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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랑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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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야기 주머니 스크랩 가을에 본 석굴암(0.10.30)
숲길(吉) 추천 0 조회 42 10.11.15 08: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을에 본 석굴암(0.10.30)

 

일이 있어 경주에 간 김에 석굴암을 보러갔다.

한화콘도에 머물렀는데 아침에 보니 가까이는 골프장과 멀리 황금빛 논이 보인다.

토함산 가는 길은 가파라서 버스를 탔는데 약간 어지러웠다.

한참을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오는데 불국대종각 가기전에 전망대가 있어 경주를 처다보고 간다.

 

전망대 안내판에는 불국사, 불국사 상가, 조양지, 통일전, 경주 남산이 표시되어 있는데 어디가 어딘 지 잘 모르겠다.

불국대종각은 규모가 아주 웅장하게 지어진 것같다.

그 종을 치는데 1천원이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종각 내부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보이는데 문양이 특이하다.

종각 옆에는 비도 조성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석굴안 석굴 안내도를 보고 일주문을 지났다.

길가에 있는 쑥부쟁이는 이제 시들어가는 중인 것을 보니 가을이 가는가 보다.

석굴암의 불상이란 글이 돌에 새겨져 있는데 영국의 세익스피어처럼 중요한 보물이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석굴암 밑에 가니 먼저 수광전이란 전각이 보이는데 아미타불을 모시는 것같았다.

그리고 좌측 위에 둥그런 둠이 있고 그 앞에 전각이 있다.

석굴암 석불도가 있는데 평면도와 종단면도가 그려져 있다.

석굴암 올라가는 길에는 예전에 수리 때 나온 신라시대 석물이 있었다.

 

석굴암 입구에는 전각이 세워져 있어 밖에서는 볼 수 없었고 전각의 옆문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경비원 2명이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고 안내를 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항상 그러한지는 몰라도 석굴암 안에서는 스님 한분과 신도들이 예불을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곳은 유리로 막혀 석굴암 내부의 모습은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밖으로 나왔는데 어린이들도 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고 전각 앞에는 석등의 받침석만 복련형태로 있었는데 그 위에 석등은 어디로 갔는 지 궁금했다.

전각 앞에서 보는 풍경도 볼만했는데 수광전 아래의 공터가 보이고 수광전의 지붕도 보였다.

 

그동안에 항마촉지인만 보면 석가모니불이라고 생각했는데 항마촉지인도 아미타불도 있고 그 앞의 전각이 수광전인 것이 아미타불이라는 증거라고 하는 것같았다.

적은 지식이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었다.

여기 석굴암에는 외국인도 아주 많이 구경을 와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수광전 밑에 공터에는 감로수가 있어 사람들이 물을 받아가고 있었는데 수광전쪽으로 내려오지 못해 수광전을 보지 못했으므로 다시 수광전을 보러 올라갔다.

수광전 밑의 공터에는 기와불사 시주를 받고 있었다.

수광전 올라가는 옆에는 석굴암 보수후 석물이 있었다.

 

수광전에 스님이 예불을 드리고 있어 잽싸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떤 스님을 화를 내는 경우도 있으므로 자리를 피했고 수광전 앞에도 어김없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공양의 상징인 석등이 있었다.

수광전과 석굴암 앞의 전각을 함께 보고 석굴암의 아쉬움을 달랬다.

내려오는 길에 산국을 구경하면서 석굴암 구경을 마쳤다.

 

 

석굴암 본존불

 

국보 제24호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시대 : 통일신라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넙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석굴암의 본존 부처님은 높이 총 높이 326㎝, 대좌 높이 160㎝, 기단 상대석 폭 272㎝의 거대한 불상이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얼굴 상은 안정감이 있으며 종교적인 숭고함을 띄고 있다.

우리가 뚜렷한 명칭 없이 본존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존재를 둘러싸고 불교학계와 고고미술사학계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본존 부처님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불교계의 주장은 전통적인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고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했던 황수영 박사의 아미타 부처님설은 7~8세기의 역사적인 사실을 추정해서 당시 세워진 본존 부처님 대부분이 아미타 부처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두 학설 모두 설득력이 있지만 이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1998년 퇴임)로 재직 중이던 신현숙씨의 경전적 해석, 특히 석굴암 만다라설은 본존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일 가능성에 대해 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렇듯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빼어난 작품성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게 하는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동해를 바라다 보는 석굴암 본존 부처님은 그 형태의 위엄 만큼이나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통일신라 불교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부상과 보살상

 

