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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랑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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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야기 주머니 스크랩 (하나패밀리)단풍의 본좌 내장산 여행(0.10.31)
숲길(吉) 추천 0 조회 64 10.11.05 19: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하나패밀리)단풍의 본좌 내장산 여행(0.10.31)

 

지난 번에 설악산 흘림골, 주전골 단풍을 구경하여 이번에는 내장산 단풍을 구경하기로 했다.

6시 20분까지 시청역 11번 출구로 오라는 문자가 와서 아침 4시 30분경에 일어났다.

씻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길이 많이 막히므로 6시 20분까지 오라는 상품이 많은 것같다.

11번 출구를 나가니 낯익은 얼굴이 있는데 김수민가이드였고 지리산에 간다는 것이다.

요즘 1박 2일로 지리산 둘레길이 소개되어 여행객이 엄첨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가다가 탄천 휴게소에 한번 쉬고 내장산으로 갔는데 5번 주차장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등산이라도 할려고 하면 7시까지 내장사 입구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

내장산 단풍은 다 좋은데 주차장에서 한참 기다려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버스나 단풍열차를 타던가 아니면 일주문까지 걸어가야 한다.

무료셔틀버스 탈려고 기다리는 여행객이 너무 많아 줄이 길게 이어졌고 버스가 내린 곳에서 영업단지를 지나가는 길도 꽤 되었으며 또 있는 버스나 단풍열차도 길이 너무 길어 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 걸어가야 했는데 이 길은 단풍터널길인데 걷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단풍터널길은 아직 단풍이 절정은 아니었고 간간히 괜찮은 단풍이 보였다.

가면서 앞에 보이는 산을 보니 산 중턱에 고가도로가 나 있는데 나중에 보니 백양사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감이 열린 감나무와 모과 열매가 열린 모과나무도 보였다.

케이블카 타는 곳을 가까이 가니 호수가 있고 그 속에 청색 지붕을 한 육각 정자가 보였다.

김가이드가 설명한대로 케이블카는 줄서있는 사람이 많아 도저히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케이블카 있는 곳에서 산위를 보니 팔각정이 있는데 그 위에 반달이 보였다.

여기서도 단풍열차를 타고 갈려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일주문으로 갔는데 일주문보다 사람을 보는 비중이 더 높은 것같았다.

일주문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벽련암을 향해 갔는데 길이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고 경사가 좀 있었다.

조금 가니 백년약수가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물은 전혀 나오지 않는 것같았다.

이 길은 단풍이 거의 들지 않았고 이 길에 단풍이 들려면 11중 중순은 넘어야 할 것같았다.

중간에 매점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쉬어 가고 있었다.

지나는 길에 안내판이 있어 보니 나무에 큰 혹이 달려 있는 나무가 있었다.

이 길에 있는 느티나무가 아주 흥미로웠는데 모두가 하늘로 쭉 쭉 벋은 것이다.

그러니 이 나무가 신라와 고려때까지 건축자재로 쓰였다는 것인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도 바로 이 느티나무로 지어 졌다는 것이다.

숲에 있는 느티나무는 바로 이렇게 쭉쭉 벋는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벽련암 근처에 왔는데 바로 올라가면 서래봉이고 좌측으로 꺽으면 벽련암인데 오후 2시까지 일주문까지 와야 한다고 가이드가 말했는데 서래봉을 갔다가는 도저히 올 수가 없을 것같아 근처의 화장실만 들리고 벽련암으로 향하여 자연관찰로를 돌기로 했다.

내장산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단풍도 아니고 바로 이 벽련암을 본 것이다.

서래봉 밑에 정말 그림같이 앉아 있는 절이었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대웅전이고 우측에 5층석탑과 천불전이 있었다.

대웅전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었고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기위해 혜가선사가 팔을 짜르는 그림도 있었다.

대웅전 편액은 이 절을 다시 복원했다는 진공스님이 쓴 것으로 적혀 있었다.

