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에 <꼰대짓 열 가지>라는 글이 떴다.
나는 <꼰대>의 뜻이 무엇일까를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검색했다.
꼰대 :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先生)’을 이르는 말.
학생들의 은어로, ‘아버지’를 이르는 말.
(기본의미) 학생들의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꼰대'라는 말은 아마도 교사(선생님)을 지칭했는데 지금은 늙은이로 변질 확대되었나 보다.
꼰대질 또는 꼰댓질 :
명사인 꼰대에 '행위'를 뜻하는 접사인 '-질'을 붙여,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 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다.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성향과 이념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 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들에게 선배가 되어줄 자신이 없으면 꼰대질은 하지 않아야 한다.
현재 20대가 겪는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만든 선배 세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다.'
어제는 올해에서야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손녀가 왔다. 손자는 더 어리고.
손녀한테 물었다.
'몇 살 먹었어?'
'여덟 살'
'그럼 작년에는 일곱 살이었네?'
손녀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물었다.
'작년에 일곱 살이었고, 올해 한 살 먹었으면 지금은 여섯 살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여덟 살이여? 한 살 먹으면 한 살을 빼야 하는 거 아녀?
... ...
손녀가 잠깐 어리둥절하는 눈치이더니 '에잇. 할아버지'하고는 소리를 조금 크게 내고는 까르르 웃었다.
세상에나 이런 셈이 있어?
엉뚱한 발상의 전환일까?
나는 지금껏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한다. 교사, 교수 등을 모두 일컬는다.
대한민국 5,200만 명 가운데 교직자는 몇 명쯤일까?
엄청나게 많을 게다. 이들은 어쩌면 <꼰대>일 게다.
나이가 든 사람만을 꼭 지칭하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1949년 1월에 태어났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태어난 그 당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1950년대 초를 조금은 생각이 난다. 밑이 터진 옷을 입었다. 바지가랑이를 툭 터지게 만들었기에 무릎을 굽힌 채 쪼그려 앉아서 오줌, 똥을 눠도 옷이 젖지 않도록 만든 옷을 입고는 아장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훤하다. 이런 옛모습을 기억하는 나인데도 지금은 만나이 72살이 곧 된다. 노인이다.
나는 '노인'일까, '늙은이'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늙은것'일까?
아무래도 '늙은것'일 게다.
간밤에는 '탈무드'라는 글을 보았다.
중동지역의 나이 많은 랍비들이 지혜를 전수해 주는 말을 모아서 만든 책. BC500 ~ AD500년의 기간 즉 1,000년 동안의 이야기를 모아서 만든 책이 20권, 12,000여 쪽의 방대한 양이란다.
'늙은이' 랍비가 말하는 삶의 지혜라 ...
지금은 21세기.
2021년 1월인 지금 나한테는 '노인의 지혜'가 과연 있기는 하냐? 하는 의구심(의문)이 먼저 생긴다.
노인의 지혜가 어떤 것이며, 그게 무슨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조직이 있을까 싶다.
하나의 예다.
나는 오래 전 직장에서 컴퓨터 개발사업의 책임자를 세 차례나 역임했다. 전산에 관해서는 도통해야 할 것 같은데도 실상은 아니다. 그냥 껍대기.
어제는 큰아들이 손녀, 손녀를 데리고 왔기에 나는 '컴퓨터를 손 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이 컴을 작동하고는 '걱정마세요. 별 거 아녀요'라고 말하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21세기 초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한테 '늙다리 늙은것'인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씨알머리조차도 없다. 어쩌면 눈치밥이나 먹고, 거리적거리는 방해꾼일 게다.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나가면 늙은이들이 정말로 많다. 이들이 하는 짓이란 고작 바둑, 장기나 두고, 운동기구에 매달려서 버름적거린다. 마치 벌레가 꿈틀거리는 꼬라지이다.
<노인의 지혜>가 과연 남아 있기는 하냐?
