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1절),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2절), “주께서 --- 비척거리게 하는 포도주로 우리에게 마시우셨나이다”(3절) 등의 표현으로 볼 때, 다윗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사가 전쟁에서 패하고 의기소침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승리의 개가를 울리고 승승장구하던 다윗이 왜 패전의 아픔을 맛보아야 했을까? 그는 분명 여호와의 전사가 되어 말씀에 입각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데 무슨 연유로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을까?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旗)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4절)라는 말씀을 보면, 주님 명령에 따라 전투에 나선 자가 승리해서 주의 이름을 높이는 깃발을 펄럭이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어찌하여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상황까지 왔을까? 오늘 말씀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보자.
실패가 없으면 성공의 의미를 모르게 된다. 병든 자라야 의원을 필요로 하고, 고난이 평강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듯, 패전의 경험 속에서 승전의 참 기쁨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다윗은 쓰라린 패전의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어떤 것도 헛된 것이 없다. 모두가 반드시 필요해서 벌이시고, 자기 목적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행시키시며, 자기 영광이라는 목표를 행해 치달아 간다. 이것을 위해 때로는 자기 백성에게 고난도 주시고 역경도 안기신다.
욥을 보라. 그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건강하던 몸이 병들고, 엄청난 재산을 일시에 다 잃었고, 사랑스런 자녀들도 갑자기 몰살하고,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받던 그가 모두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극한 환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이 억울한 일이거나 뭔가가 잘못되어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였고, 그 깊으신 뜻을 자기 백성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그는 그런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욥이 비참한 처지에 이르기 전, 모든 것이 형통하고 평안하던 시절에는 하나님의 일방적은 사랑과 긍휼을 알지 못했다. 욥은 자신의 충성과 헌신, 봉사가 복을 불러왔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 때문에 자녀가 잘되고 가정이 행복한 줄 알았다.
욥뿐 아니라 욥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도 욥과 같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복이라고 여겼던 그 많은 것들이 일시에 다 사라지고, 반대로 저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닥쳐왔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은 욥이 저주받은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람도 없는 사막에 비가 내리는 이유를 아는가? 분명히 그곳에는 생명체도 없고 식물도 없기에 비가 내려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때가 되면 비가 내린다. 욥은 바로 사막과 같은 존재이다. 은혜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 사랑 받을 자격은 더더욱 없는 자이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이 그를 기억했고, 그 결과 너무도 과분하게 은혜의 단비를 맞게 되었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은총이요 복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정죄함이 없는 세계요, 사단의 세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안전지대에 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성도의 자리를 탈취하거나 주님 품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성도가 겪는 실패, 아픔, 좌절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가 최후 승리자란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소품들에 불과하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이미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다윗에 의해 성취되는데 잠시 패전의 아픔을 경험케 된다 할지라도 주님의 언약은 흐트러짐 없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이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6절)라는 구절이 말해주듯, 결국은 그 말씀대로 그 땅을 차지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라는 고백을 생각해 보라. 왜 다윗이 이런 말을 했을까? 인간의 승리, 사람들의 전략이 가져온 결과는 최후 승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후 승리인가?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라는 말씀에서 밝혔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흘리심이 최후 승리이며, 대적을 완전히 섬멸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해 울고, 웃고 할 이유는 없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셨다. 그 십자가 안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감사하는 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 성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