천불전은 운보라고 되어 있는데 설마 김기창 화백은 아니겠지..

천불전 속에는 아미타불과 협시보살 그리고 천불이 조성되어 있었다.

절 형편이 좋은 지 차도 2대나 주차되어 있었다.

천불전 뒤에 요사채가 있었는데 대나무로 출입금지를 하고 있었고 담위에는 호박을 얇게 썰어서 말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당에 엄첨나게 큰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세상에 처음 본 제일 큰 단풍나무였다.

단풍나무를 보고 감탄하고 있는데 옆에 기와 시주를 받는 스님이 말하길 더 컸는데 옆에 있는 큰 가지 부분이 꺽여서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스님은 당단풍이라고 그랬는데 잎이 갈라진 것이 9개가 아닌 것으로 보아 당단풍은 확실히 아니고 그냥 단풍나무로 추정되었다.

요사채 옆에 이 단풍나무 보다 더 굵은 돌배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가 요사채를 덥치게 되어 있어 요사채 반대로 쓰러 뜨렸는데 쓰려지면서 단풍나무를 쳤다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절 명당인 것같다고 했더니 대웅전 앞에 있는 누각에 가서 저기 왼쪽에 보이는 것이 장군봉이고 그 옆이 연자봉인데 마치 제비가 저기 팔각정쪽으로 날아오는 형상이므로 이 벽련암 터는 풍수지리상 연지혈인 명당이라는 것이다.

6.25때 소개작전으로 기름을 부어 절을 태워 버려서 지금의 진공스님이 다시 세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암자가 내장사로 불리다가 어느 시기에 벽련암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벽련암은 가을에는 홍련암, 겨울에는 백련암, 봄에는 청련암 등 사계절 이름이 금강산처럼 다르다는 것이다.

금년 단풍의 절정은 11월 10일경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 암자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에 바위가 있으면 그 바위위에 관세음보살이 조성되어 있었다.

대웅전 왼쪽에 종무소가 있었는데 어찌보면 이 자리가 대웅전보다 더 명당처럼 보였다.

내려와서 보니 누각의 편액은 벽련선원이었다.

벽련암을 나와서 원적암으로 향해 갔는데 참취도 보이고 산국도 보였다.

빨간 열매를 보았는데 윤노리나무 열매인지 모르겠다.

이 길도 단풍이 아직 들이지 않았고 너덜겅으로 만들어진 사랑의 다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너덜겅이란 너덜바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걸어갈 때 딸깍 소리가 안나면 소원 성취가 된다는 것이다.

겨우살이 군락지를 만났는데 노란 열매가 보이지는 않았다.

원적암 가기 바로전에 내장사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점심을 먹고 원적암으로 갔다.

원적암 대웅전에는 이상하게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밖에는 금박을 입힌 관세음보살로 추정되는 커다란 입상이 있었는데 암자는 아주 작았는데 풍경이 무슨 악기처럼 생겼다.

비자림 숲을 통해 내려왔는데 비자림 숲은 정말 굉장했고 감동적인 군락이었다.

이은상 선생의 시가 있었는데 단풍보다 겨울의 비자림 숲이 더 좋다는 것이다.

조금 더 내려와다 보니 300년된 모과나무를 만나 만져보고 감탄하고 갔다.

경사진 곳을 내려오니 큰 돌기둥 2개가 있는데 나무관세음보살과 나무석가모니불이라고 적혀 있고 용조각 석상도 넘어져 있었다.

쭉 원적계곡을 내려오니 내장사가 있는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누각을 밑으로 올라가니 단풍이 들은 단풍나무가 있고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웅전앞에 진신사리탑을 조성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형형색색의 등이 달려 있었다.

대웅전 이름이 의창군 서라고 쓴 것을 보니 화엄사 대웅전을 집자한 것처럼 보인다.

