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믿음
글쓴이/봉민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동하는 믿음이 아닌 것은 죽은 믿음이다.
살아있는 것은 행동한다.
신앙이 좋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기도 많이 한다고 믿음이 좋다고 할 수 없다.
기도하고 기도 한대로 살지 않는 것은 죽은 기도를 한 것이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많이 안다고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
성경대로 살지 않으면 세상의 책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라고 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는 행함과 함께 일하고 말씀은 행함 속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말만 잘한다고 설교 잘하는 것이 아니다.
삶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는 가증한 것이다.
말만 하고 행치 않는 것은 자신 앞에 심판의 도끼를 놓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 온몸으로 보여 주셨듯이 삶으로 보여 주지 않는 믿음은 거짓믿음이다.
말로만 사랑하라 가르치는 이가 자신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죽도록 봉사하고 섬길지라도 사랑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외식하는 신앙이요
하나님 앞에서 받을 아무런 상급이 없다.
보여주기 위한 신앙생활 또한 매우 가증한 것이다.
사람들을 속이고 눈을 가릴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가 없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선지자 노릇하고 열심히 주를 섬겼노라 할지라도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실 것이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셨다.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만이 하나님은 인정하신다.
사랑 없는 섬김, 사랑 없는 수많은 설교와 가르침, 사랑 없는 삶은
세상 이방사람들이나 하는 외식일 뿐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잊고 지낸 하나님
사람이 갖는 가장 커다란 착각 중의 하나는
시간을 자기가 소유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늘 내가 시간 속에 살고 시간을 사용하니까
그렇게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은 사람이 시계를 가지고 나누었을 뿐
시간은 나뉠 수도 없고 과거나 미래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시간은 빠르거나 느릴 수 없으며
흐르거나 멈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장중하게
태고부터 거기에 불변의 모습으로 존재했습니다.
사람의 일생이란 겨우 시간의 미세한 간격을 채우며
산다는 의미에서 단지 ‘시간’ 안에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시간이란 다만 자신의 노쇠과정일 뿐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시간은 철저히 나와 별개이며
그 속에서 사람은 단지 한 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시간은 시간으로 존재할 수 없고
영원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속성 그 자체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하나님을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심코 흘려버리고 쾌락과 방종으로 소모한 시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나눈 자신의 일부입니다.
이런 눈으로 볼 때 시간 속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길이 참으심이 절절이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나누어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짧다고 불평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돌이켜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 계심을 아십니까?
주께 드릴 것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그의 것이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마틴 루터
We cannot give God anything;
for everything is already His,
and all we have comes from Him.
We can only give Him praise,
thanks, and honor.
- Martin Luther
이 세상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육신조차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이 땅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뿐입니다.
육신도 잠시 땅에서 빌려 쓰고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욕심부리다 가는 것이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기의 것은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온 맘 다한 찬양과 영광입니다.
전도의 첫 걸음
당신이 정말 기도하는 교회를 알고 있다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전도하는 교회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정말로 전도하는 교회를 알고 있다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기도하는 교회일 것이다.
기도는 전도의 첫 걸음이다.
전도하기로 작정한 후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씨앗을 심은 후 돌보지 않는 농부와 같습니다.
오랫동안 고대해왔던 한 영혼이 가슴 속에 있다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사랑하는 한 영혼이 있다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당신의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보다 참사랑으로 내리는 전도의 결단,
그 결단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Rev. Michael Lee, Ph. D.
믿음의 상상력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놀랍습니다.
그는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응답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 데이비드 메티스
God’s ways of answering our
prayers are more stunning
than we can dream.
He loves to answer
better than we ask.
- David Mathis
하나님은 우리의 단조로운 기도언어 속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말로 표현된 기도보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헤아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믿음의 상상력을 키워 하나님의 눈으로
나 자신과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막과 광야
사막과 광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사막은 비가 와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나무도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비가
오면 나무도 자랄 수 있고
푸른 초장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광야를 교회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우기와 건기로
나눠지는데 우기가 되면
광야는 푸른 초장이 되지만
건기가 되면 사막처럼 황량해집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우리에게
우기의 비가 되십니다.
사람 중에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건기의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사는 이가 있고, 우기의 푸른
초장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게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
성경에 보면
말씀을 가까이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나아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네 인생을
푸른 초장이 되게 하는 은혜가 됩니다.
광야에서
우기의 삶으로,
푸른 초장의 삶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