주실인 원굴에 들어서면 좌우의 천부상 다음에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첫번째 안치된 부처님은 제석이며 그 반대쪽은 범천이다. 이 천부상은 모두 매우 사실적인 묘사에다 세련되고 우아한 작풍을 보인다. 천부상 다음으로 좌우 벽에 새겨진 보살상은 왼쪽이 문수, 오른쪽이 보현보살상이다. 문수보살상은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서서 몸을 굴 안으로 향하였다. 보현보살상은 왼손에 경권을 들고 오른손은 내려져 있다. 천부상과 더불어 이들 보살상은 석굴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감실

 

석굴 주벽상의 위쪽에는 남북과 동으로 각각 5개의 반구형 감실이 배치돼 있다. 석굴과 잘 조화되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 이 감실은 동시에 공간의 확대효과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대부분 보살상인 이 감불좌상은 본존불의 바로 전방과 그 후방인 십일면관음상의 상면만을 피하고 그 나머지 벽면에 배치되어 하늘과 땅과의 중간에서 이 석굴의 영광과 장엄을 찬미하고 환희하는 것 같다. 조각 또한 주위의 벽에 있는 다른 여러 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작품이다.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십일면 관음보살상은 바로 본존 부처님의 뒷면 둥근 벽의 중앙을 차지하고 똑바로 서있다. 그 어느 조각보다 정교하게 조각되어 석굴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존 부처님 바로 뒤에 배치된 이 조각의 양식적 특성은 무엇보다 머리위에 작은 아홉개의 얼굴이 있고 그 위에 다시 한 관음이 있어서 본체와 합하여 십일면이 있는 관음 보살님이란 점이다. 긴 몸에 섬세하게 표현된 천의와 온몸을 덮고 흐르는 영락(纓珞)은 정교한 귀걸이나 목걸이 등과 더불어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십대제자

 

석굴 후벽 중앙에 십일면관음상을 안치하고 그 좌우에 곧이어서 각각 5구씩 나한(羅漢) 입상을 배치하였는데, 그 중 왼쪽에 있는 십대제자상이다. 석가여래의 제자 중에서 이름이 높은 수제자 10인을 말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 나한상은 동양에서도 첫째로 꼽을 만큼 훌륭한 부조상을 하고 있다.

십대제자상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들 얼굴의 다양한 표현이다. 긴 얼굴에 각기 다른 골상을 보이는 서구적인 모습의 이들 제자상은 모두 머리를 깎았으며 큰 코에 야윈 얼굴을 하고 있다. 자세 또한 정면 또는 측면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의상의 모양도 서로 다르다. 경권, 향로, 정병 등 각기 손에 들고 있는 것에도 차별이 있어 여러가지의 특색을 보인다.

 

사천왕四天王

 

전시로가 주실을 연결하는 통로의 좌우벽에 배치되어 있다. 수미산의 사방을 관장한다는 천왕으로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으로 부른다. 전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앞에 남방 증장천왕, 뒤쪽에는 서방 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앞에 북방 다문천왕과 뒤쪽에 동방 지국천왕이 배열되어 있다.

이들 사천왕은 모두 악귀를 발로 밟고 있는 형상으로 서 있는데, 동방천왕은 두 손으로 칼을 들고 있으며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북방천왕은 얼굴을 북쪽으로 돌린 표현에 왼손은 옷자락을 쥐고 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보탑을 받치고 있다. 남방천왕은 검을 양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동방천왕과 유사한 자세이나 발 아래에 있는 악귀의 모습이 업드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방천왕은 오른손은 가슴께에 두고 왼손은 검을 쥐고 있는 자세이다. 얼굴 부분이 따로 제작되어 있어 후대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팔부신중八部神衆

 

