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회화 교실에서
성병조
(영어 회화) 외국어는 조금 멀리하면 금방 잊어버린다. 영어가 좋아 지금도 가까이하려고 노력해도 외국인을 만나는 기회는 드물다. 그러다 보니 실력은 무디어지기 마련이다. 이러다 외국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입이 좀 열리는데 다녀오면 또 멀어진다. 영어와 친해지고 싶어 도전장을 던졌다. 인기 강사 덕분인지 새벽부터 줄을 서야 등록의 기회가 돌아온다. 소문 듣고 나도 그 대열에 섰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수강하는지도 궁금하였다. 며칠 전 개강을 했는데 여성이 대부분이다. 바쁜 시절 다 보내고 이제 외국 여행을 다닐 만큼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이런 자리에 앉으면 언제나 즐겁다. 공부도 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서로 나누고...
(그것도 궁금하다) 용기의 중요성은 어디서나 강조된다. 경상도 말로 '짭짝 짭짝' 하다 보면 기회를 놓칠 수가 있다. 오랜만에 영어 회화 등록 후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떤 선생님? 반 동료들은? 영어 수준은? 호기심이 넘친다. 열정 충만한 여 선생님인데 유독 낯가림이 심하다. 스스로 그렇다고 말한다. 당당한 것도 좋지만 이렇게 수줍음을 보이는 게 더 여성스러울 수도 있다. 처음 만난 반 친구들은 서로의 성향 파악에 분주하다. 10여 년을 줄곧 이곳에서 공부했다는 사람도 있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교실 분위기가 괜찮아 보인다. 영어 회화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내 짝꿍 될지 그것도 궁금하다.
(얼라 러브) 영어 회화 시간이다. 선생님의 발음이 무척 유창하다. 여느 선생님과는 다른 교육법을 보인다. a lot of 의 발음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어 랏 오브’가 아니라 ‘얼라 러브’로 발음한단다. 완전 본토 발음 같다. 얼라 러브라? 이 말만으로 풀이하면 '아이 사랑' 아닌가. a lot of --> 어랏 오브--> 얼라 러브 --> 아이 사랑으로 변천되었다면 너무 나간 것인가. 정확성을 추구하는 영어 회화 시간에 이런 농담을 했더니 다들 어이없어한다. 어쩌겠는가. 이 같은 헛소리로 한 번쯤 웃어가는 여유도 있어야 덜 지루할 것이다. 엉뚱한 농담이 양념처럼 여겨져 함께 웃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너무 엄숙하다) 영어 회화 교실 분위기가 너무도 엄숙(?)하다. 몇 차례 수업을 받아보니 엄숙이 지나쳐 두려울 지경이다. 상대방의 눈치를 보면서 모두 입을 열지 않으니 일방적인 강의만 지속된다. 이러면 선생님도 힘들고 학생들도 지루하다. 강좌에 처음 입문한 내 같은 사람이 먼저 나설 입장도 되지 못한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과 조심스럽게 얘기를 나누었다. 혼자만 너무 애쓰지 말고 틈틈이 질문할 기회를 주면 어떻겠느냐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겐 소감 발표 기회를 주어도 좋을 것이다. 여성들이 주류인 판에 한 번 찍히면 회복 불가능이다. 계속되는 정적을 누가 언제 깨트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짝꿍이 좋다) 영어 회화 시간이 거듭될수록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난다. 부부가 함께 나오는 경우도 몇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도 보인다. 여성들이 9할쯤 차지하니 남자들의 위세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내 짝꿍도 서서히 굳어지고 있다. 조짐이 괜찮다. 짝꿍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유인물을 돌리는데 내 것만 챙기고 깜빡해 버렸다. 나중에 돌아와 유인물을 찾는데 얼마나 미안하든지 용서를 빌었다. 이래서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다. 미인과 친해지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는 대화하면서 가볍게 툭툭 치는 버릇이 있다. 남자였다면 화라도 냈을 터이지만 여자에게 맞을수록 기분이 더 좋아지는 건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