 타고 몸에 화상을 입으면 고통스럽잖아? 난 무서워.'
"아마 고통 없는 아름다움이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린 어차 피 자연의 순환이라는 법칙에 곧 순종해야 할 운명이야. 난 아무도 모르 는 곳에 이미 다음 대를 이어 갈 나의 사랑스런 알들도 까 놓았어. 그럼 안녕!"
불나방은 일렁이는 촛불 위를 서너차례 돈 다음 온 힘을 다해 몸을 던 졌답니다. 그 순간 하루살이도 몸속에서 어떤 뜨거운 기운이 솟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다시는 뜨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거 의 자정 무렵이었기 때문입니다.
"힝,, 그 불나방 잘난 척 한번 서럽게 하더니 결국 저 꼴이 되고 마는군."
이승의 진흙탕이면 어때! 하루라도 더 구르는 놈이 장땡이지 뭐. 열심히 아교풀을 빨아 먹던 파리가 한마디 던지고는 계속 헛바닥을 날름 거렸지요. 물론 한 사람이 다가와 파리를 처리하기 위해 가위로 끈끈이 띠 를 막 자르려 하는 것은 미처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첫댓글 삶의 의미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어려운 화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