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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2026.03.23. (월)
새벽기도회
(2026.03.03. 새벽기도회)
인도 : 담임목사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송 :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은혜와 사랑]
1.
하나님은 외아들을 주시는 데까지
세상 사람 사랑하니 참 사랑이로다
[후렴]
하나님은 사랑이라 죄악에 빠졌던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 사랑 아닌가
2.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우리
원수같이 대적하나 사랑하여 주네
3.
세상 죄를 사하시려 우리 죽을 대신
성자 예수 십자가에 고난 받으셨네
4.
이 사랑에 감사하여 곧 주께 나오라
곤한 영혼 주께 맡겨 구원을 얻으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 : 시18: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1 I love you, LORD, my strength.
말씀 : 담임목사님
https://www.youtube.com/watch?v=A1SV1VZDFlo
제목 : 사랑 받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다
나의 아들, 딸들이 "학교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사랑 받는 아이보다 사랑하는 아이가 더욱 건강하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보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더욱 귀하다.
사랑하는 주의 백성이 되시길 .....
대형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들..... 끝까지 싫어한다.
우리는 사랑 받지 못해도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다윗은 평생 행복한 사람이었다.
- 여호와 하나님을 평생 사랑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랑 받지 못한 가정에서 살았다.
(아버지, 형들로부터..... )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을 사랑했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 :
- 다윗 : 사랑하는 사람
- 사울 : 사랑 받고자 하는 사람 => 사랑 받는 사람을 미워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 받지 못한 것을 이겨낸다.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교회 --- 담임목사의 목회 방침을 잘 따른다.
선교지에서는 서로 경쟁하고 서로 미워하는 경우가 많다.
미워하면 쇠락해져 가고
사랑하면 흥왕해져 간다.
첫째 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면 시기 질투한다.
( 자기가 받은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
다윗 -- 오직 친구 요나단만이 다윗을 사랑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한 그 사랑으로 건강하게 살았다.
요압 --- 자기 자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다윗의 뜻을 거슬려 압살롬을 죽임)
예수님 :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이땅에 왔다."
사랑은 도덕이 아니다. 사랑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사랑받지 못해도 사랑하면 행복해진다.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3월 특별새벽집회를 통해 받은 교훈 :
"사랑 받는 것보다 더욱 귀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담임목사님 기도
주기도문 --- 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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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명성교회
구역성경공부교재
2026. 03. 20.(금)
고린도후서(14) :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본문
고후5:11-15
화목하게 하는 직분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11 Since, then, we know what it is to fear the Lord, we try to persuade others. What we are is plain to God, and I hope it is also plain to your conscience.
12 We are not trying to commend ourselves to you again, but are giving you an opportunity to take pride in us, so that you can answer those who take pride in what is seen rather than in what is in the heart.
13 If we are “out of our mind,” as some say, it is for God; if we are in our right mind, it is for you.
14 For Christʼs love compels us, because we are convinced that one died for all, and therefore all died.
15 And he died for all, that those who live should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but for him who died for them and was raised again.
■시작찬송가
488장(통539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미래와 소망]
■헌금찬송가
310장(통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와 사랑]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 우리는 사역자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에게 미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알려진 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사역자의 첫 자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고후 5: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자유하지만 절제하고, 기쁘지만 조심하며, 감사하지만 연약한 자들을 돌보게 됩니다. 사람은 기쁘면 들뜨게 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기쁘면서도 조심합니다. 잘될 때,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거기에 도취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만하지 않았고, 자랑하는 법이 없었으며,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증거입니다. 교만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는 인간의 뜻대로 돌아갑니다. 강대상에서 싸우고, 설교자를 끌어내리고, 설교와 기도를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목회자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교회가 평안하고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보다 하나님 앞에 알려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후 5:11-12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바울은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몰라줘도,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자신을 연약한 사람, 말에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은 하나님께 알려졌음을 믿었습니다. 여기 ‘알리어졌다’는 말은 보기에 명백하다는 뜻입니다. 가부를 정하기 힘든 애매모호함이 아니라 하나님 눈에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분명한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것과 교회에서 명백한 것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수요예배에 나오는 것, 십일조를 드리는 것, 이런 것들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명백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명백한 일을 행하는 것을 기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십일조가 되었든, 예배가 되었든, 봉사가 되었든,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알려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사람에게 알려지기보다, 사람은 절대로 몰라도 괜찮습니다. 자꾸 알리려고 하는 유혹을 꾹꾹 누르고,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으로 만족하시면 거기에는 능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 삶의 자세
사람의 자세만 보아도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역을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자세가 바르지 않다면 오래도록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기 어렵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자세를 돌아보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주, 매달, 그리고 한 해를 살아가며 늘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022.09.14. 수요기도회 중)
[말씀다시보기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watch?v=kczxeNCnWNk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함을 받아야 합니다
고후 5:13-14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바울은 복음에 지나치게 매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밸런스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치우침이 있어야 능력이 생깁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치우침이 없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신앙은 반드시 치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열정에는 지나침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다투게 되었고, 마가 문제로 갈라서야 했습니다. “나는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고 고백할 정도로 완전히 쏟아부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는 미친 것처럼 보였지만, 강도를 당해도, 매를 맞아도 복음 때문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온전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만, 모함, 음행과 파벌을 다 들춰내서 바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미친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온전한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배경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야 합니다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강권’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8장 고린도 배경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하니라”고 했는데, ‘붙잡혔다’가 ‘강권’과 같은 단어입니다. 헬라어 ‘시네코’는 조각이 나거나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꽉 붙잡아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꽉 붙잡아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기분 좋게 해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더 큰 능력은 우리를 붙잡아주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주님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꼭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 안에 있었을 때 바울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흔들어도, 모함해도, 매를 쳐도 떨어져 나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금방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이사, 직장 변화, 결혼, 유학, 승진, 새로운 취미나 친구 때문에 믿음과 떨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면, 주님께서 영원히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풍성한 나눔을 돕는 질문
1. 바울은 “주의 두려우심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며 살 때가 없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2. 신앙생활에서의 ‘밸런스’와 ‘치우침’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무난한 신앙생활과 지나친 신앙생활 중 어느 쪽이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복음에 ‘지나치게’ 열심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3.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인생의 전환점에서도 믿음을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
사도행전 15장 36 - 41절에는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제안하자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함께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가가 이전 여행 중 밤빌리아에서 중도에 떠났던 일을 이유로 동행을 반대했습니다.
이 문제로 두 사람 사이에 심한 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함께 사역하지 못하고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새로운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이 갈등을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단정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기록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와 갈등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려 했고, 바울은 사역의 책임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갈등 속에서도 복음을 전진하게 하셨고, 후에 마가도 회복되어 귀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힌 삶을 삽시다!
공동 기도 제목
1.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대통령, 안보, 외교, 통일 등)
2. 교회를 위해서(교회와 속한 기관 및 봉사자, 교역자, 선교사 등)
3. 해외선교지를 위해서(에티오피아 MCM, 캄보디아, 필리핀 등)
4. 국내선교와 기관선교를 위해서(안동성소병원, 소망교도소, 장학관 등)
5. 교회 안의 이웃을 위해서(군장병, 해외유학생, 환자 등)
6. 세상의 이웃을 위해서(새터민, 이주노동자, 노숙자, 소년소녀가장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