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를 위해 바차타 인스트럭터이자 코리아 쇼셜 페스티발 오거나이져이신 리오신님이
목요 정모날 오셔서 바차타 오픈특강을 한시간동안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정말 흔치않는 기회~와우~!!^^
라틴플레이 가족은 물론 전주 살사인님들~ 많이 많이 오셔서 바차타의 매력에 빠져보아요~^^
4월 22일 목요일
오후 8시부터~9시 (이후 프리댄스 진행)
장소 : 전주 아미고 클럽
현재 우리나라에 바차타를 가장 활발하게 보급시키고 있는 바차타 인스트럭터. ‘코리아 살사 페스티발(K.S.F) 설립자. 한국을 대표하는 해외살사 사절단. 이런 수식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바차타 동호회 아이러브바차타(일명 ‘아바타’: 다음 까페 주소: http://cafe.daum.net/ilovebachata 의 시삽이기도 한 리오신(본명 신준범)이다. 리오신은 지난 몇 년 동안 그의 최고의 파트너 모니카(본명 김소희)와 함께 살사와 바차타 공연과 행사 및 동호회 활동을 위해 서울과 전국 각 지역을 포함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여러 살사행사에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서 끊임없고 왕성한 활약을 해왔다. 얼마 전 일본 오사카 살사 카니발 참가단을 구성하여 해외 살사행사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K.S.F 준비에 여념이 없는 리오신과 파워 인터뷰를 가졌다.
춤의 세계로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리오신도 일상에서 스포츠를 끊임없이 접해왔다. 헬스부터 스쿼시, 골프, 수영 등 안 해 본 운동이 없을 정도. 이렇게 활동적이고 몸 쓰는 것이 익숙한 그가 춤의 세계로 빠져든 것은 라틴댄스에 대한 동경이나 막연히 새로운 취미를 찾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일상의 운동을 위해 헬스클럽에서 수영을 등록하러 갔다가 마침 마감이 되어 대신 선택한 것이 ‘직장인 댄스 스포츠’ 강습이었던 것. 즉, 운동하러 갔다가 우연히 춤의 세계로 빠져든 케이스이다. 그렇게 차차, 자이브 공연을 한 후 자연스럽게 살사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살사의 특성상 그도 다른 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살사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홍대쪽에 있는 살사 동호회에서 초급 강습을 듣게 되었고, 뒤이어 초중급 수업은 강남의 LP 살사 동호회에서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준중급 강습, 그는 운명적인 파트너 ‘모니카’를 만나게 된다.
운명의 다리 부상, 파트너를 되찾다!
모니카는 강남의 ‘러브라틴’ 동호회에서 활동하다가 우연히 LP에서 준중급 수업을 함께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파트너가 된 것은 아니었다. 운명의 장난과 같은 절묘한 사건과 타이밍이 그들을 파트너로 엮어주었던 것이다.
첫 번째 일어난 사건은 바로 리오신의 부상이었다. 자이브를 하다가 다리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하게 되었으니, 수업은 커녕 일반적으로 하는 살사강습 마지막의 발표회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자연히 모니카는 다른 사람과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렇게 운명의 파트너와 비켜가는가 싶었는데 리오신의 배려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저는 그 당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준중급반이 공연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공연 음악 CD를 구워 주겠다고 글을 올렸죠. 그것이 훗날 모니카님과 연결된 결정적인 끈이 될 줄이야!“
그러나 그 배려 하나로 모니카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을까? 여기서 또 한가지 절묘한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모니카 파트너의 다리 부상. 공연 일주일 전 모니카와 파트너를 하기로 했던 살세로가 인라인을 타다 다리가 부러졌던 것이다. 다리 부상으로 잃을 뻔한 파트너를 상대의 다리 부상으로 다시 찾게 되었으니, 모니카와 파트너가 되기로 했던 살세로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리오신에게는 이야말로 운명의 장난과 같은 일 아니겠는가?
