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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여기서 영화의 줄거리를 까발려도 영화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생충>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생충>을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게시물을 읽지 않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 게시물은 길다.
내가 기생충을 관람하면서 가졌던 몇 가지 의문점들이 있다. 이 게시물을 작성하는 이유도
그 의문점들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거의 모든 설정과 서사들이 영화적 언어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다음의 몇 가지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민락 메가박스의 사운드 시스템이 별로였다.
귀에 대사가 잘 안 들어온 탓이 크다.
1. 일단 포스터다. 아니, 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눈은 왜 테이프로 가려놨지? 있는 것
들의 눈은 하얀 테이프로 가려놨고, 없는 것들의 눈은 까만 테이프로 가려 놨다. 왜?
2. 결말이 왜 그래? 갑자기 박사장은 왜 죽여? 그 정도로 박사장이 잘못 했나?
3. 인디언 추장 모자를 쓰고 박사장이 다솜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연기를 좀 같이 하자
는 장면에서 송강호의 얼굴 표정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흔쾌히 동의해주면 될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송강호의 얼굴은 어둡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추장 모자를 쓴 송강호의 얼굴
표정은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 농수로 안을 들여다보는 얼굴과 <마더>마지막 장면에서
김혜자가 춤을 추던 모습처럼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아주 이상한 표정이었다. 어
쩌면 이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게시물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4. 뚜뚜두 뚜뚜두.... 전등을 이용한 모스 부호와 신호는 도대체 왜 집어넣은 거야?
5. 수석은 또 왜?
6. 인디언은 왜 자꾸 나오는 거야?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 영화 속 은유(메타포)들을 들여다보
는 수밖에 없다. 이 은유들의 고리는 영화의 주제를 넘나들며 서로 뒤섞여 있다.
1. 수석
봉감독은 영화 속에 수석은 뭐 하러 쑤셔 넣었을까? 약간 생뚱맞은 소재다. 수석은 그냥 돌
이다 누군가가 그 돌에 졸라 화려한 해석을 가미하기 전엔. 친구가 선물로 가져온 이 수석과
함께 벌어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수석의 지휘아래 있다. 돌을 수석이
라고 부르는 순간, 그 돌에는 이미 부풀려진 해석이 가해졌고 따라서 흔해빠진 돌멩이에서
진귀한 수석으로 탈바꿈하는 신분(계급) 상승이 이뤄진다. 즉, 친구가 가져온 수석은 가족
전원이 피자박스를 접어 가치를 창출하던 반지하 돌멩이 처지에서 억소리나는 수석으로 계급
의 이동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는 신호탄이다.
그렇다면 수석과 그냥 돌멩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수석은 번지르르한 집 원목위에 있고 돌멩
이는 그냥 들판과 강변에 널브러져 있다. 그러므로 차이점은 "그 돌(수석)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다. 즉, 가치와 무가치의 차이는 대상이 위치한 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돌멩이(백수
)가 반지하에 있으면 그냥 백수일 뿐이지만, 번지르르한 대저택에 있으면 수석인척 할 수 있
다. 왜 그럴까? 어차피 모든 수석은 처음엔 그냥 돌멩이였거든. 근본이 빈털터리 백수신세였
다. 그래서 수석엔 돌멩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돌멩이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허구적
장치(고급진 나무받침)가 있지 않은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장치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위
조된 재학증명서, 점잖은 옷차림, 교양 있어 보이는 말투와 낱말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수석을 시냇물에 담그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냇물 속에서 보이는 수석은 그냥
돌덩이다. 돌덩이는 수 많은 비슷한 다른 돌덩이들 사이에 놓여졌을 때 가장 안정되어 보인
다. 그게 멋진 나무 받침대위에 놓여 특별한 돌로 부풀려지는 것은 같은 돌(인간) 사이에 이
미 보이지 않는 계급의 선이 그어지는 것과 같다. 이 불안정성이 유학을 떠나며 기우에게 친
구가 전해준 수석이 선물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는 이유다. 수석이 놓인 평
평한 선반이 기울어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그 수석은 미끄러져 내려 아래에 놓인 무언가를
강타하는 흉기가 된다. 강바닥에 있는 멀쩡한 돌을 왜 집에 들고 오냔 말이다.
