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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 40.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41. 요나보다 큰 이 42. 남방 여왕이 일어나
마 12: 40.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고 대답하셨다.
1]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욘 1: 1 – 2: 10에 나오는 바다 속 경험과 예수 자신의 십자가 죽음 및 부활 사건을 비교하신 부분이다.
본문의 '큰 물고기'(*, 투 케투스)란 바다의 괴물 또는 거대한 불고기란 뜻으로, 이 물고기 배 속에서 구출된 요나의 경험은 예수의 땅속 3일간의 묻힘과 부활을 예시하는 예언적 모형이 된다.
예수의 목요일 수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W.G. Scroggie)은 '밤낮 사흘'을 문자적인 의미로 취급하여 목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만 72시간으로 보고 있다.
수난 주간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보고(26: 17-30)에 의하면 예수는 무덤 속에 36시간 남짓 있었던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그러므로 '밤낮 사흘'이란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에 따른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랍비들은 한 날(a day)과 한 밤(a night)을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한 묶음의 일부분이라 하더라도 단위상 전체 묶음으로 이해하였다.
* 삼상 30: 12-13 – 12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1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 에 4: 16 -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 에 5: 1 –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그들의 전통적 해석법에 따르면 '밤낮 사흘'은 단지 '세 날들'(three days)을 의미할 수도 있고 밤이나 낮이 셋으로 결합된 것, 곧 2박 3일을 의미할 수도 있다.
땅 속에(*, 엔 테 카르 디아 테스 게스)는 문자적으로 '땅의 심장에'로서, 욘 2: 2의 '스올의 뱃속'이 문자적으로 '음부의 심장으로부터'란 뜻이므로 아마 이 표현 양식을 따라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땅의 심장에'라는 표현은 예수가 지옥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의미(Meyer)가 아니라 단지 예수의 시체가 땅 속 무덤에 안치(安置)될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항상 음란하다. 오늘날 음란 풍조는 술집, 나이트클럽, 영화와 비디오, TV, 음란 잡지, 호텔과 여관 등을 통하여 만연하고 있다. 몸을 파는 매춘(賣春)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풍조에 따른 한 경향은 음란한 복장이다. 팔이나 목 부분이 너무 파인 옷, 미니스커트, 딱 달라붙는 청바지, 속살이 비치는 옷, 너무 갈라진 긴 치마, 여자용 짧은 반바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성도들은 세상의 이런 음란의 풍조들에 대항해야 한다. 우리는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 복장에 대해서도 단정하도록 힘써야 한다.
* 딤전 2: 9 -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요나의 표적은 부활을 예언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흘 동안 무덤 속에 계셨다. 그러나 그는 제3일에 부활하셨고, 그의 무덤은 비었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항상 악하고 음란하다. ‘악하다’는 말은 남을 미워하고 속이고 해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뜻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또 ‘음란하다’는 말은 부부관계의 윤리를 지키지 않고 남편이 다른 여자와 또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은 부부관계의 윤리가 약해진 시대인 것 같다. 또 음란을 조장하는 문화나 풍조가 많은 것 같다. 매춘(賣春) 행위도 성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의 풍조를 대항해야 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소원하며 지켜야 한다.
예수께 나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심령에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믿고자 한 것 같지는 않고 단지 기적을 보려는 흥미를 가진 것 같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적을 보이거나 기적을 추구하는 기적주의적 종교가 아니다.
주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1: 22-23).
기독교는 기적주의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전함으로 그를 믿어 구원을 받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한 새 삶을 살게 하는 교훈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이라는 말씀은 자신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과 3일 만의 부활을 가리켰다.
예수님은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무덤에 묻히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한다.
‘밤낮 사흘’이라는 말은 3일을 가리키는 대략적 표현일 것이다. 예수께서 무덤에 계셨던 시간은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새벽까지, 즉 정확히 말하면, 하루 반쯤이었지만, 성경은 그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말한다.
* 마 16: 21 -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 고전 15: 4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마 12: 41. 요나보다 큰 이 -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선지자 요나보다, 솔로몬 왕보다 더 큰 분이시나 많은 사람은 그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였으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치 않았다.
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요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면, 요나의 전도로 회개의 자리에 섰던 니느웨 사람들은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형이었다.
요나와 예수 모두는 죽음에서 구원받음으로써 자신들이 전파한 복음의 확실성을 입증하였으나 그들의 전도를 받은 대상자의 반응은 서로 정반대였다.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다.
* 욘 3: 1-10 –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나보다 더 큰 이'이신(요나는 심판과 복음을 선포하는 자, 예수는 심판자요, 그 선포의 대상자, 그리고 예수는 친히 세상 죄를 지심으로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을 마련하셨다. <5: 21ff. 12: 6ff>) 예수의 전도와 이적을 보고서도 절대로 회개하지 않았다.
따라서 심판 날에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보다 더 악하다고 입증된 이 세대 사람들의 잘못된 점을 일어나서 증언하게 하실 것이다.
'심판 때에 일어난다'라는 것은, 곧 심판 법정의 증인으로서 최후 심판 때에 이 세대의 잘못을 송사(頌辭)한다는 의미로서 셈어의 법률에 관한 관용적 표현이다(Black, Wellhausen).