그는 근 한 달 반 가량의 깁스를 풀고 드디어 마지막 수업에 겨우 참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 후 홍대 살사클럽에 동기들이 모두 모여 춤을 추게 되었는데 거기서 수업동기가 리오신에게 모니카 대신 제의를 받게 된다. 마침 그런 일로 새 파트너를 찾고 있던 모니카가 리오신이 올린 공연음악 CD 글을 보고 파트너 제안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도 서로 길거리에서 주운 파트너라고 하면서 웃는답니다. (웃음) 그 후, 나이도 비슷하고 서로 춤의 느낌도 좋았고, 가진 생각도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연 연습을 하면서 서로 본명이 아닌 닉네임만 알고 지냈어요. 연습 끝나면 서로 각자 집으로 가기 바빴으니까요. 한 달쯤 후에 연습이 너무 늦게 끝나 모니카님이 홍대에 사는 줄 알고 홍대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갔는데, 나중에서야 ‘홍대’가 아니라 ‘홍제’에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홍대에 내려주면 택시 타고 집에 갔다고 하더군요. (웃음) 그렇게 공연 연습을 하면서 메렝게와 바차타를 즐기다가 그 해 LP 연말파티 때 바차타 공연을 하게 되면서 서로 파트너로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한국을 대표하는 바차타 강사 중 한 명이 되다
그는 2006년 살사 동호회 LP 시삽을 1년간 역임했다. 그러면서 ‘아이러브바차타’라는 다음 카페를 열어 국내에 바차타가 더욱 활성화되고 바차타 동호인들이 하나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바차타 특강, 워크샵, 강습, 국내외 공연 등을 통해 바차타의 보급에 힘썼다. 그는 처음부터 강습비를 받기 위해 바차타 강습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일명 ‘품앗이’ 제도로 동호회 회원들을 위해 도우미를 하다가 여기저기서 강습 제의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강습듣기를 원하는 회원들을 위해 점차 체계적으로 바차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바차타 레벨 1, 2, 3 커리큘럼을 구성하여 클래스를 운영하고 강습비도 책정하여 운영하였다.
그는 5년째 계속해 온 바차타 공연반을 기초로 2007년 바차타 공연단을 결성한다. 그 공연단 20명이 상하이 콩그레스 공연을 필두로 국내 공연도 6차례 이상 하면서 국내에 바차타를 더욱 대중화시켰다. 일명 ‘바차타 바람’을 일으키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은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바차타 강습을 하고 있고, 제 수제자들도 각 동호회에서 강습을 많이 하고 있어 실상 제겐 바차타 강습 제의가 그렇게 많이 들어오진 않아요. 그렇지만 바차타를 확산시키고 한 장르로서 당당히 정착하게 하는데 한 몫 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뿌듯합니다.
모든 살사인들이 참여하는 축제- K.S.F
그 동안 국내의 살사행사 내 경연대회는 프로급 댄서나 전문 인스트럭터, 또는 그 위치를 꿈꾸는 사람들의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솜씨 뽐내기’ 잔치 일색이다. 살사에 갓 입문해서 열심히 소셜댄스와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 살사인 ‘대중’들에게는 그저 동경에 찬 먼 무대일 뿐이었던 것이다. 살사를 즐기는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뛰어난 실력이 있는 고수이거나 살사를 전업으로 삼지 않으면 그저 꿈의 무대에 불과했다. 이렇게 대중과 점점 괴리돼 가는 살사 축제문화에 새로운 시도를 한 사람이 바로 리오신이다. 그는 말 그대로 ‘소셜 댄스’를 무대에 올려 살사인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기획하는 용단을 내렸다. 2008년 4년, 국내 살사축제 문화에 대중과의 다리를 놓은 새로운 시도가 막을 올렸던 것이다. 국내 소셜살사를 핵심으로 한 축제인 K.S.F(Korea Social Festival:코리아 소셜 페스티발, 다음 까페 주소: http://cafe.daum.net/K.S.F)를 설립하여 봄, 겨울로 대회를 개최한 것.
