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차장에 새겨진
생의 기척
작디작은 몸 사이사이
아직 태어나지 못한 저녁
젖은 발목
땅의 피부
정지선 바깥에 무춤하게 서 있는
똬리 튼 지렁이
한 자 한 자 생을 복기 중이다
모든 통점은 바닥의 힘이다
-『김포신문/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2023.09.22. -
〈김승필 시인〉
△ 2019년 계간 <시와정신> 등단, 시집<옆구리를 수거하다> 황금알 2021, 청소년 고전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청소년 문학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에 참여.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세상의 모든 것은 한 점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의 모든 성체는 하나의 작은 세포에서 발아되었다. 세상을 경영하거나 운행하는 모든 힘은 먼지보다 작은 미세한 입자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모든 출발점을 바닥이라고 부른다. 땅바닥, 강바닥, 물체의 평평한 밑면이라는 의미보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지점, 혹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지점을 시인은 바닥이라고 부른다.
지렁이 한 마리가 기어간다. 생을 복기 중이라고 한다. 바닥은 힘의 원천이 된다. 바닥을 경험한 사람만이 바닥을 안다. 여전히 우리는 생을 복기 중이다. 아주 천천히.
한 달 동안 시 두 편에 붙들려
꽃 지는 것도 몰랐다
숨통이 트이고 막힌 것이 뚫려
나는 부자기 되었다
간밤 퉁 소리 내어 고치는 동안
다듬잇방망이 듣는 것 같은 편안함에
활자가 소리가 되길 기다렸다
세상에 나올 생각이 없으므로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내 안에 언제 단단한 고통의 항체 생길까
자작나무는 지난 여름 내가 한 일을 아는 듯
제 몸에 기록된 모든 기억의 나이테를 천천히 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