대웅전에 역시 심우도와 도승의 세계가 그려져 있고 대웅전 뒤에는 굴거리나무가 있었다.

관음전, 극락전, 명부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천왕문, 부도군 등으로 절 규모는 컸지만 그리 특색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돌아올 때는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주 서둘러 빨리 걸어 내려와서 버스타는 데까지 내려와서 줄을 선 다음 순서가 되어 내려왔다.

단풍도 좀 이른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너무 힘든 여행이었지만 벽련암, 커다란 단풍나무, 비자나무 군락, 모과나무를 보아서 위안이 되었다.

올라오는 길은 일요일이라서 길이 너무 밀려서 시청앞에 와서 저녁을 먹을려고 했는데 음식점이 문을 닫아서 집으로 갔다.

기사님과 김용선 가이드가 너무 수고를 많이 한 날이었다.

좋은 상품을 개발한 우리테마투어,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하나투어, 하나패밀리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래 내용은 참고하셔요 ^^

 

 

내장산

 

높이 763m. 노령산맥의 중앙에 솟아 있으며, 주봉인 신선봉을 비롯하여 월령봉·서래봉·연지봉·장군봉 등 600~700m의 기암괴봉들이 동쪽으로 트여 말굽 모양을 이룬다. 예로부터 대한8경의 하나로 꼽혔으며, 지리산·일출산·천관산·능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철따라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특히 가을 단풍과 겨울의 설경이 매우 아름답다. 남동사면에서 발원한 추령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들며, 남서사면에서 발원한 황룡강은 영산강 상류로 흘러든다. 또 북쪽 계곡 물은 모여서 내장천을 이루며 동진강 상류로 흘러든다. 참나무·단풍나무·층층나무 등의 낙엽활엽수림이 울창하다. 원적암·백양사 일대의 비자나무와 서래봉 기슭의 굴거리나무는 식물분포상 북방한계에 자라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큰 수종으로,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굴거리나무는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식동물로는 검은독수리·까막딱따구리·회색줄무늬다람쥐·소쩍새·파랑새 등이 있다. 1971년 11월에 서쪽의 입암산과 남쪽의 백양사를 합하여 당시의 전라북도 정주시와 정읍군·순창군, 전라남도 장성군 일대의 76.0㎢를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곳은 북동부의 내장산지구와 남서부의 백양사를 중심으로 한 백암산지구로 나뉜다. 내장산국립공원은 뛰어난 산악풍경과 백양사·내장사 등의 사찰과 등산로가 있어 관광객과 등산객이 사철 붐비는 곳이다. 고속버스나 열차로 정읍시까지 갈 수 있으며, 정읍시에서 내장산 입구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관광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정읍시 중심시가지에서 남동쪽 16㎞ 지점에 위치한다. 내장저수지가 입구에서 2㎞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기암괴봉·폭포와 숲이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답다. 특히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며 다채로운 단풍제가 연례행사로 열린다. 내장사는 636년(백제 무왕 37)에 만들어진 절로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다가 1938년에 지금의 자리에 건축되었다. 불출봉에는 커다란 석굴이 있는데 이 속에서 부처가 나왔다 하여 불출암이라고도 한다. 서래봉은 내장사 북쪽에 있는 바위산으로 고내장·장군수·석란정터 등이 있다. 금선계곡은 최고봉인 신선봉에서 시작되며 기암괴석이 많다. 계곡을 따라 천연동굴인 용굴, 기름바위, 용문, 금선폭포, 도덕폭포, 백년약수터 등의 명소가 있다. 특히 문필봉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내장산은 원래 본사 영은사(本寺 靈隱寺)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고 불리었으나 산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하여 내장(內藏)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지명도 내장동이라고 부르게 된것이다.정읍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내장산은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600∼700m급의 기암괴석이 말발굽의 능선을 그리고 있다.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하는 내장산은 예로부터 조선8경의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남원 지리산·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부안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백두대간이니 호남정맥이니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산맥관은 하천의 수계를 나누는 분수계를 기본개념으로 하며 노령산맥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호남정맥에 해당한다.호남정맥에 있는 내장산은 이런 점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장산은 서쪽의 입암산(笠巖山, 해발 626m), 남쪽의 백암산(白巖山741m), 백학산으로도 불린다.내장산과 입암산의 북쪽사면은 동진강의 상류가 되고 입암산과 백암산의 남쪽사면은 영산강의 상류인 황룡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내장산과 백암산의 동쪽사면(순창군 복흥면 일대)은 섬진강의 상류가 된다.

