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자유롭고 다양해야 한다.
1969년 김종필은 불현듯 ‘국민총화’라는 말을 꺼냈다.
집권당인 공화당의 내분을 끝내고, 국민총화로 박정희의 영도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이로써 김종필은 온 국민의 화합을 뜻하는 이 말을 정치적으로 오염시켰다.
독재자는 이 말을 시간이 갈수록 애용했다.
이상하다 싶어 그 뿌리를 캐 보았다. 국민총화라는 정치적 수사가 실은 일제의 유산이었다.
1933년 일제의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국민력(國民力)의 총화’야말로 전승의 밑거름이라고 억지를 썼다.
박정희는 그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었다. 1971년 말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박정희는
“국민의 총화와 단결”
로 국가안보를 지키자며 국민들을 위협했다.
유신정권은 국민총화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 음반과 공연을 금지할 때도 국민총화를 핑계로 삼았다.
이 주술적 구호에 도취되고 만 독재자는 국민총화라는 휘호도 남발했다. 1977년 1월 1일 그가 쓴 휘호 한 장이 무려 6,200만원에 낙찰되기도 해(2004), 뜻있는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유신정권의 퍼스트레이디도 국민총화에 관한 신앙고백을 했다. 그는 국민총화를 위해서,
“우리가 이 시점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또 시급한 일은, 무엇보다도 범국민적으로 새마음갖기운동을 벌여 정신순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감히 국민정신의 개조를 다짐했었다.
유신정권이 곧 무너졌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온 국민이 정신순화라는 곤욕을 치를 뻔했다.
‘국민총화’란 구호가 어느새 ‘국민대통합’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국민총화의 깃발을 내세우며 무고한 시민을 탄압하던 유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사람이 아직 그 사람이고, 낡은 색깔론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서다.
첫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