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의 도시, 글로벌 허브 도시, 바다 도시, 영화 도시, 미식 도시 등등. 부산을 가리키는 수식어는 참 많다. 그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가진 도시라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야 할 중요한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임시 수도이자 피란 수도로서 부산. 6·25전쟁 시기에 부산은 임시 수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관련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부산 여행 시 바다를 즐기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하루쯤은 전적지를 탐방하며 이 도시와 우리 역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리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피란 수도 부산
<추천 코스>
임시수도기념관 → (도보 20분) → 부산근현대역사관 → (지하철+도보 40분) → 부산시민공원 → (지하철+도보 50분) → 재한유엔기념공원
부산 임시 수도 시절 대통령 관저를 찾아, 임시수도기념관
부산 임시 수도의 역사를 기록한 거리
국난 시기에 부산의 위상을 보여주는 임시수도기념관(Provisional Capital Memorial Hall)에서 전적지 탐방을 시작하면 좋겠다. 부산 지하철 1호선 토성역 2번 출구로 나와 170m 정도 걸어가면 임시수도기념거리(Provisional Capital Memorial Street)를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이곳에서 임시수도기념관에 이르는 약 200m 거리를 따라 1950~1960년대에 운행됐던 부산 전차(국가등록문화유산)와 피난 시절 천막 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 한국전쟁 참전국을 소개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임시수도기념거리에 설치된 조형물
임시수도기념거리의 계단
전시물을 살펴보며 걷다 보면 금세 임시수도기념관에 도달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와를 인 2층짜리 벽돌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1926년에 지어진 건축물은 연륜에 걸맞은 기품을 뿜어낸다. 옆쪽에 높이 솟은 고층 아파트가 대비를 이루어 역사성과 건축미를 돋보이게 한다.
고풍스러운 외관의 임시수도기념관
이 건축물은 원래 경상남도지사 관사로 건립되었다가 한국전쟁 시기에 부산 임시 수도 대통령 관저(사적)로 사용됐다. 전쟁 이후 다시 도지사 관사로 활용되었고 경남도청이 이전하면서 1984년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공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념관 내부는 대통령 관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관저 당시 응접실
관저 당시 내실
벽돌 외관과 달리 내부는 목조 양식을 띤다.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서면 서양식 응접실이 가장 먼저 보인다. 당시 국가 지도부가 주요 국정과 외교를 논하던 곳이다. 응접실 옆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서재와 대통령 내외가 생활하던 내실이 이어진다. 그밖에도 거실, 식당, 부엌, 화장실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특공대원으로 참가한 이정숙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증언의 방과 관련 도서를 비치한 생각의 방을 관람할 수 있다.
알차게 꾸민 전시관 내부
기념관 뒤쪽으로는 단층 규모 전시관이 위치한다. 1980년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 용도로 지어졌던 건물을 2012년 전시관으로 탈바꿈시켜, 전쟁과 삶, 한국전쟁 이후 부산을 주제로 다양한 내용을 담아낸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판잣집, 학교, 밀면집 등 당시 피란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실물 모형과 관련 내용이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야외 정원도 잘 정돈되어 산책하듯 걷기 좋다. 임시 수도 부산에 대한 전시물과 포토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3월 말에는 벚꽃이 피어 운치를 더한다.
야외 정원에도 볼거리가 많다.
임시 수도 부산에 대한 전시물이 배치되어 있다.
역사적 건축물에서 배우는 생생한 부산 이야기, 부산근현대역사관
역사적인 건축물에 자리한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임시수도기념관을 나와 다시 임시수도기념거리를 따라 20여 분 도보로 직진하면 부산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또 다른 주요 건축물이 등장한다.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으로 단번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곳은 부산근현대역사관(Busan Modern & Contemporary History Museum) 별관이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부산광역시 기념물)으로 신축되어 해방 후에는 미군 숙소를 거쳐 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되었고 전쟁 시기에는 미국대사관이 자리 잡는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다.
별관과 본관이 바로 인접해 있다.
본관은 옛 한국은행 건물에 자리 잡았다.
