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침입 (契丹-侵入)
고려시대에 3차에 걸쳐서 감행된 거란의 침입. 고려의 북진(北進) 정책과 거란의 동침(東侵) 정책의 충돌에 기인했다.
제1차 침입
~이 담판에서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것과 거란의 동경(東京;遼陽)도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의 땅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고려와 요나라가 국교 관계를 맺으려면 양국간에 있는 여진(女眞)의 지역을 회복하고 도로(道路)를 확보해야만 한다고 하여 이를 납득시켰다.~
<야후백과 발췌>

이 지리적 위치가 되어야 하지 않는지 추측합니다. Asktrakhan의 통제를 받던 Khiva한국의 위치 비정으로 '청'의 해당위치는 점점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들어진 나라이듯 조선을 한반도에 이식시키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받고 일본은 한반도를 조선이라 동이하고 열도만을 일본으로 한듯합니다.. 일본은 한반도와 열도 전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사료됩니다
그러니깐여...양이들의 도움으로 조선을 밟았으면...자신들의 땅을 늘리는게 당연하지...왜 한반도가 자신들 땅였다면...버리고 일본열도로 가서...거기 니네 땅여여~~~하냔 말씀입니다...?...지들 국명이 분명 일본였으면서여...그러면서 왜 중원을 침략한답니까..?..거긴 차이나여여~~~허고 왜곡해 줘야지 않나여...?...마치 벽보고 얘기하는 기분입니다..이젠...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습니까?.... 열도로 쫗겨 간거죠... 자기네 의지대로 가나요? 그리고왜노들은 China, Korea, Japan에 모두 공존합니다...
계속 의미없는 댓글수를 늘려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별히 할말씀이 있으시면, 정식으로 글을 쓰세요....
1651년(효종 2) 김자점의 반역으로 일어난 옥사. 병자호란 후 효종이 즉위하면서 곁으로는 청나라에 대해서 신하의 예를 지켰으나, 은밀히 김상헌(金尙憲) 등을 중심으로 청나라를 칠 계획을 하고 있었다. 본래 친청파(親淸派)였던 김자점은 영의정에서 파면된 후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이 사실을 역관(譯官) 이형장(李馨長)을 시켜 청에 고하고 또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은, 송시열이 지은 장릉(長陵)의 지문(誌文)을 청나라에 보냈다. 이에 청나라는 대군(大軍)을 국경선에 배치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그 진부(眞否)를 힐문(詰問)하였으나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의 노력으로 일단 수습되었다..
원문을 같이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 야후백과-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k=11766500&p=%B1%E8%C0%DA%C1%A1&subtype=enc&type=enc&field=id>
조선에는 분명히 '친명파'와 '친청파'가 공존하였습니다...
김자점의 얘기는 드라마에도 나오는 유명한 얘기입니다..
저는 한문 원문을 찾아서 올려달라는 뜻입니다.
청나라 라는 이런 명칭은 없습니다. 조선은 유학을 중시한 나라입니다. 그 법도가 매후 엄격하였습니다. 예기에는 천자만이 오직 조회를 한다고 나오며, 천자만이 조정을 통제하고 나아가 조선천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나라라고 해석하지 말고 청조로 해석해야 합니다.
고로 타타르가 청조가 될 수 없습니다.
禮·曲禮】天子當宁而立,諸公東面,諸侯西面,曰朝
이 당시 압록강은 '볼가강'이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강의 동쪽에 6개주가 있었던 것이고.... 압록강이 고려시대에도 옮겨 온것입니다... 고구려시대는 드네프르강, 고려시대는 볼가강, 조선시대는 아무다르여(시드다르여?) 이 강이 되는 것입니다.... 지명자체가 계속 이동하므로, 조선의 역사가는 사서를 참고하여 지리지를 쓰는데도 헷갈리는 것이죠...
위치비정이 마침 제가 생각한 구도와 거의 같습니다. 화레즘이 건주여진이고, 아랄해 서쪽이 해서여진이고 아랄해 동북쪽이 야인여진으로 보입니다. 볼가강의 볼가 타타르족의 사진을 보면 청나라 사람으로 보입니다. 여진인들은 볼가강의 불가르족 즉 부여족과 같은 반경에서 살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접두사와 접미사를 떼어내면 [크라인]이어서 바로 거란과 같은 음이 됩니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가 거란의 본거지가 되는 근거는 많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추정했던 것인데, 근거가 없어서 더 이상 주장을 못했습니다.
저의 추정과 일치하십니다...제가 청의 위치위치에 집착한 이유가 고려와 여진의 위치로 거란의 위치를 비정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Khiva한국의 존재는 그 주장의 신빙성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계기였습니다..
불가강은 더 위쪽이 아닌가여
여진족들은 볼가강에서 볼가그라드 북쪽에 있었고, 강성해졌을 때 남하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