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이 남긴 삶의 의미
작년 5월, 어느 신문이 한 변호사 님의 별세(別世) 소식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판사가 된 그는 네 딸을 두고 있었는데,
첫째가 눈에 이상이 와서 백 방으로 치료했지만 결국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다.
그는 딸 치료 등 뒷바라지를 위해 천직으로 여기던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 딸은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공부를 잘해 미국으로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해 서울맹아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취직한 지 9개월 되는 때쯤,
두 동생들과 함께 집 부근 삼풍(三豊) 백화점에 들렀었고, 그때 붕괴 사고로 세 자매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 변호사는 딸들의 보상금으로 받은 6억 5천만 원에 본인 재산 7억 원을 보태어 장학 재단을 설립하고,
첫째가 근무했던 서울맹아학교에 기증하였다.
바로 그가 세상을 떠났다. 이름은 정광진 씨이다.
정광진 변호사 님이 남긴 삶의 의미는 이런 내용이었다.
세 딸을 한꺼번에 잃은 아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미치지 않고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가늠도 잘 안 된다.
아마도 짐승처럼 울부짖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내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습니까?" 하고 하느님께 격렬하게 대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격렬한 항의 중에, 그는 희망의 빛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절망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
"이제 내 딸들이 세상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다."라고....
그는 놀랍게도 절대적 절망을 절대적 희망으로 전환시켰다.
그가 만든 맹인들을 위한 장학 재단은 세 딸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가져와,
<삼윤 장학재단>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그 재단은 수많은 맹인 학생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사고 때 세상을 떠난 둘째 따님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 살짜리 아들이 있었는데
정 변호사는 그 외손자를 데려와 자신이 키우며, 사위를 설득해 미국 유학까지 보내주고 재혼케 하여
새 출발하게 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선택이 아닌가?
그 아이는 절망 속의 조부모에게는 살아야 될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홀 아버지보다 더 극진한 사랑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이의 생부(生父)에게는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 새 출발하는데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런 탁월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였을까?
몇 년 후 넷째 딸마저 병으로 떠났다.
어떻게 다 키운 자식 넷 전부를 잃고도 그런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항상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삶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정광진 변호사는 이런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삶에게 기대하는 것을 중단하고,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앞에 놓인 과제가 무엇인가,
나는 그 과제를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하고 질문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임을 온 어깨에 짊어졌을 것이다.
그것은 먼저 떠난 딸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 영원히 잊히지 않게 하는 것....
그 남겨진 혈육이 온전히 성장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다시 평화를 얻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하여 임종의 순간에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나이다..." 하며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은, 어느 소설의 결구처럼 "그렇게 슬픈 것 만도 그렇게 기쁜 것 만도 아니다"가 아닐까!
그러나 우리의 잘, 잘못과 무관하게 큰 시련이 올 때도 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남 탓하고, 자책하고, 비관하다가 파멸되어 사라지고,
또 어떤 사람은 고통을 극복하며 세상에 남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 선택과 힘이 들어있다.
시련이 왔을 경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힘을 사용하느냐 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시련 속에서 억울해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냈던
사람은 불멸의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 여겨진다.
< 금란지교(金蘭之交) 메일 中에서 옮김>
첫댓글 삼윤장학재단(三允奬學財團)의 유래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로 세 딸을 잃은 정광진 변호사의 추모와 나눔의 뜻에서 비롯됐습니다.
설립자: 정광진 변호사
계기: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장녀 윤민, 차녀 유정, 셋째 딸 윤경 세 자매를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삼윤’의 뜻: 세 딸의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윤(允)’에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세 딸을 기리는 이름입니다.
재단 설립: 세 딸의 보상금 약 7억 원에 정 변호사의 개인 재산을 보태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자료에 따라 출연 재산은 약 13억 원 규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요 대상: 정 변호사는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각장애 학생들을 돕는 것을 재단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서울맹학교와의 인연: 장녀 윤민 씨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공부한 뒤 서울맹학교 교사가 되었고, 사고 당시 교사로 근무한 지 약 9개월이었습니다. 정 변호사는 재단을 장녀의 모교이자 첫 직장이었던 서울맹학교에 기증했습니다.
기념비: 1996년 11월 서울맹학교에서 삼윤장학재단 설립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결국 삼윤장학재단은 세 딸을 잊지 않으면서, 특히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어 딸 윤민 씨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어가려는 부모의 사랑에서 출발한 장학재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정광진 변호사 부부는 재단 설립의 취지를 “맹인들에게 빛이 되고자 했던 윤민이의 못다 이룬 꿈을 우리 부부가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아픔을 한꺼번에 겪으시고도 이겨내시며 그처럼 후한 일을 하시다니 참으로 존경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삶일까를 보여주신 이 시대에 귀감이 되시는 정광진 변호사 님!
존경하고 더 많은 일을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떠나간 자녀들도 아버지에게서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이보다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