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 15일 광복 81년을 맞은 날이다.
春坡 張元碩 墨筆사랑방 提供
일본(日本)이 81년 전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맞은 날이다.
그날을 한번 상기해 보기로 하겠다.
1. 미국의 원자 탄 투하(投下) 결심
1945년 7월 16일 원자 탄 실험에 성공한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조기에 종결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일본 본토에 원자 탄을 투하하기로 결심하였다.
원자 탄을 투하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연합국이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회담 결과 일본 정부에 8월 1 일까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일본 정부는 1억 총 옥쇄(總玉碎 :모든 국민이 명예롭게 죽겠다"는 뜻)
운운하며 7월 28일 항복 거부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이대로 두면 미군의 큰 희생 없이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초조감이 작용했고, 또 하나는 20억 달러라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들여 만든 원자 탄을 써보지도 않고 사장(死藏)
시켰을 때 불어 닥칠 국민의 거센 역풍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원자 탄 개발에 참여한 '아인슈타인' 박사와 원자 탄 개발 연구소장 '오펜하이머'가 "이 원자 탄은 수천 명의
인명을 살상(殺傷)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이니, 절대 사람이 사는 곳에 투하하지 말고 무인도 같은 섬에 먼저 투하하여
그 위력을 보고 사용하자."라고 건의하였으나, 태평양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일본 본토를 지상 군으로 공격하려면
우리 미군 병력 100만 명의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트루만' 대통령은 과학자들의 건의를 채택할 시간
적인 여유가 없었으므로 직접 일본 본토에 원자 탄을 투하하라고 승인하였다.
군은 대통령의 승인이 떨어지자 [히로시마], [고쿠라], [나가사키], [고오베] 등 4개 지역을 표적으로 선정하고
509 폭격 비행 단을 지정하였으며 지휘관에는 '폴 티비츠' 대령을 임명하였다.
2. 원자탄 투하
B-29 폭격기는 1945년 8월 6일 08시 15분에 제1 표적으로 선정된 [히로시마] 상공 9,800m 지점에서
"리틀 보이"로 명명한 13KT 원자탄 1 발을 투하했는데 580m 상공에서 폭발하였다.
이때 당일 즉각 사망한 사람은 7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도시는 초토화되었다.
1945년 말까지 사망자는 16만 6천 명이었다. 당시 [히로시마] 인구가 34만 명이었던 점에 비교하면 인구의 절반이
사망한 셈이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맞고도 항복을 하지 않으니, 미군은 8월 9일 아침에 다시 제2 표적으로 선정된 [고쿠라]에
투하할 원자탄 "팻맨"을 B-29 폭격기에 싣고 비행장을 이륙하였다.
폭격기가 [고쿠라] 상공에 도착해 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서 표적이 관측되지 않아 오키나와 쪽으로 돌아가던 중에
[나가사키]가 환하게 관측되었다. 그래서 조종사는 21KT의 원자탄 "팻맨"을 11:00시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다.
[나가사키]에서는 8만 명이 사망하고 역시 도시가 초토화되었다.
[나가사키]는 원자탄 투하 우선순위가 3번이었는데 2번인 [고쿠라] 대신 맞아버린 겁니다. 억세게 재수가 없었지요.
일본 정부가 손을 들게 된 것은 2 발의 원자탄을 투하한 직후 "만일 일본이 계속 항복하지 않는다면 제3, 제4의
원자탄을 계속 쏘아 댈 것이다."라는 '트루만'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뒤에야 겁을 먹은 일본 정부가 항복을 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정부에 전달하게 되었으며, 이어서 8월 15 일에 일본 천황(天皇)이 항복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원자탄 투하로 수많은 사람이 살상되는 상황을 목격한 '아인슈타인'은 "우리는 철 모르는 어린애에게 다이너마이트를
장난감으로 주었다."라고 탄식하였으며, '오펜하이머'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고, '페르미'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I am sory"만 연발하였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자기들이 계발해 놓고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피해가 컸기 때문이었다.
*지금 핵무기가 없는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공갈을 치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도 북한에 상응하는 핵무기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이는 과거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나 우리 '박정희' 대통령의 예(例)에 잘 나타나 있다.
<옮긴 글>
첫댓글 광복 81주년의 의미
자주와 주권의 소중함
광복은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국가의 독립과 국민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 줍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이름 없이 헌신한 국민들의 희생이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분단과 통일을 생각하는 계기
광복은 기쁨의 순간이었지만 곧 남북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광복의 완전한 의미를 생각하며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8월 15일 광복일! 일제 강점기 45년을 버티고 견디다 공짜로 얻은 광복(?)이기에 그 날 함성도 잊고 감격도
사라졌나요? 광복절 그보다 큰 기념일이 있을까요? 그런데 그 날 저는 놀라고 슬펐습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이웃 단지, 심지어 군인 아파트 단지에 태극기 게양한 집이 단 한 세대도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건지 묻고 싶습니다. 애국심이 사라진 나라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