노령(蘆嶺)이란 이름이 유래된 갈재의 서쪽에 있는 고창 방장산(해발 710m), 동쪽에 있는 입암산·백양사의 뒷산인 백암산을 연결한 능선은 곧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경계이기도 하다.

내장산은 1971년11월17일 인근 백양사 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총면적이 81.715㎢에 달하는 내장산국립공원은 전북에 속해있는 면적이 47.504㎢, 전남쪽이 34.211㎢로서 정읍시와 순창군, 전남 장성군에 걸쳐있다.

 

산은 그 안으로 들어 갈수록 꼭꼭 숨겨 놓은 비경들을 하나 둘 꺼내 놓는다. 짙푸른 능선과 능선, 금새라도 불타오를 것 같은 붉은 단풍, 그 숨겨진 보물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사람들은 이 산을 내장산이라고 부른다.

호남의 금강, 보물산 내장산.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에 자리하고 있어 전북 정읍과 순창, 전남 장성에 걸쳐 있는 내장산국립공원은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 지역을 포함하여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의 휴식처로 자리해 왔다.

예로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기도 했다. 내장산 무공해 단풍열차에 몸을 싣고 찬찬히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거기 주봉인 신선봉을 중심으로 까치봉, 불출봉, 서래봉 등 해발 6~700m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들이 말발굽형태로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명산에 걸맞는 내장산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준다.

해금 모양의 독특한 형세를 이루고 있는 내장산의 봉우리와 계곡에는 야생화와 무성한 나무들이 산을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쉬이 놓아 주지 않는다.

사철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내장산 금선계곡과 크고 작은 폭포가 곳곳에서 절경을 연출하는 남천계곡 등 내장산의 계곡들은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맑게 씻어낸다.

여기저기 살아 꿈틀대는 건강한 자연생태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내장산. 전망대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천연기념물인 굴거리 나무 군락과 백양사의 비자나무 군락은 학술적 가치와 함께 내장산의 풍미를 더한다. 특히, 내장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깃대종인 진노랑상사화와 비단벌레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개체 보존에도 힘쓰고 있다.

내장산이 주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만산홍엽. 가을철 오색찬란하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다. 그 중에서도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이르는 108그루 단풍 터널 길은 가히 내장산 단풍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단풍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길을 걷노라면, 누구라도 가을 내장산 단풍이 주는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이 단풍터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내장사. 병풍처럼 둘러쳐진 내장산 연봉들 아래 아담하게 자리한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에 창건된 사찰로 고즈넉한 산사의 기운이 지친 심신을 다독인다.

내장산 줄기와 연결 되어 있는 백암산 백학봉 아래에는 대찰 백양사가 자리해 있다. 절 곳곳에서 풍겨오는 천년의 숨결. 한 폭의 수채화처럼 연못가에 서 있는 쌍계루가 그 운치를 더한다.