2. 집과 공간과 환경
가진 것들의 집, 남궁뭐시기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만든 집이다. 땅위에 있다. 밝다. 없는 것
들의 집, 반지하와 지하다. 어둡다. 지하에 사는 것들이 스멀스멀 있는 것들의 창자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들어가서 알을 낳고 증식한다. 그리고 숙주를 잡아먹는다. 이게 영화 전체의
이야기다. 이게 뭘까? 지하에서 지상으로다. 밑에서 위로 기어오르기다. 이것은 선넘기 이고
이것은 계급투쟁이다. 두 가족이 처음부터 서로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자발적 의지를 가진
그런 투쟁이 아니다.
그 투쟁은 아들 기우가 포토샵으로 재학증명서를 위조해서 면접을 가면서도 자신은 사기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박사장과 그의 아내 연교가 송강호의 몸에서 나
는 냄새에 대해 느끼는 불쾌함과 멸시가 그들의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이
각각 처한 불균형한 상황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진 것 없는 기우는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유무가 가져오는 기울어진 상태가 기우를 그렇게 내몰고
있을 뿐이다. 송강호의 가족은 사악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아니라 가난해서 그저 가난해서 비
열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선균의 가족은 부자라서 심플하고 착할 능력이 있는 것뿐이다. 돈
의 힘으로 이들은 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착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그 나가 바로 기우다. 마냥 착하게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반지하에서 나갈 생각은 접어야 한다. 아무리 내가 착하게 살고 싶어도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땅덩이 전체가 착하지 않은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면 나는 착하려는
의지를 가진 나쁜 놈이 될 뿐이다. 자본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
나 우리는 모두 자본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거대한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투
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3. ~인 척하기
과외수업 중 선생 기우는 박사장의 딸에게 "pretend"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해서 영작을 해
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인 척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선 누구나 ~인 척하는 등장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가난한 가족만 ~인 척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왜 그럴까? 기생충
은 사람의 몸속이라는 환경에 있을 땐 멋들어진 수석처럼 잘 먹고 잘 산다. 그러나 얘네들이
똥구녕 바깥으로 기어 나오면 돌멩이처럼 흉측한 본색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런데 기우네
식구는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거짓된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박사장 가족은 꾸밈없고 착하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박사장의 고등학생 딸은 위선자도 아닌 듯 한데 봉감독은 왜 기우를 시켜 저런 영작을 해보
라는 것일까? 딸도 기생충이라서 그렇다. 스스로 공부할 능력이 모자라 누군가의 능력에 기
대고 싶다. 겉으로는 공부를 하는 척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과외선생과 연애를 하고 있지 않
은가. 박사장의 아들은 미술에 천재성을 가진 아이 또는 비범한 예술성을 가진 아이인 것처
럼 꾸며대고 있다고 박사장의 딸은 기우에게 털어 놓는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믿잖아. 잘 아는 사람 소개 아니면." 박사장의 아내는 힘든 일 할 줄 모
르고 세상의 풍파를 모르고 산 착한 여자다. 매 번 기우네 가족의 말에 속아 넘어 가면서도
사람을 자기는 잘 못 믿는다고 한다. 아주 자~~~알 믿는데? 음식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여자다. 시킬 줄만 알지 제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
헛똑똑이 여자다. 이렇게 기생충은 남의 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교양 있고 잘
난 척 하느라 여념이 없다. 박사장은? 송강호가 운전하는 동안 차 뒷좌석에선 교양 있고 매
너 있는 사장이지만, 뒤에선 인간을 계급적 기준으로 구분하고 멸시하는 사람이다.
박사장 지하실의 부부는 말 할 것이 있겠는가. "제발 살려주세요... "하고 송강호네 식구들
에게 빌어야 하는 처지도 모두 그들이 실제의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쓰고 살아온 탓이다. 특히
, 영화의 초반부에 집사로 등장하는 아줌마는 백인의 집에서 노예들의 우두머리로 행세하는
흑인마냥 마치 백인들과 하나가 된 듯한 여유로움을 보여주지만, 해고된 이후 절박해진 그녀
의 얼굴은 극과 극을 내달린다. 자본의 배려에서 소외된 겨우 며칠의 시간동안 그녀는 위엄
있는 집사에서 간절하고 절박한 한 여인네로 전락하고 만다. 박사장의 부유한 그늘아래 있는
시간 동안, 그 영양분을 빨아먹고 있는 동안은 토실토실하고 기름기가 넘쳤으나, 박사장의
기름진 창자 바깥으로 밀려나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
4. 선을 넘다.