위 '꼰대'라는 용어로서는 노인을 천대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등신 머저리 바보 멍청이 등으로 대변하는 '꼰대'라는 낱말에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이 많은 나는 '꼰대'로 대접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
현대사회에 대해서 아는 게 무엇일까? 없다. 전혀...
'노인의 지혜'라는 게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21세기 현대에서는 하등의 가치가 없다. 오히려 거리적거리는 방햬꾼이나 되었을 터.
운동삼아서 걸으려고 아파트 현관을 벗어났다.
눈이 하얗게 내린 단지 안, 또 길바닥이 살짝 얼었다. 늙은것이 자칫하다가는 넘어져서 대갈통이나 포개먹을 것 같아서 두 팔뚝을 내밀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알손이기에 손바닥을 비비면서 천천히 단지 안을 돌아다녔다.
단지 안을 어기적거리면서 걷자니 이따금 쓰레기집하장이 눈이 띄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생활쓰레기를 치우는 차가 온다.
재활용품, 일반쓰레기, 큰 가구(특히나 침대 등)도 나온다.
나는 허접쓰레기를 슬쩍 보고는 '저거 재활용하면 좋겠는데' 하면서 욕심을 냈다. 하지만 무겁게 운반해서 내 집으로 끌고 올 재간은 전혀 없을 터.
속으로만 욕심을 내면서 쓰레기집하장의 많은 물건에서 어떤 영감을 떠올렸다.
이렇게 추운 날에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옛사람이 환생해서 지금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면 이들은 어떻게 할까?
2,500여 년 전, 2,000여 년 전의 옷이라는 게 무엇일까? 어떤 신발을 신었을까? 이렇게 추울 때 옛사람은 어떻게 추위를 피할까?
하나의 예다. 석가모니, 공자, 예수, 마호메트 등 성인이 환상했다면 이 추운 겨울철에 어떻게 행동할까?
현대문명의 이기를 전혀 모르는 이들은 당장의 추위부터 해결해야 할 게다. 몸에 걸친 것들이(옷도 아니다) 과연 추위를 막을 수 있을까? 도대체 발에 무엇을 둘렀으며, 손에 무엇을 걸쳤을까?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아파트 쓰레기하치장 구석에 숨어 있다가 주민이 내다버리는 헌옷을 몰래 주워서, 겁을 내면서 몸에 걸치고, 발에는 비닐 등을 뒤집어 씌우고는 끈으로 묶고, 종이박스 등으로 바람막이를 만든 뒤에 그 안에서 몸을 움추리고는 벌벌 떨 게다.
거지 수준도 안 되는 짐승들처럼 덜덜덜 떨 게다.
도대체 이들이 아는 게 무엇일까?
이들이 현대를 사는 아파트 주민에게 뭐라고 중얼거릴까? 이들의 지혜? 그게 무엇일까?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에게 이들이 무엇에 대해서 말할까? 도대체 아는 게 무엇일까?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지난 세기인 1949년 1월에 태어난 나는 현대인이다. .
70여 년이 지난 지금, 2021년 1월인 현재. 내가 수십 년 동안 살면서 겪었던 어떤 지식(앎)들이 신세대인 젊은세대한테 무슨 도움이 됄까?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거의 없을 게다. 하등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일 게다.
하물며 2,500년 전, 2,000년 전, 1,300년 전에 존재했던 동서양의 성인/철학자의 지혜가 21세기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내가 쓰레기하치장 뒷편에 숨어서 벌벌거리는 옛사람들의 환생을 잠시 떠올면서 과거의 선각자들의 행적을 연상한다.
정말로 그런 거지도 따로 없을 게다. 동물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짐승과 같은 차림새로 버벅거리는 꼬라지일 게다.
아파트 단지 안을 한 바퀴 돌고는 얼른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나이 처먹은 늙은것은 그저 몸조심을 해야 할 터. 공연히 나섰다가는 귀찮은 일거리나 저지를 것이기에. 자식들 고생을 덜 시키려면 그저 몸뚱아리가 다치지 않게끔 매사에 조심을 더 해야 할 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단어 '꼰대'.
나중에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