이 외에도 내장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여 조선의 역사를 지켜낸 유서 깊은 용굴과 벽련암, 약사암 운문암 등 암자를 비롯하여 우리 역사의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내장산국립공원 사무소에서는 탐방객들의 효과적인 탐방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자연관찰로 중 가장 먼저 조성된 원적골 자연관찰로, 또한 내장산의 숲과 나무를 온몸으로 체험해 보는 다양한 탐방프로그램과 동식물 서식지와 생태계는 물론 내장산의 비경 등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탐방안내소,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자연 사랑의 마음을 심어 주기 위한 내장산 사랑 그림대회와 내장산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전하는 사진 전시회, 이 외에 내장산 홍보의 날을 별도로 운영함으로써 내장산국립공원이 사계절 내내 보다 많은 이들로부터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원 사무소에서는 탐방객 안내나 쾌적한 공원 탐방환경 조성을 위한 활동은 물론 자연자원조사와 모니터링 활동을 비롯해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한 시설물 관리와 재난관리까지 산과 사람이 함께 서로를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선진 탐방문화를 정착시켜나가고 있다.

그 푸르른 생명력으로,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묵묵히 우리와 함께 해 온 산. 오를수록 바라볼수록 그 신비로움이 한층 더해가는 산. 내장산. 천년만년 그렇게 우뚝 서서 뭇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로 넉넉한 대자연의 어머니로 우리 곁에 서있으리라.

 

내장산 전설 산삼약수

 

어려움을 모르고 살면서도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손씨 부부가 있었는데 전국의 명산과 명찰을 찾아다니면서 자식 얻기를 기도하며 불공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날 강원도 금강산에서 기도를 올리던 아내가 깜빡 조는 꿈결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 너희 정성이 지극하여 내가 한 아이를 내려줄 것이니 행여 한시라도 부처의 고마움을 잊으면 그 아이가 성치 못할 것이니 그리 알고 명심하라 "

이르면서 새빨간 고추를 내려주기에 벌떡 일어서 받다가 꿈을 깨었는데, 그로부터 열 달 만에 옥동자를 낳았다. 아들은 영특하고 건강하게 자랐으며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손씨 부부는 며느릿감을 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허름한 옷차림을 한 스님이 찾아와 평안도에 천생배필인 규수가 있으니 짝을 맞추어 주라하여 스님이 떠난 후 중매쟁이를 시켜 평안도 땅에 보냈는데 중매쟁이 말에 의하면 스님이 말한 처녀는 가난한 집 규수에다 다리까지 저는 불구의 몸이라는 것이다. 어렵게 얻은 자식을 불구에게 장가 보내라고 한 스님이 원망스러워 손씨 부부는 부처님의 은혜를 잊고 부처님에게 폭언을 했다. 그로부터 하루 이틀이 지나자 그토록 건장하던 아들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서 몰골이 곧 죽을 상이 되었다.

어느날 아들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너는 너의 부모와 인연이 닿지 않으니 당장에 집을 나와 전국의 명산대찰을 순례하고 불문에 들어 불자가 되면 새로운 뜻을 이루리라"고 현몽하였다. 날이 밝자 부모님께 고하고 집을 나와서 절을 찾아 다니며 불공을 드리고 불경을 외웠다. 몇 달이 지나 내장산에 가면 네가 득도할 공부방과 네 병을 고쳐줄 약수가 있는데 여기서 무얼 하느냐는 보살의 꾸중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나 그 길로 내장산에 갔으며 공부방과 약수가 함께 있는 곳을 찾아 자리잡고 오직 불경공부와 불공드리기에만 정성을 다하고 바위틈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약수를 받아 마시며 지냈다. 이미 스님이 된 젊은이는 백일기도를 결심하고 기도에 전념하면서 백일기도가 끝나자 스스로 느낄 만치 몸이 가벼워졌고 3년이 지난 후에는 당당한 몸집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에 통달한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전국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칠 생각에 내장산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지내던 암자 주변을 거닐던 스님이 한 곳에 이르자 깜짝 놀라 멈추었다. 지금껏 자신이 받아 마시던 약수터에서 얼마 멀지 않은 산기슭에 서너평되는 산삼밭이 있었다. 기도와 공부에 전념하느라 몰랐지만 이제 보니 자신은 산삼에서 스며 나오는 약수를 먹고 살아온 것이었으니 이 세상의 덧 없는 인연을 단념하고 부처님과의 인연에 몸과 마음을 바친 그에게 이러한 부처님의 은혜가 내린 것임을 새삼 깨닫고 더욱 정진하여 큰스님이 되었다는데 이 산삼약수터는 지금의 원적암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내장산의 등산로는

