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다.
대학 동아리 친구, 과 친구, 회사 입사동기, 사회에서 만난 친구와는 진실된 우정을 나누기가 힘들다고 했다.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꼭 맞는 말도 아니었다.
지구 상 어디나 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인종과 국적이 달라도 사람의 신뢰와 감성은 대개 비슷하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동기가 대략 50여 명 정도 였고 남녀가 반반 가량이었다.
어찌 하다보니 내가 동기들의 반장으로 뽑혀 3개월 간의 신입교육 기간 동안 나름대로 바삐 지냈다.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어느새 34년이 흘렀다.
서너 명을 제외하곤 모두 중간에 사직하여 각자의 길로 진출했다.
해외로 나간 친구들도 꽤 많았다.
일 년에 두 번 명절이 있는데 그 시기에 동기들이 간혹 귀국하곤 했다.
아니면 중요한 사업 미팅차 들어올 때도 있었다.
아무튼 요점은, 수 년에 한번씩 귀국할 따마다 꼭 나에게 연락이 온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동기나 친구의 연락이 오면 매번 시간을 뺐다.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나에게 선약이 있을지라도 어떻게든 조율을 했다.
귀국한 자들의 입장과 일정을 배려하고 싶었다.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일을 마무리 짓고 다시 출국해야 했기에 분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나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설날 연휴에도 귀국한 동기가 있었다.
동기들 밴드에 글을 남겼더니 안산에서 한 동기가 달려왔다.
연휴 직후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밀렸던 얘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엮었다.
감사했다.
그의 근황과 형편도 상세히 알 수 있었고, 한국에 있는 모든 동기들의 동정도 그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를 자처했다.
디지털 디바이스의 '스마트 커넥터'였으며 동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이었다.
그 친구의 초청으로 내년 2월에 '첫 해외 M.T'를 준비 중에 있다.
경비도 꽤 모았다.
3월 하순엔 1박2일로 '부산 M.T'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래저래 바쁜 체 하고 있다.
내 가까운 친구들이 물었다.
"아니 어떻게 입사 동기들하고 30년도 더 지났는데, 그것도 남녀가 반반인 조직에서 혼성으로 1박2일 간 M.T를 가고 며칠씩 해외로 나갈 수 있느냐"고.
이런 비슷한 질문들을 가끔씩 받곤 한다.
내 대답은 늘 심플하다.
'신뢰' 때문이라고.
'신뢰'란 단어는 내뱉기는 쉽지만, 그 '신뢰'를 단단하게 구축하기까지는 최소 10년, 보통은 20년 이상이 걸렸다.
진짜로 간단하고 쉬운 단어가 아니었다.
어렵고 엄중한 삶의 컨셉이며 원칙이었다.
입사 동기들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올 봄에 여러 모임에서 다양한 방식의 M.T를 간다.
추진부터 마무리까지 전 과정이 대개 내 몫이지만 늘 해왔던 일이기에 개량화, 정량화, 시스템화 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과 친구들 엠티', '동아리 친구들 엠티', '대학 동문회 엠티', '여러 모임의 주말행사' 등등 스케줄이 빼곡하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 잘났다고 자랑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고로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다.
진리다.
잘난 소나무는 이미 재벌집 정원이나 네임 밸류가 쩌는 최고급 아파트 단지 그리고 크고 화려한 빌딩의 조경수로 진작에 모셔갔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다보니 결국엔 못난 소나무만 옛 동산에 남았다.
무변, 한결같음, 손해보는 듯하게, 내 논만이 아니라 들판 전체를 생각하라, 배려와 헌신, 기도와 인내, 이른 새벽 그리고 큐티, 조용히 일어나 먼저 눈을 쓸고, 환한 미소와 넉넉한 가슴으로, 오랜 기다림.......
평소에 내 글을 읽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일기를 써왔다.
내 글 속에 상술한 단어나 문장들이 자주 '원용'되고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맞다.
자주 표현했다.
사용 빈도가 많았던 단어였고 문구였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일관된 다짐이자 기도였으니까.
"다른 모임에선 일박이일 간 남자들과 여행이나 M.T를 갈 수 없는데 유달리 이 모임만은 남편이 웃으며 허락해 준다"고 하는 여.사.친들이 많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여성 선,후배들이 그런 얘기를 가끔씩 하곤 한다.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세상일이 어찌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자식농사'나 '나무를 키우는 일'이나 '사업'이나 '다양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절대로 속전속결은 있을 수 없다.
'카지노'나 '고스톱 판'이라면 모를까.
철새든 텃새든, 큰 독수리부터 작고 귀여운 아기새까지 깊고 푸른 숲이 있으면 모두가 깃들고 싶어 한다.
자연의 이치며 인지상정일 게다.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과 비용을 조금이라도 할애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순수한 에너지를 열정적으로 쏟으며 투명하고 예쁜 우정을 유지해 갔으면 좋겠다.
결국, 사람 사이에서 깊고 푸른 숲으로 승화되는 건 이런 '기도'와 한결같은 '실천'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네 삶의 좌표는 무엇인가.
돈인가, 권력인가, 명예인가, 사랑인가, 동행인가.
각자의 생각과 지향점은 분명 다를 것이다.
수백 년 동안 고향마을을 지켜온 '팽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좀 못생겼어도 오랜 세월 변함 없이, 온갖 풍상을 이겨내며 따뜻한 가슴과 온기를 보듬은 채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식사하고 커피 마시고 헤어지려 할 때, 오랜만에 귀국한 친구가 그랬다.
"사진 한 장 담아서 출국하고 싶다"고.
좋은 생각이었다.
카페 옆 테이블에 있던 젊은 커플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휴대폰을 넘겼다.
"아저씨들 표정이 짱이네요. 자, 찍을께요.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사진 한 장을 간직한 채 지하철역으로 내려왔다.
각자 다른 노선을 타기 전에 친구들과 포옹했다.
푸근했다.
사람 사이의 진정한 자산은 풋풋한 신뢰와 믿음이 아닐까 싶다.
내년 2월에 우리 동기들과 함께 '첫 해외 M.T'를 가면 그곳에서 다시 이 멋진 사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타국에서도 언제나 건강하고, 친구가 하는 일이 늘 순조롭기를 기원해 본다.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