이선균은 아내에게 송강호가 "선을 넘을 듯 말듯 하면서도 넘지는 않더라고..."와 같은 말을
한다. 선이 뭘까? "아쭈, 이 새끼가 어디서 막 먹을라고...주제넘게...분수도 모르고..." 이게 바
로 우리가 아는 그 선이다. 지하에 사는 냄새나는 새끼들은,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은 칙칙하
고 어두운 데서 산다. 밝은데서 살기 힘들다. 불만 켜면 어두운 곳을 찾아 쪼르르르 숨는다.
캠핑을 갔다가 박사장 가족은 예상보다 일찍 귀가하게 되고 미처 거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송강호는 테이블 밑에 숨어서 박사장이 송강호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해 보이는 멸시를 어
떻게 받아들였을까?
이것은 <기생충>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미 송강호네 식구는 자본에 의해서 박사장
네와는 건널 수 없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선이 있다는 것을 송강호
는 맨 처음 화장실에서 박사장 부인의 손을 잡았을 때 어렴풋이 느꼈다. 그는 유부녀의 손을
잡았다. 그때 화장실에서 송강호를 비추던 카메라는 직업적 인사라고 하기엔 조금은 은밀하
게 그리고 선을 넘었다고 보기엔 조금은 건조하게 화면을 처리했다. 남의 여자 입술을 확 덮
칠 듯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가 슬며시 가라앉힌다. 나중에 그 장면의 이유를 알고 봉감독
의 능력에 감탄했다. 박사장이 말하듯, "선을 넘을 듯 말듯 하면서도 넘지는 않더라고..."
그런 송강호의 억눌린 욕망에다 대고 박사장의 부인은 "손 씻었어요?"라고 핀잔을 준다. 이
게 뭐야? 박사장의 부인은 전혀 성적인 기대가 없었다는 거다.
손을 씻었는가? 바로 그때 천한 것들의 더러운 손과 귀한 것들의 깨끗한 손 사이에 뚜렷한
선이 그어졌다. 그때 송강호의 얼굴은 이미 한 번 *같은 감정으로 물이 들었다. 두 번째는
박사장의 아들 다솜이가 송강호와 그의 아내 그리고 딸에게서도 똑같은 냄새가 난다고 코를
킁킁거리며 말을 할 때였다. "아... 인간이 급수에 따라 냄새가 다르구나...." 그런데 테이블 밑
에 누워 박사장으로부터 이번엔 냄새나는 개돼지들의 무리로 멸시를 당하며 다시 한 번 강력
한 철조망 너머의 세계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있는 놈 없는 놈으로 선이 그어진 것도 서
러운데 그까짓 냄새로 인해 자신이 열등하고 천한 인간으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 시점부터 영화 속 송강호는 고용주로서 박사장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선의를 잃어버
리게 된다. 그 자리를 대신해 증오심이 싹 트고 있었던 것이다. 이 증오심이 박사장의 가슴
에 칼을 꽂아 넣게 만드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
"그 새끼 졸라 교양 없어." 이런 비난은 감수할 만 하다. 몸이 아니라 대가리 얘기니까. 그
런데 "그 새끼한테서 ... 아 이상한 냄새가 나... 무말랭이 같은 이상한 냄새가...나." 이런
비난은 대가리가 아니라 몸이다. 대가리는 배우면 된다. 몸뚱이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아
무리 씻어도 깊이 스며든 천한 삶의 온갖 양상들이 빠져나가질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냄새는 송강호의 가족 누구도 서로 인지하지 못하는 냄새라는 것이다. 다 같은 개돼지들이
거든. 그러므로 냄새는 한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 그 인간이 속한 계급 전체를 가리킨다. 그
러므로 냄새는 바로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선이다.
이 과정은 영화 전체의 결말을 꿰뚫는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송강호의 미세한 표정을 통해서
만 드러나기 때문에 숨어있는 열쇠와 같다. 그러나 봉감독의 숨기는 기술은 아직 이창동보단
덜 세련된 느낌이 난다. 그냥 보여주지 왜 숨기냐고? 어차피 줘야할 선물이라도 돌 밑에 풀
섶에 숨기고 포장지에 싸서 보물찾기 하면 더 보기 좋고 재미있다.
5. 남한 사회 전체에 대한 조망창
<기생충>에는 세 개의 가족이 등장한다. 박사장 가족은 미국문화에 대한 동경과 기억으로 가
득차 있다. 그들은 남한에 뿌리를 내린 가진 것들, 즉 양놈들과 그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
는 수하들이다. 백인의 가치와 삶의 방식 그리고 자본과 힘을 대변하는 가족이다. 송강호네
가족과 지하실 부부는 둘 다 가진 것 없는 개돼지 남한 사회의 국민들이다. 먹고 살기위해
서로를 내쫒고 물어뜯어야 하는 개같은 처지의 존재들이다. 꼬부랑글씨 한 두 마디는 해야
여기서 살아남는다.