 

1.송이바위에서 유군이재로 올라 장군봉을 거쳐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과

2.일주문 입구에서 벽련암을 거쳐 서래봉으로 오르는 서래봉 코스,

3.내장사에서 연자봉을 거쳐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

4.내장사에서 금선계곡을 타고 기름바위를 거쳐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

5.내장사에서 먹뱅이골을 따라 불출봉으로 올라 까치봉을 거쳐 신선봉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 내장사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 영은조사가 창건한 것으로서 본시 지금의 내장사 어귀인 부도전 일대에 50여동의 절을 짓고 영은사라 했다고 한다.

고려 숙종과 조선 명종 때에 전각과 당우를 크게 고쳐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됐고 그 뒤 정조 때에 다시 일으켜 세웠는데 이렇게 역사가 깊은 이 절은 1925년 본사를 백련암으로 옮겨 백련사라 하고 옛 절터에는 영은암을 두었다가 1938년 지금의 자리에 내장사를 세웠다

 

○ 용굴암

신성봉 아래 있는 천연의 동굴로 굴안에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임진왜란때 조선왕조실록 등 전주사고의 전적과 경기전의 조선 태조 영정을 피난 시켜 보관했던 곳이기도 하다. 태인 출신의 손홍록과 안의는 전주성의 위태롭게 되자 재빨리 전적과 태조 영정을 밤을 이용하여 이 곳에 옮겼는데 이곳에서 1년1개월간 보관했다가 해주를 거쳐 묘향산 보현사 별전으로 옮겨져 무사할 수 있었다.

 

○ 원적암

이 암은 석가여래의 열반상을 봉안했던 곳으로 고려 선종3년(1086년)에 지은 것인데 인도에서 들여온 열반상은 중국 와불사 것과 예술적 가치가 백중했으나 70여년전에 도난당했고 지금의 것은 상아로 만든 것이며, 북두서면의 석가여래의 열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2. 서래봉(西來峰, 624m) : 내장산의 북쪽을 두른 암산이며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이다.

암봉(岩峰)의 모양이 마치 농기구인 써래처럼 생겼다 하여 "써래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달마조사(達磨祖師)가 양(梁)나라로부터 이웃에 왔다하여 "서래(西來)라고 쓰기도 한다.

서래봉은 약1km의 바위절벽이 그대로 하나의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기묘한 바위절벽 아래로 단풍나무가 아름드리 둘러쳐저 있어 마치 여인이 고운 치마를 입은듯한 자태이다.

 

3. 불출봉(佛出峰, 619m) : 서래봉 줄기의 서쪽 끝에 있는 봉우리를 이르며 원적암의 주봉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장관이라고 하여 불출운하(佛出雲河)라고도 하며 남쪽 암벽에 불출암이 입지하고 있던 반호반굴형의 커다란 공간이 있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약200m 지점의 암벽에 "내장풍악(內藏風嶽)"이라는 각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부터 얼마나 좋은 경관이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불출봉에 안개나 구름이 끼면 그해 가뭄이 계속된다고 한다

 

5. 연지봉(蓮池峰, 670m) : 불출봉에서 서남쪽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로서 이곳에서 발원하는 내장산 계곡의 물이 서래봉을 돌아 내장호를 이루며 동진강 줄기의 근원이다.

 

8. 연자봉(燕子峰, 675m) : 산봉우리가 붓끝 같다고 하여 일명 문필봉이라고도 하며, 이곳에 제비 명당이 있다하여 연자봉이라고 하였다. 대웅전 앞에서 연자봉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면 좋은 문장이 나오며 일류 명사로써 입신출세한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는 8각정의 2층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200m 위 지점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우화정(羽化停) 지구 사이를 운행하고 있다.