“K.S.F는 우리 자신들의 잔치입니다. 말 그대로의 축제인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들이 유명 인스트럭터들의 화려한 춤사위에 넋을 뺏겼다면, 해외 프로 살사인들의 경이로운 춤사위에 혼을 뺏겼다면, 그와 다르게 이 축제에서는 우리들의 끼와 정열을 모아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즐기는 것입니다. 해맑은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순수한 눈빛으로 그렇게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하나 되는 자리입니다. 또한 이 축제를 살사와 라틴문화의 아이콘으로 발전시켜,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살사를 비살사인들에게도 소개하고 라틴 문화를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또한 비살사인들과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정착했으면 합니다. “
살사 인스트럭터부터 일반 살사인 뿐 아니라 비살사인들에게도 문을 열어 하나될 수 있는 축제를 연다?! 이는 모든 살사인들의 꿈이지만 현실화 할 수 있는 데에는 실제로 많은 노력과 뒷받침이 없었으면 누구도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홍보하고, 대회 참가자 뿐 아니라 관객을 모집하고, 경제적으로도 타산이 맞는 성공적인 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갖춰져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K.S.F 첫회는 관객 동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재정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리오신과 그를 따르는 행사 조직위원회의 노력과 순수한 열정, 그리고 수많은 살사인들의 의지가 모여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2009년 5월 5일, 서울 팰리스 호텔에서 열릴 K.S.F 2주년 행사(부제: 동호회 대항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K.S.F대회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컴피티션, 콩그레스는 벌써 6~7년을 해서 지금의 위상까지 왔으니까요. K.S.F는 겨우 첫해 치른 셈이고, 올해 2회째입니다. 더 보완하고 준비해서 멋진 대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처 뿐인 영광? 더 멋진 도약을 위한 발판!
살사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다양한 범위에 도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에너지와 도전정신은 지칠 줄 모른다. K.S.F 설립 및 개최, 동호회 배틀 대회 및 이벤트 개최, 해외 살사 공연팀(꼬모 에스따스) 결성 및 운영, 릴레이 해외 살사 투어, 동호회 운영, 바차타 강습, 각종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리오신의 친동생이 강남 라틴 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런 다양한 활약에 비해서 객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다소 미비하다는 평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그의 심경을 물었다.
“하나씩 풀어보자면 K.S.F대회, 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첫 대회 치고는 대회 참가자들이 많았죠, 물론 관객 동원은 실패했지만요. 동호회 배틀 대회는 크리스마스 때 진행했었죠. 주변인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때 행사를 벌이면 망한다면서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렸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예상보다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회 참가자도, 참여 인원도 많았으니까요.
해외 살사 공연팀인 ‘꼬모 에스따스’의 창단 목적은 저의 살사 해외 투어 경험을 통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진행했어요. 해외 투어 시 공연 의뢰는 많았지만 국내에서는 마땅히 한국 살사 사절단으로서 가고자 하는 팀이 없어 항시 애를 먹었고, 각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좋은 공연팀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작년에 상하이에서 멋진 공연을 마치고 현재는 아쉽지만 다음 공연은 유보 중에 있습니다. 해외 살사 공연팀인 ‘꼬모 에스따스’는 올해 다시 준비해서 내년에 재출범할 예정입니다.
작년 봄에 동생이 라틴 손을 인수했는데, 사실 동업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래서 손을 폐업하는 것으로 상호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살사 해외 사절단, 릴레이 해외투어
그의 다양한 활동 중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족적은 바로 연속적인 ‘해외 살사투어’이다. 2007년 상하이 콩그레스 40여명, 2008년 상하이 카니발 60여명, 2009년 3월 오사카 카니발 60여명 등 지인끼리 하면서 시작된 외국 투어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살사 사절단의 형식이 되었다. 강사, 공연팀, 사진촬영팀, 투어회원들의 구성력을 갖춘 팀이 되어 한국 살사를 알리고 모두 하나가 되어 즐거워하는 행사로 점차 발전하게 된 것. 현재까지 9번에 걸친 해외 살사투어가 성황리에 마쳤으며, 앞으로 10번째는 오는 6월 11일부터 14일까지의 ‘한중 북경 살사 카니발(베이징)’이 기다리고 있다.