송강호의 아들 기우는 박사장의 딸이 대학에 들어가면 사귀자고 할 생각을 품고 있다. 박사
장과 나중에 사돈이 될 경우, 기우는 부모로 대역을 동원해서라도 부유한 가족의 일원이 될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답답할 정도로 등장인물들 모두가 육체적 정신적 양공주가 되어있다.
나는 봉감독이 <기생충>에 정치적 복선을 배제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어딘가 냄새
가 많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박사장(양키)은 선을 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어놓은 38선을 넘지 말라는 얘기다
. 그냥 분단 상태의 지속을 의도하고 있다는 거다. 선을 넘지 말고 남반도내에서 아웅 다웅
서로 물어 뜯으면 살라는 것이다. 송강호가 박사장의 가슴팍에 칼을 꽂아버린것은 내가 불가
능하다고 생각하는 남한 내 민중 혁명의 칼이다. 송강호의 머리에 씌워진 인디언 추장의 모
자는 아메리카 대륙의 형제들에게 저지른 미국의 원죄다. 그런데 그 모자를 박사장이 송강호
에게 씌워주고 있다.
6. 지하에 있는 사람들은 왜 모스 부호를 사용하는가?
왜 송강호는 지하에서 자연어로 말하지 않고 기계어(모스 부호)로 말하는가? 나는 이 부분에
서 봉감독이 적절한 은유를 찾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한 번 보고나서 수개월에
걸쳐 감독이 설정한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 모스 부호는 피
지배 민족인 남한의 민중들이 온갖 검.열을 피해 숨어서 진실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보안법하
의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단절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없는 것들이 의사 일
치나 의사 소통이 되질 않는다. 서로가 가난과 박탈의 늪에 허우적 거리면서도 말이 통하질
않는다.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 같다. 장기수들은 벽을 두드려 의사소통을 했다고 한다. 봉감
독이 거기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민중들이 하고픈 말을 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속에서...
칸에서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줬다고?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단지 영화의 일부인 음악이나 시각적 요소만을 고려해서 황금종려상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영화가 어떤 예술적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지 남의 나라 사람들이 알 정도인데,
그 영화가 탄생한 제 나라 사람들이 그 영화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화적으로 쪽팔
리는 일이다. 한국 사회를 투명하게 들여다 볼 기회가 별로 없는 먼 나라의 사람들조차 이
영화가 뭔 얘기를 하려는지 이해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은 "인간은 모두 기생충이다."는 말을 품위있게 한 것에 불과
하다. 그리고 영화 <기생충>은 이것을 다시 품위있게 보여준다.
첫댓글 나는 기생충을 안볼것 이다.
영화 기생충은 이솝우화의..
현대판 버전 일뿐 일거기에 그렇다.
영화 기생충은..
자본(돈)의 막장 위력을..
인간의 잠재의식 깊숙히 이식 시키는..
훈륭한? 역할을 했기에 상?을 탄것뿐.
쥔도 모리게 살째기 맥이는 마약..
모르는 새 인성이 메마르는 뽕..
우화 ~ 영화. S.S.S..
...
즐거운 영화는 아니지만
현대사의 모든 명과암을 영화 한편에 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사람의 삶에 대한 연민이 가슴을 훼훼 젓어 제낍니다
꼭 보십시요
안보시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기생충은 사람과 공생 관계가 아닙니다
공생이란 사람과 시람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니까요
즉 작금의 한국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는
소통이 안되는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미 같습니다
아마도 봉감독의 의도는 조금이라도 현 상황을 개선해서
못 가진 자가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참으로 역량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입니다
남한에 뱃속에 기생충은 미국일까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 양분을 섭취하면 뱃속의 기생충이 양분을 다 훔쳐가죠.
그래서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 개인주의 사회가 꼭 기생충을 가진자의 삶과 딱 맞아 떨어집니다.
개인이 모든 걸 가져야 행복한 사회는물자낭비가 너무 심하죠.
공동자산으로 가지면 매우 절약적인데 개인천국을 만드는게
사회를 아비규환을 만드는 거와 같다고 봅니다.
여태까지 읽은 후기중에 제일 좋은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