팔부중 또는 천룡팔부 등으로도 부르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들의 상으로, 전실의 좌우 벽에 각 각 4구씩 배치되어 있다. 전실 입구 오른쪽부터 가루다 · 마후라가 · 야차 · 데바 · 왼쪽은 아수라 · 긴나라 · 건달바 · 나가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가루다상은 인도의 새벽 태양의 신이 불교에서 불법을 설하는 곳의 수호신으로 표현되는 신중상이다. 석굴암에서는 두터운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있는 입상으로 표현되었다. 왼손에는 삼지창을 쥐고 있고, 두 귓가에는 날개 모양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본실의 조각들보다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번째의 마후라가는 인도의 수호신 격이었던 것이 불교에서 팔부신중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왼손에는 검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군지를 들고 있다. 세 번째의 야차의 상은 인도에 데바 신으로 불교의 팔부신중상의 하나로 자리한다. 석굴암의 천 상은 두광은 화염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두손은 가슴께에서 수인을 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옷주름이 두껍게 표현되어 있다. 네 번째 데바가 상은 뱀을 상징하는 신으로 땅속의 마귀를 진압하는 신중이다. 석굴암에서는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있고, 왼손은 자연스레 구부려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있다. 좌측 제1상인 아수라 상은 인도의 악의 신이었으나 불법에 귀의하여 신중의 자리를 점하였다. 석굴암에서는 현재 머리와 발 부분의 부재는 결실된 형태로 남아있으나, 3면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의 특징은 잘 남아 있다. 옷주름은 가벼운 천을 두른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좌측 두 번째 상인 긴나라 상은 본래 악사의 기능을 담당한 신이었다가 팔부신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군복을 입은 모습에 왼손에 삼차극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를 기른 상으로 단정한 형태로 서 있다. 좌측 세 번째 건달바 상은 인도 신화에서는 악신이었으나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수호신으로 위치한 신중이다. 석굴암에서는 머리 위에 사자를 두르고 있으며, 가슴께는 밧줄을 감고 있는 입상의 형태이다. 좌측 네 번째 나가 상은 본래 비와 바람의 신으로, 불교의 수호신으로 위치하고 있다. 석굴암에서는 머리에 용을 두르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를 쥐고 있다

 

금강역사

 

석굴암 금강역사(金剛力士)는 석굴암 입구에서 주실로 들어가는 좌우에 자리잡고 있다. 금강역사의 역동적인 자태는 이름 그대로 힘이 넘쳐 흐른다. 옷 매무시나 문양에서 보여지는 정교함은 다른 석굴암 조각물과 비교했을 때 많은 차이점이 있다. 두드러지게 양각이 강조된 것은 전반적으로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상신과 하신의 구분된 의상은 근육을 더욱 강조하고 현실감을 느끼게 만든다. 조각물의 기법은 제작자의 의도와 일치한다. 석굴암 제작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작자의 예술적인 감각과 작품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먼저 석굴암 앞의 전각을 본다. ^^

 

 

숙소인 한화콘도에서 본 경주의 모습이다. ^^

 

 

석굴암 주차장과 불국대종각의 모습이다.

 

 

불국대종각의 전경이다. ㅎㅎ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경주 전경이다.

 

 

조망 안내도이다.

 

 

불국사 상가로 보인다.

 

 

저기 좌측이 남산인가?

 

 

가운데 오른쪽 연못이 조양지인가보다.

 

 

불국대종각을 크게 본다.

 

 

불국대종각 편액이다.

 

 

바로 밑에서 대종각을 올려본다.

 

 

종인데 한번 치는데 1천원이다.

 

 

천정의 모습이다.

 

 

석굴암 일주문이다.

 

 

일주문에서 석굴암 가는 길인데 가을이 깊어간다.

 

 

석굴암 밑에 있는 수광전인데 전각을 보고 석굴암의 본존불이 아미타불이라고 한다.

 

 

석굴암 앞의 전각의 모습이다.

 

 

석굴암 석굴도이다.

 

 

석굴로 올라가는 길이다.

 

 

석굴암 수리후 나온 석물이다.

 

 

석굴암 들어가는 입구이다.

 

 

다음 사진들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부득이 가져왔습니다. ㅎ

 

본존불의 모습인데 수하항마인이라 일본인들은 석가모니불이라고 하였지만 앞에 전각이 수광전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아미타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본존불과 주변의 모습이다.

 

 

본존불과 주변 모습이다.

 

 

사천왕상이다.

 

 

석굴암 전면 모습이다.

 

 

석굴암 천정의 모습이다.

 

 

십대제자의 모습이다.

 

 

 

십일면 관음보살이다.

 

 

팔부신중이다.

 

 

감실의 모습이다.

 

 

어린이들이 구경왔다.

 

 

석굴암 앞의 전경이다.

 

 

석굴암 앞의 석등의 밑을 받치는 돌로 만든 복련이다.

 

 

석굴암 앞의 전각의 모습이다.

 

 

어린이들이 전각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석굴암 앞의 전경을 가까이 담아 본다.

 

 

수광전 밑의 공터의 모습이다.

 

 

외국사람도 많이 왔다.

 

 

수광전 밑 공터의 감로수이다.

 

 

저기도 수조인가?

 

 

기와불사를 받나보다.

 

 

수광전 올라가는 길에도 석굴암 수리 후 석물이 있다.

 

 

수광전의 내부 모습이다.

 

 

수광전 앞의 석등이다.

 

 

수광전과 석굴암을 함께 본다.

 

 

수광전의 편액이다.

 

 

산국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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