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제군(文昌帝君)
문창제군도(文昌帝君圖)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김덕성(金德成, 1729∼1797)이 그린 도교(道敎)의 신(神)들 중 문창제군(文昌帝君) 그림이다. 학문(學問)의 신(神), 문창제군(文昌帝君, wenchangdijun)은『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 따르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국자 머리 바깥쪽에 위치한 첫 번째 별부터 네 번째 별 사이에 있는 여섯 별을 신격화한 것이라고 한다. 문학과 교육, 학문의 신이며 특히 과거(科擧)를 치르는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문창성(文昌星)은 일반적으로 괴성(魁星)이라 불리며 붓과 벼루를 들고 왼쪽 다리를 번쩍 치켜들어 북두칠성을 차고 당대(唐代)의 장아(張亞) 대신 이였다고 한다. 그는 고향인 절강성(浙江省)을 떠나 사천성(四川省) 재동(梓潼)으로 가서 후학들을 양성하였는데, 인품이 훌륭하고 문장력도 탁월했다고 한다. 게다가 아주 자상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서 사람들의 큰 신망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가 죽자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청허관(淸虛館) 경내에 작은 사당을 지어서 모셨다고 한다. 또한 다른 여러 설(說)이 있다. 명(明, 1368~1644)과 청(淸, 1616~912) 시대에는 더욱 인기가 있는 신이 되었는데, 그의 탄신일인 음력 2월 3일에는 북경(北京) 이화원(頤和園)의 사당에서 황제가 보낸 대신도 직접 참석하여 성대한 제사를 치렀다고 한다. 문창제군에 대한 신앙(信仰)이 열렬했던 이유는 바로 과거제도(科擧制度)에 있었다.
문창성은 북두칠성의 국자 머리 바깥쪽에 위치한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문창부(文昌府)라는 천제(天帝)의 관청이 있고, 문창제군은 천제로부터 문창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한다. 그 전신(前身)은 황제(皇帝)의 아들로서 몇 번이나 태어나 인간계에 내려왔는데, 최후로 태어난 때에는 장악자(張惡子)란 이름을 한 사람이었다 한다. 또는 장악자는 진(晋)왕조에 봉직하다가 전사(戰死)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문의 신
문의 신은 문창제군은 중국 전설의 황제의 아들 휘(揮)였다고 한다. 그는 세상의 지식과 이치에 밝았다고 하는데, 이후 세상에 97번이나 다시 태어나 학문에 뜻 가진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당시 과거(시험)는 일반 백성들에겐 먼 세상의 것이어서, 이에 이 학문의 신은 대중에 인기 없었다. 하지만, 명나라때가 되면서 과거가 보편화 되자 이 학문의 신 문창대군은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별자리
문창제군은 북두칠성의 국자 머리 바깥쪽에 위치한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문창부(文昌府)라는 천제(天帝)의 관청이 있고, 문창제군은 천제로부터 문창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한다. 시초에는 인간의 행·불행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신앙되었지만, 그 이름에 '문(文)'자가 있고 또한 과거를 보는 사람들에게 기서(奇瑞)를 나타냈다고 하는 전승(傳承)도 있어서 뒤에는 문(文)의 신으로 과거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신(守神)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