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호
아마 20대초반 정도의 사람들은 모를 수 있는 어휘다.
극강의 완행기차. 지금의 KTX와 비교해보면 도무지 비교가 안되는 그런 속도의 열차였다.
비둘기호의 좌석은 지금의 지하철 좌석형태와, 새마을호 처럼 2인씩 앉는 좌석타입이
있었는데, 내가 타본것은 모두 지하철 좌석형태였다.
어렸을적.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생시절. 이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여행을 한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6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고
모든 역에 정차를 했기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던 기억이 있다.
이 비둘기호는 지금처럼 문이 자동으로 닫히거나 열리지 않았고,
아예 문이 없었다. 객차간 문은 있었지만 열차를 타고 내릴때 쓰는 문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어른들은 그곳 발판에 앉아 오징어를 씹으며 소주를 비워내거나
담배를 연신 피워대며 대화를 하거나, 때론 누군가를 욕하거나 둘중에 하나였다.
너무 지루했던 난
자고있던 어머니를 깨우기 싫어 몰래 나와 객차를 나름대로 탐험하기 시작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대학생 형,누나들
젖을꺼내어 물리는 아줌마
책을 보는 할아버지
입을 벌리고 자다가 무엇인가에 놀라 화들짝 깨선 나와 눈의 마주친 어떤 누나
짐을 올리는 칸에 올라가 자고 있던 아저씨
멋진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승무원 아저씨
결국 끝 객차까지 이르렀고, 더이상 모험을 해나가기에는 내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난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객차간 문에는 조그하만 창문이 있었고 모두 투명해서 반대편 객차안을 볼 수 있었는데
더이상 나아가지 않았던 객차의 창문은 까맣게 되어 있어 안을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객차 밖은 환한 낮인데, 왠지 저곳만 밤인 듯 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렸고, 곧 실망했다.
다른객차간 공간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객차의 모습이 사뭇달랐다.
다른 객차는 모두 쇳덩이였는데, 그곳은 나무재질 판자들을 붙여만든 것 같은
객차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곳은 뭐하는 곳일까?
그당시 셜록홈즈에 열광했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의 광팬이었던 나에게
저곳에는 뭔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보거나 듣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그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묘한 믿음. 확신 같은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용히 다가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그 나무객차의 출입문에 다다라
깊게 숨을 고르고 손잡이를 돌렸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해. 나즈막히 외쳤던 것 같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무판자로 이루어진 바닥, 천장, 벽이었고
응당 그곳에 있어야 할 새로운 세계는 없었다.
피터팬의 팅커벨 같은 요정은 없었고, 어머니께서 읽어주셨던 철을 먹는 불가사리도 없었고,
셜록홈즈도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처럼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이었다.
힘이 쭉 빠졌고, 탐험의 종료 휘슬이 귓전에 맴돌았다.
터벅터벅 걸어가 객차의 끝까지 걸어가는 순간
내 눈에 믿지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한쪽 객차 벽면 전체가 열려있었고 그 마치 거대한 TV처럼
다소 빠른 속도로 바깥풍경이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멀리 보이는 곳은 산은 천천히, 주변마을은 좀더 빠르게,
그리고 가까운 나무들은 마치 초록색을 흩뿌리는 것 마냥 더욱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멍하게 있던 나는
그곳에 앉아 한참을 거대한 TV를 감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행복하다. 이순간이 행복하다.
아직 어렸었던 내가 사전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바로 이순간이 바로 행복한 순간이다라고
정의해버릴 만한 시간을 보냈다.
온통 초록색이었다가,
다리위를 지날때 갑자기 사라진 육지로 화들짝 놀래기도 했다가
조심스럽게 기어가 머리만 내밀로 아래를 봤을때
푸르스름하게 펼쳐진 수면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고,
터널을 지날때 온통 어두워진 사위에
잠시 겁에 질려있다가 다시 환해진 장면에 웃기도 하고
난 그렇게 비둘기호 안에서 행복을 정의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다음 역에 다다라 열차가 천천히 섰을때
비로소 어머니 생각이 났고, 재빨리 그 행복의 공간을 벗어나
어머니가 계신 객차로 뛰어갔다.
다행히 어머니는 아직 주무시고 계셨고 내가 옆에 앉자 눈을 뜨시고는
화장실 갔다 왔니?
아니요
그럼 어디 갔다 왔어?
좀 돌아다녔어요
위험하니까 함부로 다니지 마라.
네.
성인이 된 지금
난 그 행복의 시간,공간에 부합하는 시간,공간에 있는지 항상 자문하곤 한다.,
좀더 빨리지고,
편해지고,
지루하지 않게되었지만,
초록색과 깊은 푸른빛과 잠시 찾아온 어둠과
그 커다란 TV에서 뿜어오는 산들바람이
이제는 경험하지 못할 것이 되어버린 지금
행복의 정의가 '경화된 빠름' 이 아닌 '행복한 느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 아날로그를 추억하는 40세 광주남-
첫댓글 많이 드셨네요...40대의 삶은 어떤가요?
팍팍해. 삶은 계란처럼. 그래서 그런가...팍팍해.
@일마레 ㅋㅋㅋ 언제 안오냐? 술사줘~
이빠~
천안가면 한잔하자
어렸을때 경춘선 비둘기호가 600원 통일호가 1,500여원, 무궁화호가 4,000원대였던가? 싼맛에 서울에 놀러가려고 비둘기호를 자주 탔더랬죠. 패밀리게임기팩을 사러 용산도 가고 베낭에 옷가지몇벌 쑤셔넣곤 구로에계시던 엄마와 살겠다고 가출도 하고...비둘기호티켓이 예전 지하철티켓처럼 두꺼운종이에 역무원이 펀치로 구멍뚫어줬었는데...돈이 없을땐 뻔뻔하게 걸어들어가 티켓검사할때 화장실에 숨어있곤 했었죠. 할튼 오랜만에 향수에 젖게 되는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제 점수는요...
다중교통시설 무임승차 범죄자
어릴적 서울~문산 경의선 비둘기호많이탔었던기억이나네요.....지금 일산신도시로 변했지만...... 일산갈려면 뻐스보다 비둘기호기차타고 애들이랑 고기잡으러가던 아련한추억이~~^^
시골살때 제천 장날에 어머니 따라 기차탄다고 기뻐 날뛰던게 생각나네요.
그러다 무궁화를 처음 탓을때... 신세계가 열렷죠 ㅋ
이 기차 학교갈때 수원옆 원평이란 곳을 지나가서 우리가 탄 버스가 멈추곤 했었지~ㅋㅋㅋㅋ
들어본것 같기도 하네요 ㅋㅋ
난 촌년이라 그런가 ㅋㅋㅋㅋㅋㅋㅋㅋ비둘기호 많이 타봣는데.
절대 나이 먹어서 비둘기호를 아는거 아니구요.ㅎ
촌년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통일호는 타봣는데 비둘기는...
제주도엔 기차가 없어서.... 논산훈련소 입소할 때 처음 기차를 탔었지요. 입석 할아버지한테 자리를 양보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