 

9. 장군봉(將軍峰, 696m) : 추령에서 연자봉 중간에 솟아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승병대장 희묵대사(希默大師)가 활약했다고 전해지는 험준한 봉오리로서 수목이 울창하다. 산정에는 지휘대가 있고 이것을 장군대 또는 용바위라 한다.

 

벽련암

 

전라북도 기념물 제73호(1985년 8월 16일 지정)인 벽련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정읍조에 의하면 "백련사는 내장사라고도 말하며 내장산에 있다"고 하였다

서래봉 중봉 330m 고지에 있으며 원래 내장사란 이름으로 일컬었는데 근세에 와서 영은암(현 내장사)을 내장사로 개칭하고 이곳은 백련암이라 이름하였고 나중에 벽련암으로 고쳐쓰게 된다.

그후 현 내장사와 구분하기 위해 김창한이 "고내장"이란 서액을 걸고 이 일대를 고내장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제 의자왕 20(660년) 환해선사의 창건으로 1925년 백학선사가 본전인 극락보전과 요사를 중건하고 선당(호상소림)을 세웠는데 6·25병화로 1951년 소실되었다. 또한 일찍이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백련암(白蓮菴)"을 "벽련암(壁蓮菴)"으로 개칭할 것을 권하고 서액을 써 걸은 사실이 있는데 이 또한 6·25사변 때 소실되었다.

서편에는 연대 미상의 석종부도 1좌가 있으며 뒤편의 암벽에는 이 고장 출신의 여류명필 몽련당 김진민의 「석란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 벽련암 석축대를 쌓을때 전해져온 전설에 의하면 희묵대사가 서래봉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수제자 희천이 이를 받아 쌓아 올렸다고 하며 이 곳은 1986년 당국의 복원계획에 의하여 중건되었고 현재 복원이 진행중이다.

고내장은 내장산 제일경으로 일컫는 명소로 오봉 김제민이 춘경을 읊은 천불전의 위치가 동일지역으로 추측된다.

 

내장사

 

"내장사"는 1979. 12. 27 전라북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面積)은 31,138㎡에 이르며 백제 무왕 37년인 서기 636년에 영은조사가 내장산 내에 오십 동의 큰 절을 세웠다. 그 뒤 고려때 숙종 3년인 서기 1098년에 행안선사가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것으로 고쳐 이룩하였다고 전해온다.

또한 조선조 명종 22년인 1567년에 희묵대사가 법당과 요사(절에 있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집)를 지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뒤 인조 17년인 1639년에 부용대사가 사우를 짓고 불상을 도금했으며, 정조 3년인 1779년에 영운대사가 대웅전 십왕전을 짓고, 요사를 새로 지었으며 근세에는 백학명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키며 어느 때인가 영은사를 내장사로 호칭하게 되었다.

근래에 와서는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나, 6.25사변 때인 1951년 1월 25일에 방화로 전부 타버리고, 1957년에 요사, 1958년에는 대웅전을 다시 지었으며 정부의 국립공원 개발계획에 따라 1973년에 일주문, 1975년에 명부전, 1978년 정혜루를 다시 짓고, 1978년에는 사천왕문을 새로 세웠다. 1979년에는 인도로부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영은사에는 문루인 정혜루가 있으니 한창 절의 세력이 가장 번창할 때 세워진 것으로 세조 12년인 1466년에 시작하여 다음 해에 다 지은 세 칸 루각이다. 세조 9년에 전라 관찰사를 지낸 유학자인 성임(중경)은 그의 저서인 [정혜루기]에서 그 규모나 제작이 장려무비하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참고할 것은 성임의 정혜루기에 의하면 영은사는 고려말 무렵에 지엄선사의 개산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영은사의 개산 연혁을 밝히는 데는 더 많은 고증자료의 연구가 요청된다.

