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배추
- 김윤현
평생을 밭에서 떠나지 못하는 생이 있었습니다
산처럼 높을 일도 없었고 도랑처럼 낮지도 않았던 아버지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 같은 밭고랑에서
기온이 기운처럼 차차 떨어지면서 푸석해진 몸
더 견딜 수 없게 되지 배추 겉잎은
제 몸이 헌 책장처럼 낡아져도
속잎을 포근하게 감싸 주고 싶었고
그 결심 평생 흔들리지 않으려
지푸라기로 제 몸을 꽁꽁 묶었습니다
품 안에서 속잎이 노랗게 자라는 것을 본 겉잎은
서리가 내려도 추호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 김윤현 시집 『지동설』(도서출판 그루,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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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선고 기일을 맞아 몇 종류의 전을 붙이기 위해 배추 몇 포기를 뽑아왔습니다
겉잎이 손바닥보다 더 커지면 오므려 싸 주어야 한다고 들었기에 수고도 했지요
그 뒤에 몇 차례 속이 얼마나 알차졌는지 알아보려고 손가락으로 쿡쿡 눌러봤지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날 아침에도 화분에 심어둔 배추 겉을 꾸욱 눌러봤습니다
추호의 흔들림없이도 속이 제법 단단해져 가는 듯합니다
포근하다고 느낀다면 속잎도 노랗게 자라겠지요
오늘 점심은 칼국수 집에서 노란 조밥을 노란 배추속잎에 쌈 싸먹으면 좋겠다 싶네요
올 김장은 지난해와 같이 처제들 모조리 불러내려서 같이 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