* 욥 16: 8 -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마 12: 42. 남방 여왕이 일어나 -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
또 남방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 왕의 지혜의 소문을 듣고 그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심히 먼 곳에서 많은 수행원을 이끌고 방문하였으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단지 물질적 차원의 기적에 관심을 두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니느웨 사람들보다 못하고 남방 여왕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들은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남방(아라비아 반도)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왕상 10: 1에 의하면 본문의 '남방'을 구체적으로 '스바'라고 밝히고 있다.
이곳 '스바'는 유대인들이 '땅 끝으로'(at the ends of the earth) 알고 있던 아라비아 서남부의 한 왕국이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에티오피아의 여왕이었다고 전한다(Josephus, Antiq. VIII, 165).
* 왕상 10: 1-13 – 1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3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4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5 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어 6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7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8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9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10 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11 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12 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또 노래하는 자를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으니 이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오늘까지도 보지 못하였더라. 13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 렘 6: 20 -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남방 여왕은 열정적인 탐구열을 가지고 '땅 끝에서', 멀고 먼 이스라엘 밖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왔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계시는 지혜의 근본이신 그리스도를 보면서도 교만과 율법적 허영에 가득찬 나머지 귀 기울이지 않고 거부함으로써 마지막 날에 남방 여왕으로부터 송사당할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솔로몬보다 탁월한 존재임을 선포하셨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진리이다.
예수는 신. 구약을 통틀어 모든 지혜자, 예언자보다 또한 모든 지혜 문학보다 더 큰 감회와 영향을 온 세상에 미쳤다.
솔로몬이 진리를 간파(看破)할 줄 아는 한 여왕을 이끄는 것이 큰 화재가 되었던 반면 예수는 빈부귀천을 망라한 모든 사람을 당신에게로 이끄셨다.
* 요 12: 32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예수께서는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시며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시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 세상은 니느웨 사람들보다 못하고 남방 여왕보다 못하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2] 가장 큰 이적
(1) 표적과 지혜를 구하는 세대
① 악하고 음란한 세대
여기서 '세대'라 하는 말의 뜻은 '시대'와 '사람'이 복합된 '이 시대와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세대를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셨다.
악한 것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사악하다 함이며, 음란하다는 것은 이방인과의 잡혼과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 시 73: 27 -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 사 57: 3-5 – 3 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 도다.
* 겔 23: 27 -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행음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 계 2: 20 -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
이런 모든 것들은 믿음을 떠난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의도는 믿음을 떠난 불신의 명령에 사로잡혀 있는 시대와 인간들을 책망하신 것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
* 고전 1: 22-24 –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어느 시대와 사람들은 이적과 지혜를 찾아 헤맨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절망했기 때문이다. 믿음을 잃으면 절망한다. 왜 믿음을 잃습니까?
② 불신의 시대
사람들이 믿음을 잃는 이유는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천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기본이요 원칙이므로 가치의 기준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잃으면 이전의 모든 것들이 흔들린다. 거기서 믿음을 잃게 된다. 사람들이 믿음을 잃는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데서부터 온다.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믿지 아니한다.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핵심이라는 것을 믿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으면 죄 사함를 얻을 수가 없다.
죄인이란 믿음을 갖지 않은 자를 말한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사람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이웃도 믿을 수 없고 자식도 믿을 수 없고 아내나 남편조차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 마 7: 5 -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믿음이 없는 사회이므로 불신의 시대가 되었다. 표적과 지혜를 구하는 것은 이와 같은 불신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책망하셨다.
(2) 참 이적 - 가장 큰 이적
① 일반이적(표적)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39절)
예수께서 어째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다. 수많은 병자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셨는데 어째서 이런 표적들을 예수께서는 도외시하신 것일까?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반적인 표적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불쌍한 생명들을 긍휼히 여기신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적들이 메시야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며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이러한 일반적인 표적을 행하기 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반드시 메시야가 아니더라도 행할 수 있는 표적들이다. 오직 메시야만 나타낼 수 있는 표적이 있다. 그 표적이 바로 '요나의 표적'이다.
② 참된 이적(표적)
그러면 '요나의 표적'이란 어떤 표적인가? 그것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표적이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사흘만의 부활을 예표한 것이기 때문에 '요나의 표적'으로 표현하신 것뿐이다.
죽음에서 살아나는 자, 죽음을 이기고 생명으로 살아나는 자가 아니면 메시야가 아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죽음의 정복'에 있다. '죽음으로부터의 승리'가 메시야의 사명이다.
부활은 요나의 표적보다 더 완벽한 표적이다. 참 표적이며, 가장 큰 표적이다. 부활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주는 표적이기 때문에 가장 큰 표적이다.
이 진리는 만세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놓았던 '하나님의 지혜'이다.
* 고전 2: 7-8 –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지혜는 솔로몬의 지혜와 비교할 수 없다. 솔로몬의 지혜는 한계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는 한계를 극복한 영원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솔로몬의 지혜를 초월한다. 솔로몬의 지혜는 한계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는 한계를 극복한 영원한 지혜이다. 그러므로 요나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3) 이 세대의 심판
① 회개하지 않으므로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얼마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41절) 왜 그러한가? 완전한 표적의 주인공인 메시야의 말씀을 듣고도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아니하는 강퍅한 심령은 정죄를 받게 된다.
②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므로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41절) 이것은 신앙도 다르고 문화적 전통도 다른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땅 끝에서' 찾아왔으나 영원한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가운데 계심에도 그들은 지혜를 찾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지혜가 가려져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표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