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4일 토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마태 17,10-13)
♡엘리야는 이미 왔으나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늘 복음에서는 엘리야의 재림에 대한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 바리사이들은 엘리야가 종말 전에 온다(말라 3,23 참조)고 하였다. 엘리야는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며 모든 것을 예전의 상태로 돌려놓는다고 하였다.
바로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변모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이 영광스러운 변모가 그분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왜 선구자인 엘리야가 나타나지 않는지 물었던 것이다.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10절) 여기서 “먼저”라는 말에는 엘리야가 먼저 오지 않으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자의 오심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로 소개하시지만,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의 화해와 재건을 이룩하지 못하고 참수 당했기 때문에 재림한 엘리야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엘리야가 아직 재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오실 메시아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미리 온다는 것을 예언서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요.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야의 모습으로 세례자 요한이 왔고, 그 후에 메시아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사람들은 예언자 엘리야의 모습으로 온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세상의 눈으로만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꾸준함을 가지고 하느님께 집중해야 하는데, 그들은 하느님을 말하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만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세례자 요한도 또 예수님도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처럼 보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은 더 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도 직접 그 모든 고통과 시련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꾸준함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우리의 구원이 펼쳐집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