“해외살사투어는 너무 성황리에 잘 되고 있어서 홍콩, 태국, 필리핀에서도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계속해서 저렴하고 즐거우면서도 한국살사를 알려주는 사절단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국내 살사문화 보급 뿐 아니라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몸짓인 ‘살사’를 매개로 한 해외활동은 그의 무한한 활동 범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살사를 통해 모두가 하나되는 것’이 그의 다양한 활동을 대변하는 지향점인 듯 일맥상통한다.
앞으로의 계획
살사경력에 비해 다양한 범위에 크고 작은 활약을 해온 그는,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완하고 수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년이면 40대 중반에 들어서는데 2007년도 바일라모스팀으로 준우승, 2008년도 꼬모 에스따스팀으로 3등은 했지만 우승해 보지 못한 아쉬움을 풀기 위해 콩그레스에서 우승해 미국에 가서 공연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K.S.F 대회, 배틀대회, 해외살사투어, 바차타공연팀, 그리고 강습 이 모든 것을 잘해 나가는 것이 계획입니다. 3년 후, 5년 후 중장기계획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요.“
바차타 강사가 전업?
리오신의 왕성한 활동 범위를 보면, 모르는 사람은 ‘전업 인스트럭터’로 오해할 만도 하다. 동호회 운영, 강습, 살사대회 개최, 해외 살사행사 참가, 공연팀 운영 등 전업이다 하더라도 보통 사람은 소화할 수 없는 활동 범위를 보면 자연스럽게 본업이 있으면 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두 사람 모두 각기 다른 분야에서 전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는 살사를 하기 전 화장품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했었다. 현재 본업은 화장품 영업. 그의 파트너 모니카는 대학에서 패션뷰티 디자인 학부 전공교수와 학과장을 역임하고 있다.
리오신에게 살사, 그리고 바차타는?
“간단하게 살사는 좋아하고 바차타는 사랑합니다. 살사와 바차타는 이제 제 인생이죠.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접고 제 2의 인생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K.S.F 대회도 만들고 해외살사투어도 만들고 공연단도 만들고 최종목표는 전국민의 살사를 하는 것입니다.(웃음) 바차타를 보급한 서주호님, 에블데이님의 의도가 작업이나 스킨쉽을 하라는 것이 아니었듯이, 이제 바차타는 많은 사람들이 강습을 하고 즐기고 있는 엄연한 춤의 장르입니다. 사람들이 바차타를 작업이나 스킨쉽의 도구로 격하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꿈꾸듯 사랑하는 사람과 해변가에서 감미로운 바차타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싶지 않습니까?”
‘살사’와 ‘바차타’를 인생으로 삼고 전국민의 살사화를 꿈 꾼다는 리오신. 가끔은 다소 무모하고 위태해 보일 정도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바차타의 확산, 소셜대회 설립, 해외 살사투어 등 살사계에 미치는 그의 역량은 이제 어떤 살사팀이나 인스트럭터보다도 대중들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가 지대해 보인다. ‘리오신 군단’을 형성할 정도로 살사인들과 호흡하고 대중화에 힘쓰는 리오신,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새로운 시도와 다음 행보에도 자연히 기대를 걸게 된다.
<리오신 프로필>
- 2006년 강남 LP살사동호회 시삽 역임
- 현) 아이러브바차타(ilovebachata) 까페지기
- 아이러브바차타(ilovebachata) LEVEL 1·2·3, 클리닉, 공연반 강습지도
- 현) Korea Social Festival 조직위원장
- 다수 동호회 바차타 특강, 워크샵 및 강습
- 바차타 공연팀 국내공연지도
- 2008. 11. 상하이 한중카니발 워크샵
- 2008. 12. 일본 오사카 워크샵
- 2007. 11. 홍대 살라클파티 공연
- 2007. 12. 부산 라티노 X-MAS 파티 워크샵
첫댓글 안녕하세요~라플 선영이에요~목요일 저희 정모때 바차타 인스트럭터 리오신님의 오픈특강이 있으니 많이 오셔서 바차타에 빠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