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균형잡힌 인격체로 키워내는 덴 최소 20년에서 길면 30년 정도 걸린다.
내가 그 과정을 겪어보니 그랬다.
'자식농사'는 정말로 길고 긴 시간과의 싸움이자 간절한 기도와 솔선 그 자체였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값지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농사였다.
숲을 가꾸는 일도 대동소이했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연장을 들고 선산으로 가서 잡목과 가시나무를 제거했다.
벌써 20여 년 이상을 변함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내가 은퇴하여 고향에 정착한 상황이라면 산지 관리가 훨씬 더 쉽고 용이했을 것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
그러나 비즈니스를 한답시고 서울에서 바삐 지내고 있으니 늘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한번 정리를 했어도 몇 달 뒤에 가보면 '도로 아미타불'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정직했다.
관리를 하면 조금이라도 티가 났다.
분명 안 한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하지만 삼사 개월 후에 가서 상태를 보면 온갖 가시나무들이 우후죽순처럼 더 광범위하게 번져 있기 일쑤였다.
힘이 빠졌다.
그럴지라도 혼자서 꾸준하게 선산을 찾아갔고, 차근차근 관리했다.
나에게 '중도포기'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내가 맨 처음으로 톱과 낫을 들었던 20여 년 전만해도 '밤나무', '참나무', '아카시아', '망개나무', '칡' 그리고 온갖 '잡목'으로 인해 양수인 '소나무'가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양수'는 햇볕을 받지 못하면 바로 죽는 나무를 뜻한다.
대부분의 침엽수들, 그 중에서도 '소나무'는 극 양수였다.
선산의 그런 참담한 상태를 안 봤으면 몰라도 한번 본 이상 그냥 좌시할 순 없었다.
성격이었다.
고사 직전으로 내몰린 소나무들, 내 마음이 무지 아팠다.
누가 시킨건 아니었지만 나는 선산을 둘러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고사 위기에 처한 저 빈약한 소나무들이 거목으로 성장해 울창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시간이 나는대로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가꿔보리라"
진심이었다.
내 자신과의 엄숙한 약속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향에 오면 짬이 나는대로 연장을 들고 산으로 달려갔다.
묵묵하게 나 홀로 그곳으로 갔고 매번 혼자서 조금씩 조금씩 정리했다.
그런 연유로 수도권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고향에 가면 더 바빴다.
'소나무'는 본디 강하고 기품 있는 수목이었다.
그러나 '활엽수'와 혼재되어 있으면 성장속도의 차이 때문에 '침엽수'는 필경 죽기 마련이었다.
예외는 존재할 수 없었다.
반드시 그랬다.
소나무들이 '극상'을 이룬 다음엔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그런 품위 있는 송림으로 발전하기 까지엔 수많은 세월과 땀이 필요했다.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없었다.
'기계톱'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일 년에 몇 번 쓴다고 그런 장비를 구입할까 싶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쓰임새'와 '활용도'의 문제였다.
서울에선 유지, 관리하기도 어렵고.
나중에 고향에 정착하면 그땐 필히 소형, 중형, 대형 '기계톱'을 사이즈별로 장만하겠지만, 그때까지는 건강한 두 팔로 끝임없이 톱질을 해야만 했다.
이번 설날 연휴 직전에 '벌목도'와 '정글톱'을 새로 구입했다.
그동안 단조 '을목낫'과 '조선낫'을 다양하게 사용해 보았다.
큰 나뭇가지를 쎄게 내려치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다 보면 날이 부러지거나 이빨이 빠지기 일쑤였다.
단조 제품이라 강성이 매우 뛰어났지만 반대로 충격에 약해 무시로 날이 나갔다.
산일 자체가 워낙 험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산 속 비탈진 곳에서 톱질을 하다보면 나무와 톱날의 각도가 맞지 않아 그동안 톱도 여러개 부러트렸다.
허망했다.
작업하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새로 산 연장을 시험 삼아 써보았다.
일단 강도면에서 합격이었다.
한두 가지 불편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흡족했다.
지금 온 몸이 쑤시고 뻐근하다.
또한 신체 여러 곳이 가시에 긁혀 아리고 아프다.
하지만 마음만은 너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하나의 숲을 '극상'의 상태로 만드는 덴 최소 30년 이상이 걸린다.
나 같이 1년에 몇 번씩 간헐적으로 산을 찾는 경우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숲은, 지금 열심히 관리하고 정비를 한다해도 내 자식이나 손주 세대에 가서야 비로소 다양한 활용가치가 나타나는 분야다.
본디 자연의 이치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육림'은 '자식농사'와 비슷하다.
급하게 솔루션을 구할 수도, 속성으로 아웃풋을 낼 수도 없는 장구한 시간과의 부대낌이기에 긴 안목과 변치 않는 관심으로 계속해서 땀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하는 정직한 작업이다.
내일 상경하면 또 언제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까.
또한 언제쯤 각종 연장을 챙기고 손질하며 마음속으로 선산의 내일을 그려볼 수 있을까.
기약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20여 년 간 조금씩 조금씩 산지를 정비해 왔듯이 앞으로도 중단 없이 열정과 애정을 쏟겠다는,
산과의 다짐이자 내 자신과의 약속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20년, 30년 후 반듯하고 기품어린 울창한 송림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휴식과 잔잔한 힐링을 체험했으면 좋겠다.
그 바람 하나 뿐이다.
그런 소망 하나로 지금껏 열심히 달려왔다.
갑진년 설날 연휴 이틀 째다.
힘들긴 했지만 뜻 깊고 감사한 하루였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한 밤이 되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