또 다른 문화자원으로 자랑할 것은 내장사 소장 [조선동종], [부도전]등이 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화려한 단풍을 먼저 보고 간다.

 

 

 

한강을 건너는데 구름이 너무 멋지다.

 

 

내장산이 주차장에 가득찬 차량을 내려다 보고 있다.

 

 

무료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작은 하천이 있는데 물이 너무 맑다.

 

 

무료 셔틀버스에서 내려 일주문으로 가는데 벚나무 단풍이 노란색을 띤다.

 

 

일주문으로 가는 길 상가지역을 지난다.

 

 

단풍아래 장사하는 사람, 일주문으로 가는 사람이 북적된다.

 

 

산허리에 걸쳐 있는 저 길이 백양사 가는 길이라고 한다.

 

 

단풍이 진행중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서고 있다.

 

 

단풍열차와 셔틀버스이다.

 

 

단풍색이 다양하다.

 

 

작은 호수에 청기와육각정이 있다.

 

 

단풍사이로 육각정을 본다.

 

 

케이블카인데 그림의 떡이다.

 

 

결과적으로 걷게된 원적골 자연관찰로이다.

 

 

일주문의 모습이다.

 

 

백년약수의 모습이다.

 

 

벽련안 가는 도중에 있는 매점이다.

 

 

나무에 혹이 있다.

 

 

쭉쭉 벋은 느티나무가 많이 있다.

 

 

저기 보이는 서래봉은 이 벽련암 담벽 옆을 지나게 되어 있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이시다.

 

 

대웅전 오른쪽의 5층석탑과 천불전의 모습이다.

 

 

저기 누각 뒤로 좌측이 장군봉, 그 옆이 연자봉이라고 하는 것같다.

 

 

대웅전 외벽에 심우도와 꽃이 그려져 있다.

 

 

좌측 그림은 달마대사에게 팔을 짤라 의지를 보인 혜가선사의 이야기이다.

 

 

천불전 내부 모습이다.

 

 

요사채 담에 호박을 잘라서 말리고 있다.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 보면 저 단풍나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연못위 바위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이시다.

 

 

연자봉 줄기를 타고 내려온 곳에 팔각정이 있다.

 

 

종무소가 멋지게 서래봉 아래 조성되어 있다.

 

 

누각 아래에서 본 서래봉과 대웅전의 모습이다.

 

 

누각 편액에는 벽련선원이라고 쓰여 있다.

 

 

원적암 가는 길에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

 

 

이 열매는 윤노리나무 열매인가?

 

 

이 곳은 단풍이 조금 보인다.

 

 

사랑의 다리 중간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이 곳은 겨우살이가 많이 보인다.

 

 

원적암 대웅전에 계신 관세음보살이시다.

 

 

밖에 조성된 관세음보살 입상이다.

 

 

대웅전의 모습이다.

 

 

악기처럼 생긴 풍경이다.

 

 

비자림 군락지이다.

 

 

300년 된 모과나무이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이라고 쓴 입석이 있다.

 

 

내장사 천왕문으로 가는 모습이다.

 

 

대웅전 앞에 누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 보이는 단풍나무이다.

 

 

대웅전의 모습이다.

 

 

대웅전 내부의 모습이다.

 

 

대웅전 앞의 석등과 진신사리탑이다.

 

 

대웅전 뒤 굴거리나무이다.

 

 

대웅전 외벽에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관음전이다.

 

 

관음전 내부모습이다.

 

 

극락전 내부 모습이다.

 

 

명부전의 모습이다.

 

 

명부전 내부 모습이다.

 

 

삼성각이다.

 

 

삼성각 내부 모습이다.

 

 

범종각의 모습이다.

 

 

누각 바로 앞에 연못이 있다.

 

 

사천왕들이시다.

 

 

 

천왕문의 모습이다.

 

 

저기가 부도전이다.

 

 

화려한 단풍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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