공간의 가치를 살려 2003년부터 2021년까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다 2023년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으로 재탄생했다. 바로 옆에 있는 본관은 1963년 지어진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를 개조해 2024년 문을 열었다. 두 개의 역사적인 건축물을 결합한 부산근현대역사관은 부산, 더 나아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소로, 본관은 복합문화공간, 별관은 인문학 공간에 초점을 맞춰 운영한다.
입체적인 전시를 통해 부산 근현대사를 배우는 시간
본관은 2개의 상설전시실을 통해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시기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근현대사를 입체적이면서도 내실 있게 다룬다. 전차를 타고 옛 부산 거리를 달리는 분위기를 재현해 놓은 공간, 부산의 상징적인 장소인 산복도로를 표현한 디오라마(배경을 그린 길고 큰 막 앞에 여러 가지 물건을 배치하고, 그것을 잘 조명하여 실물처럼 보이게 한 장치)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본관 1층에 자리한 부산 로컬 카페
옛 은행 시설을 업사이클링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이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체험실 들락날락, 한국은행 부산본부 시절의 금고 시설을 활용한 금고미술관, 각종 로컬 상품을 모아놓은 기념품점 등이 모여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1층에는 기존 은행 시설을 재해석한 독특한 분위기의 로컬 카페 까사 부사노(Casa Busano)가 자리한다. 은행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는 이색 메뉴를 선보이는데 은행원들에게도 은행을 찾은 고객에게도 친숙했던 ‘믹스 커피’를 모티브로 한 시그니처 음료와 옛 은행 금고에 어울리는 골드바 모양 케이크가 대표적이다.
인문학 거점 공간으로 꾸민 별관
한편, 인문학 거점 공간을 지향하는 별관은 역사, 문화, 예술,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구비하고 편안하게 책 읽을 자리도 마련해뒀다. 부산 시민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독특한 건축 요소를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철근콘크리트 구조, 철골 구조,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세 가지 방식이 복합적으로 사용된 건축물 특성을 군데군데서 관찰할 수 있다.
건축물 특성을 관찰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편안한 공간
굴곡진 역사 위에 피어난 평화로운 휴식처, 부산시민공원
부산시민공원에 숨겨진 굴곡진 역사를 알아보자.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 속 휴식처인 부산시민공원(Busan Citizens Park)이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사람들이 여유롭게 산책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평화로운 이 공간에 우리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100여 년 동안 이방인의 땅이었던 곳
부산시민공원이 들어선 부지는 100여 년 동안 우리 땅이지만 이방인의 땅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이곳을 경마장으로 운영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군사 목적으로 사용했다. 광복 후 일본이 떠난 후에는 미군이 이 땅을 차지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주한 미군 부산기지사령부 캠프 하야리아가 설치되어 2006년까지 주둔했다. 1995년부터 캠프 하야리아 부지를 되찾기 위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전개되었고, 그 결과 2010년 부산시는 땅을 반환받아 시민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했다.
옛 장교클럽이 역사관으로 변신했다.
장교들이 식사, 연회 등을 즐기던 장교클럽 내부 모습
공원 안에는 이러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한 역사관이 있다. 1949년 말 건립된 구 부산미군장교클럽(부산광역시 기념물)을 부산시민공원 역사관(Park History Museum)으로 꾸미고 이 땅에 어린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군 주둔기를 거쳐 부지를 반환받아 공원이 조성되기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캠프 하야리아가 있던 시절 인근 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코너가 흥미롭다. 미군을 상대하는 양복점, 기념품점, 노점상 등이 실감 나게 전시되어 마치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기분마저 든다.
옛 미군 부대 시설을 재생한 공간들이 이색적이다.
미군 부대 시절의 시설을 재생한 볼거리는 다양하다. 미군 부대 안에 남아 있던 목재 전신주를 재활용한 기억의 기둥, 당시 학교를 개조한 시민사랑채, 하사관 숙소를 공방과 전시실로 재구성한 문화예술촌, 사병 숙소였던 퀀셋(길쭉한 반원형의 간이 건물) 막사를 활용한 뽀로로도서관과 갤러리 카페 등이 있다.
