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지붕처럼 솟아오른 섬 대모도(大茅島)
달리는 배에서 바라본 대모도 모습. ■ 제주-완도 뱃길서 마주하는 ‘모도’
섬에 띠(모초·茅草)가 많다고 하여 ‘모도’라 불렀다는 대모도(大茅島)는 제주에서 완도로 갈 때 왼쪽으로 소안도가 보이고 곧이어 크고 작은 두 개의 섬이 보이는 곳이 바로 대모도와 소모도다. 완도에서 직선거리로 13.3㎞ 떨어진 작은 섬으로 날씨 좋을 때 보면 마치 초가지붕처럼 솟아오른 모습이다. 초가지붕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섬 중앙에 모성산(茅盛山·241m)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그사이에 곰 박산 등 4개의 크고 작은 산이 어우러져 있어 섬은 완만한 모습으로 보인다. 전체 면적은 5.83㎢, 해안선 길이 21.7㎞로 부근 무인도인 가남여, 불근도, 안두레이, 납데이, 밧두레이 5개 부속 섬이 있다.
장한철 표류기에 극적으로 구조되어 오던 중 청산도 인근서 다시 표류 되어 멀리 흑산도 바다까지 흘러가다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처음 표류했던 노어도(현재 노화도)를 거쳐 갈 때 “바람을 타고 표류하면서 그 임의대로 가는데 소안도를 지나 대모도와 소모도 사이를 지났다”는 기록이 나온다.
완도 부근 섬을 취재하며 장한철 표해록을 따라보자는 생각에 찾아간 곳이 대모도다. 대모도 가는 배편을 알아보기 위해 완도 항만터미널에 도항선 운항시간을 문의했으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선사가 달라 자세히 모르고 대모도 가는 배는 하루 한편뿐 이라는 것. 대모도를 거쳐 청산도를 가는 배가 분명 있는데, 그 배뿐 인가, 아무리 작은 섬이라지만 주변 소안도가 있는데 그럴 리가 있을까. 없으면 이틀이라도 배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완도에 도착, 매표소에 ‘대모도 가는 배가 몇 시에 있냐’고 했더니 ‘대모도요? 모도 아닌가요. 옆창구인데 11시에 배가 출항하고 10시 30분에 매표 시작한다’는 말에 옆에 있는 분한테 모도가 대모냐 물었더니 그렇단다. 나는 지금껏 대모도라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 모도 배는 하루에 4번 있고 모도에서 청산도 가는 배는 모동항에서 3시40분에 출항한다니 3시간 동안 대모도를 돌아볼 수 있는 확실한 배 시간을 알고 11시 모서리로 향했다.
대모도 모서리에 있는 항일운동 기념비. ■ 청년회 14명의 항일운동 정신 새겨져
완도에서 40분 달려 소모도 모북항에 손님을 내리고 대모도 모서항으로 향했다. 대모도와 소모도 사이에 있는 무인도 대망도가 표해록에 나온 바위섬인 듯하다. 모서항에 도착, 선착장 앞 언덕에 모도 항일운동기념비와 해상국립공원구역이란 표지석이 서 있다. 둥근 표석에 ‘독립의 혼이 북소리를 통해 남해바다를 흔들어 울려 퍼지리라’고 새겨졌다. 모도는 작은 섬이지만 1921년 모도서리에 개량서당(모도원숙)을 세워 주민들에게 학문을 일깨우면서 항일정신을 고취 시켰고, 1923년 9월 마을 청년회 14명이 모도 배달청년회를 조직, 이웃 소안 청년회와 연대하여 국권회복을 열망하는 애국가와 혁명가를 보급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 1925년 1월 동·서리 마을주민들이 모여 ‘일본은 필연적으로 망한다’며 항일 무력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천병섭, 장석칠 징역 1년, 정두실, 천흥태 징역 10월, 최창규, 서재만 징역 6개월을 받고 복역중 천흥태는 모진 고문으로 순국했다. 6명은 애국지사로 애족장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배에서 내린 주민들은 기념비를 다녀오는 사이 어디 갔는지, 마을에 사람들이 없다. 모도분교로 올라갈 때 마침 밭에서 일하는 부부를 만나 모동리로 가는 길을 묻자, ‘어디서 왔소’ 제주도에서 왔다고 했더니 ‘내 친구도 제주도 사진작가’라며 반갑게 맞아준다. ‘모동리 갈려면 고개를 넘어가는 길도 있지만, 해안도로로 가는 것이 좋다’며 빨리 걸으면 1시간에 갈 수 있단다.
대모도 모동리 마을. ■ 산비탈 옹기종기 모여 이룬 모동리 마을
시간이 충분하니 여기저기 둘러보며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아 청산초등학교 모도분교를 찾았다. 아담하고 정겨운 교정이 눈길을 끈다. 한때는 135명이 다녔던 이 학교도 학생들이 없어 폐교 직전이란다. 대모도에는 서쪽에 모서리, 동쪽에 모동리 두 마을이 있다. 시멘트 길을 따라 모동리로 향했다. 가는 도중 섬마다 그 흔한 염소나 소 한 마리도 만날 수 없어 쓸쓸하다. 산비탈에 어느 집안 선묘인지 큼지막한 비석을 세워졌고, 모동리로 가는 동안 몇 개 집안 선묘들만 눈에 띈다.
해안선에 걸린 청산도와 소모도를 보며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 요란스런 오토바이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우편배달부다. 아마도 모동리로 배달 가는지, 갔다 오는지 모르지만, 웬 나그넨가 하고 한참을 쳐다보며 지나간다. 띠가 많은 섬이라 하여 넓은 벌판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온 섬은 숲으로 덮여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새벽에 제주를 출발, 섬에 들어와 걷다 보니 목도 마르고, 모동리가 얼마나 멀었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어 하염없이 걷고 걸어 멀리 마을이 보인다. 모동리에 도착, 한 할머니에게 ‘상점이나 식당 없습니까’했더니 ‘이 작은 마을에 무슨 식당이 있겠소’ 상점도 없단다. 당장 목이라도 축여야겠는데, 마침 골목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나오자‘혹시 이 마을에 식사할만한 곳이 없습니까’고 물었더니‘아직 요기도 못했소, 따라 오시요. 우리 집에 빵과 우유가 있다’며 손을 끈다. 모동리 리장 김규식씨다. 부인이 삼다수와 빵을 내오며 ‘얼른 식사를 준비할 테니 올라오라’는 것을 사양하고 자리를 떴다. 얼마나 고맙던지 아직도 변하지 않은 섬사람들의 인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모동리 마을은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오래된 우물이 아직도 사용하는지 모터 펌프가 설치됐고, 좁은 골목 돌담길이 매우 정겹다. 짧은 4시간 대모도에 머물다 3시40분 삼사랑 7호를 타고 청산도로 향하면서 고마움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