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남산. 경치가 좋아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거쳐하였던 곳이었고, 더위를 피해 골짜기마다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이곳은 신선이 사는 곳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남산골 한옥마을은 자연을 벗 삼아 독서를 좋아하던 남산골 선비들이 모여살던 지역이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1998년 이러한 남산 자락의 옛 모습을 되찾고자 한옥 5채를 복원하여 개장했다.
넓은 정원에서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문. 이곳으로 옮겨온 전통가옥은 구한말에 신분과 직책이 달랐던 다섯 사람의 가옥으로 서로 다른 한옥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의 고관대작들 주거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제1호는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도편수는 조선시대 건축공사를 담당하였던 기술자를 일컫는 말이다. 고종 때 대원군에 의해서 1867년부터 크게 증축되었던 경복궁 (景福宮) 의 중건을 이끈 수석 도편수 이승업의
가옥이다. 청계천이 시작하는 중구 삼각동에 있었던 가옥이었다.
1860년에 건축된 이 가옥은 안채는 위에서 보았을 때 'ㅜ' 자 모양으로, 사랑채는 'ㄴ'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지붕은 크고 높은 팔각지붕이고 부엌이 있는 부분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도편수가 자신이 거주할 집을 어떠한 기술로 지었는지를 볼 수 있다.
안채는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외쪽에 안방이 있고, 꺾여서 부엌이 길게 있다. 건너방은 대청의 오른쪽에 있는데 앞과 뒤를 갈라서 2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지붕인데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서로 길이가 다른 지붕면은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유형이었다.
제3호. 동대문구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재실 (齋室) 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 또는 사당 근처에 세운 건물이다. 이 집을 지은 해풍부원군 윤택영은 순종의 장인으로 조선의 마지막 부원군으로 여러 관직을 지냈다.
제4호 가옥은 종로구 관훈동 민씨 가옥이다. 민씨 가옥은 건축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이전에는 부마도위 박영효의 가옥이라 불렸으나, 조선 말기 관료이자 일제강점기에 은행장을 지낸 민영휘를 비롯한 민씨 일가가 거주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원래는 안채와 연결된 중문간채만이 남아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건너방을 복원하고 사랑채와 별당채를 새로 지었다.
제5호. 종로구 옥인동 윤씨 가옥. 옥인동 윤씨 가옥은 1910년 무렵에 지어졌으며 소유자는 순종 황후의 큰아버지이자 중추원 부의장을 지냈던 윤덕영이다. 가옥은 전체적으로 'ㅁ' 자 모양이며 가운데에 안마당이 있다.
대 저택의 남아있는 일부 건물을 옮겨왔다. 보통의 민가와는 달리 높낮이를 활용하여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 점이 당시 상류층 가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제2호. 종로구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궁궐을 수호하는 무관 김춘영의 가옥이었다. 사괴석과 전돌을 높게 쌓은 방화벽으로 보안에 신경을 쓴 것이 특징이다. 삼청동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기능적으로 잘 구성된 가옥이다. 제1호 삼각동 전통가옥의 바로 뒤에 있었는데, 어찌하다가 그만 지나쳐서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고종 때인 1890년 무렵에 지은 집이다.
3월 23일. 산으로 간 고등어. 친지들과 함께 분당 미금역에서 7~8분 자동차로 갔었던 곳. 더구나 토요일의 점심시간이라 대기번호 105번을 받고 50분을 기다렸던가... 어마어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중에도 언제나 대만원인 곳이란다. 가성비 좋고 엄청 맛있고,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옆집 음식점들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조용하고...
산으로 간 고등어 그리고 삼겹살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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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만에 이어 한국여행기 고향땅이라 더 친근감있게 다가오네요.
남산골 한옥마을 무료인데 한 번쯤은 방문할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