막사가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
역사와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부산시민공원은 축구장 크기 약 66배에 해당하는 471,518㎡ 규모에 각종 테마 숲길과 물을 테마로 꾸민 거울 연못, 음악분수, 터널 분수를 비롯해 잔디 광장, 백사장, 어린이 놀이 시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도 많은데 BTS 팬이라면 뷔가 인증 사진을 남긴 포인트를 놓치지 말자.
공원 규모에 걸맞게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참전 용사들이 잠든 숭고한 공간, 재한유엔기념공원
경건한 분위기의 재한유엔기념공원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 묘지를 부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성지인 재한유엔기념공원(국가등록문화유산,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전사자들이 잠들어 있는 숭고한 장소다. 현재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등 여러 국적의 전사자 2,300여 명이 안장되어 있다.
한국 대표 건축가가 설계한 추모관
한국 전통적 조형성을 살린 정문부터 눈길을 끄는데 세계적인 거장 르 코르뷔지에 문하에서 건축을 배운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삼각 형태의 추모관 역시 그의 작품으로, 참전 용사들의 다양한 국적과 종교를 고려해 디자인했다. 추모관 안에서는 공원의 역사와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추모관 앞 기념관에는 유엔군 관련 자료가 전시되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캐나다 참전 용사가 디자인한 기념 동상
참전국별로 정돈된 묘역을 돌아보는 길, 타국에서 목숨을 잃은 참전 용사들의 무덤 하나하나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국가별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캐나다 기념 동상이 눈에 띈다. 무장하지 않은 캐나다 군인이 한쪽 팔에는 한국 소녀를 안고 다른 팔은 한국 소년의 어깨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소년과 소녀는 양국을 상징하는 무궁화와 단풍나무 잎을 들고 있다.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 동상은 캐나다 참전 용사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참전 용사 빈센트 코트니(Vincent R. Courtenay) 씨는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뜻을 담아 이 동상을 2001년 만들었고, 2003년에는 같은 동상이 캐나다 오타와에도 설치했다. 그는 유엔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를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제안대로 매년 11월 11일 11시가 되면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하며 전사자의 희생을 추모한다.
평화공원에 세워진 대형 조형물
재한유엔기념공원 방문 시에는 평화공원(Peace Park)을 함께 둘러보길 추천한다. 정문에서 약 450m 걸어가면 2005 APEC 정상회의 개최를 기념해 조성한 평화공원에 이른다. 공원 가운데에는 ‘6·25참전 유엔군 활동 기념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높이 15여 m의 조형물은 재한유엔기념공원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조형물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고개 숙인 조형물부터 전사자들이 잠든 재한유엔기념공원까지 한눈에 들어와 마음이 경건해진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을 향해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다.
여행정보
[임시수도기념관]
주소 : 부산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45
찾아가기 : 부산 지하철 1호선 토성역 2번 출구에서 385m
문의 : 051-244-6345
이용시간 : 09:00~18:00 /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그다음 날), 1월 1일
입장료 : 무료
홈페이지 : www.busan.go.kr/monument
[부산근현대역사관]
주소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04
찾아가기 : 부산 지하철 1호선 중앙역 5번 출구에서 360m
문의 : 051-607-8000
이용시간 : 09:00~18:00 /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그다음 날), 1월 1일 / 어린이체험실은 예약제로 운영
입장료 : 무료
홈페이지 : www.busan.go.kr/mmch
[부산시민공원]
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시민공원로 73
찾아가기 : KTX 부전역 2번 출구에서 245m / 부산 지하철 1호선 부전역 7번 출구에서 580m
문의 : 051-850-6000
이용시간 : 05:00~00:00 / 시설에 따라 차이 있음
입장료 : 무료홈
페이지 : www.citizenpark.or.kr
[ 재한유엔기념공원]
주소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찾아가기 : 부산 지하철 2호선 대연역 3번 출구에서 1.1km
문의 : 051-625-0625
이용시간 : 10~4월 09:00~17:00, 5~9월 09:00~18:00
입장료 : 무료
홈페이지 : www.unmck.or.kr
글·사진 김수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5년 3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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