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뉘」해설 / 권순진
뉘
신달자
거창 신씨 종가 맏며느리로 시집 온 어머니 젤 우선 할 일은 아들 낳는 것이었는데
어쩌나 딸 여섯을 연이어 쭉 낳으며 어머니 생은 발바닥이 되었는데
그 여섯째 딸인 날 두고 어머니 무서운 생각 작심하였는데 세상 나오자마자
그 비린 걸 발길로 걷어차고는 어머니는 생으로 굶기 시작했다는데
질긴 목숨이라 두 모녀가 살기는 살아났다고는 하나……
어머니 손끝에서 버릴까 말까
뉘를 고르다 꼭 나를 손끝 벼랑에 놓고는 망설였는데
이것이 똘똘한 쌀알들 사이에 끼어 살아내기는 살아낼 것인지
세상 나오자마자 걷어차인 엉덩이
어머니 상처의 유적지를 더듬거리다
손 쑥 집어넣고 부식한 한의 화석 하나 골라내는데
안쓰러워라
조금은 금가고 귀 깨어져 모양 거칠지만
제대로 살아라
서서히 어긋나는 머리통을 쓰다듬는데
거긴 쓰라리다!
어머니 온몸으로 막았던 소금밭을 맨발로 줄행랑쳐
염전밭 통째로 등에 지고 살다
겨우 이제 따뜻한 밥알이 되기도 하는.
—《시인세계》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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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수필을 자기 고백적 문학이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고 느낀 것을 여과와 변형 없이 솔직히 드러낸다는 점이 수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고백하는 심경이 고결할수록 그 수필의 문학적 생명이 길다”고 김진섭도 말했다. 하지만 숨김없이 자기를 말해야하는 바로 그 점이 수필이 요구하는 미학인 동시에 수필가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라는 1인칭으로 자신을 스스럼없이 털어 놓기란 때로 내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표현 영역은 비교적 자유롭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내보인다는 점에서는 시도 일종의 고백이라 할 수 있지만 과도한 자기고백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신을 시의 제재로 놓고 시를 쓰는 일은 여전히 위험하므로 굳이 자신을 까발리는 경우란 흔치 않다.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미당의 부친은 지주를 대리해 소작권을 관리하는 ‘마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마름은 대개 횡포와 수탈을 일삼는 악질적인 존재였다.
만약 사실을 의도적으로 호도한 고백이었다면 긍정적 자기애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시에서 슬픔 이상의 서글픔을 읽을 뿐이다. 반면에 ‘한번도 웃어본 일’도 ‘울어본 일’도 없다는 한하운의 <자화상>은 숙연한 감동을 준다. 신달자 시인의 ‘뉘’는 ‘자화상’이란 주어진 주제 아래 쓴 시이긴 하지만 개인사적 그늘이 선연히 표출된 고결한 자기 고백적 작품이다. 도정 기술이 좋은 요즘엔 하얀 쌀에 뉘가 섞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예전엔 밥 짓기 전 쌀을 씻을 때 꼭 뉘를 가려야만 했다.
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처지가 밥이 되길 거부하는 뉘 같은 신세였다고 말한다. 아랫도리에 뭔가를 달고 나와야 대접받던 '응답하라, 1944' 시대에 단지 ‘여섯 째 딸’로 태어난 기구함이 이유의 전부다. 하지만 ‘어머니 손끝’ 벼랑에서 살아난 시인은 스스로 ‘소금밭을 맨발로 줄행랑쳐’ 팔자를 고친다. 쓰라린 삶의 곡절도 견뎌왔다. 시인 자신은 ‘겨우 이제 따뜻한 밥알이’ 된듯도 하다지만, 그만하면 뜸이 잘 들어 윤기 자르르한 아름다운 밥알일 것이다.
권순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