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2일 토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인 원로>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5,1-4
사랑하는 여러분,
1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원로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2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3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4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사랑하시던 제자도,
첫눈에 거짓 없다고 칭찬하시던 제자도,
독립운동에 투신하던 제자도 아닌
어부 출신의 단순하고 우직하며 열정적인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이유를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뚜렷하고 분명한 신앙 고백에서 찾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신앙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직무 수행에는 지식이나 인간적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 이끌리는 신앙이 무엇보다 먼저 요구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에는 사목의 큰 책임을 맡는 사람에게
먼저 신앙 고백을 요구하는 전통이 이어져 옵니다.
이미 초세기 교부들이 인정하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언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확인한 교황의 수위권은
하느님 백성의 ‘친교’인 교회 일치의 중심이자
주교단의 머리로서 가지는 권한입니다.
교황께서 국제 사회에서 바티칸 시국의 수반이시기는 하지만
베드로에게서 이어받은 직무는 행정이나 조직 운영,
또는 정치를 위한 것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일 곧 사목을 위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당신을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의 본당 사제요
로마의 주교라고 즐겨 부르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을 바로
그러한 목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사람으로 소개하고,
다른 목자들에게 자진해서, 열성으로,
모범으로 양 떼를 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돌보는 임무를 맡은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특히 교황님을 위하여 오늘 더 기도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구원받고자 하는 인간은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 말이 아닙니다. 성 토마스아퀴나스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구원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믿음의 대상도 모르고,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로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이야기합니다.
구원 대신 ‘돈’이 자리 잡으면서, 믿음의 대상도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원하는 것도 돈이고, 돈 벌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부로 살면서 분명한 깨달음은 돈이 나를 편하게 해 주기는 하지만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돈, 돈, 돈’ 하면서 돈을 애지중지하던 사람도 돈을 들고서 하늘 나라에 가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모든 것처럼 여겼던 ‘돈’이었는데,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자녀들이 이 돈 문제로 남남보다 더 나쁜 관계로 돌아서는 경우도 참 많이 보게 됩니다.
무엇을 지향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해 줄 하느님을 믿어야 하고, 하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원해야 하고, 이를 위해 지금 하느님의 뜻인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복음에도 나오듯, 베드로가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 또 이 세상 안에서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누구를 믿고, 무엇을 원하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 베드로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점을 분명히 알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1베드 5,2.3)
구원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베드로 사도가 보여 주셨던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마음, 그리고 지금 열성을 다해 기쁜 소식을 전했던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야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시달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간의 생활에는 기뻐하거나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미워하거나, 여러 가지 감정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인간 생활 전체를 볼 때, 겨우 1%를 차지할 뿐 나머지 99%는 다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다자이 오시무).
사진설명: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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