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안재기 장로님의 장례식장에서 김창영 장로님을 만났다. 검은 정장에 같은 색깔의 넥타이, 흰 와이셔츠에 슬픈 얼굴, 애도의 뜻이 마음에도 외양(外樣)에도 묻어 있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는 만났다. 발인 예배를 드리고 장지를 향하면서 김 장로님이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경북서지방 장로회 순회예배를 덕천교회에서 드리려 한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이어서 긴 얘기는 나누지 못하고 따로 전화를 드리겠다는 말을 듣고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그 열흘 쯤 뒤, 지난 6월 4일 김창영 장로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 장로님은 우리 지방회 장로회 회장을 맡고 있다. 6월 12일 수요 밤 예배 때 우리 교회를 방문해서 순회예배를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주일 남짓의 기간의 주어져 있는 셈이다. 작은 농촌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로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장로님들의 방문은 귀한 발걸음이 된다. 10 여 명의 임원들이 참석한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손님 맞을 차비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것이 귀한 손님들이 와서 순회 예배를 드린다는데 우리 교회 성도들의 예배 참석률이 저조하면 이건 정말 예의가 아니다. 지금은 농번기이기 때문에 수요 밤 예배 참석률이 극히 낮은 때이다. 특히 우리 교회는 수요 낮 예배가 있기 때문에 밤 예배 참석자들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손님의 숫자보다 많아야 체면이 서지 않겠는가. 나는 지난 주일 광고 때 장로회 순회예배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고 빠짐없이 참석해 달라고 강조해서 광고했다.
그리고 어제(6월 12일)가 그 날이었다. 처음 맞는 장로회 순회예배이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먼저 아침에 성도들에게 휴대폰 문자를 날렸다. 바쁘겠지만 꼭 참석해서 순회예배를 함께 드림으로써 교회가 갱신되는 기회로 삼자고 했다. 교회 청소를 하고 쑥떡버무리를 맞추고 또 시내 마트에 가서 음료수를 준비했다. 정오가 가까워질 때 회장 김창영 장로님이 우리 동네 할매참옻닭집에서 목사님 사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니 꼭 오라는 전화가 왔다.
작은 농촌 교회를 생각해 주는 장로님들의 마음이 고맙게 전달되어 왔다. 오후에 순서지를 만들고 5시부터 성도들 수송에 나섰다. 비교적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성도들부터 태워 와야 했다. 평화동에 사는 백남천 성도와 부곡동에 사는 김영자 성도를 먼저 태워왔다. 김영자 성도의 남편 강춘식 씨는 술에 취해 도저히 교회 못 가겠다고 일면 으름장 그리고 다른 한 편 읍소를 해왔다. 전순남 할머니 집사님도 차로 모셔야 했고, 특히 피아노 반주를 위해 윤경이를 학교에서 급히 데리고 와야 했다.
이렇게 발이 닳도록 뛰다보니 벌써 오후 7시 저녁 식사 약속 시간이 되어 있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이었다. 반찬이 많아서가 아니다. 입맛에 맞는 찬과 특히 옻 오리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사람들의 구미를 돋운다. 함께 한 장로님들도 모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성도들과 예배 준비 마무리를 하느라 교회에 남고 대신 백남천 성도와 함께 간 식당인데 웬일인지 우리 집 안방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참옻닭집의 친근성과 만나는 장로님들이 모두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싶다.
나와 백남천 성도는 장로님들보다 한 발짝 일찍 식당을 나왔다. 교회에 오니 수요 밤 예배 분위가 모처럼 생동감이 돌았다. 이명자 집사님과 강전윤 권찰 등은 일찍 나와 음식 정리, 청소 등 순회예배 행사 준비를 도왔고, 다른 성도들도 손님 맞을 생각에 조금은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오후 7시 50분, 예배를 위해 기도한 뒤 강대상에 올라 찬송가를 함께 불렀다. 예배에서 준비 찬송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 분위지 조성을 위해 예배 전 몇 곡의 찬송가 제창은 필요하다. 그리고 다 같이 오늘 장로회 순회예배를 위해 기도했다.
순회예배의 사회는 장로회 회장이신 김창영 장로님이 맡았다. 다 같이 찬송가 364장(새 338장)을 부르고, 장로회 부회장이신 이태옥 장로님이 기도를 했다. 덕천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장로회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성경봉독은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서기 대신에 총무로 섬기고 있는 이부배 장로님이 읽어 내려갔다. 여호수아 14장 6절-15절이 봉독할 성경 말씀이었다. 그런 뒤 장로회 임원 전원이 나와 특송을 했다. 농촌 교회의 예배 모드(mode)는 노년 취향이기 십상이다. 노인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찬송가도 성경 봉독도 심지어 설교까지 그런 흐름에 편승하기 쉽다.
사진설명-장로회 순회예배에 참석한 임원들이 '여기에 모인 우리'라는 CCM을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왼쪽으로부터 서정태(북부교회), 양봉룡(행복한교회), 김영태(은혜교회), 김창영(회장, 모암교회), 김상규(다수교회), 조명철(남산교회), 이태옥(부회장, 남산교회), 임무만(서부교회), 박세일(남산교회), 이부배(총무, 서부교회) 등 여러 장로님들이 특송에 참여해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장로님들도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챈 것 같다. 노년 모드인 앞에 부른 찬송가 664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CCM '여기에 모인 우리'를 구성지게 불렀기 때문이다. 높낮이를 구분하고 장단에 맞춰 부르는 장로님들의 특송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도 넘쳐 포도나무 가지를 경유해 마을에까지 울려 퍼졌다. 분위기가 젊게 돌변하는 것 같았다. 특송이 끝난 뒤 시작된 나의 말씀 선포도 그 분위기에 고조되어 높고 빠른 기류를 형성했다. 나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은 사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잘 알다시피 여호수아 14장 6절-15절 말씀은 여호수아와 갈렙 이야기이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받는 과정에서 정복의 1등 공신 갈렙이 쓸모없는 산지를 요구함으로써 다른 지파도 욕심 부리지 않고 땅 분배를 원활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갈렙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약속을 세상 욕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믿음의 결과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 모세가 12지파 두령들을 뽑아 가나안 정탐을 시켰을 때 10명은 가나안 정복 불가(不可)를 주장했지만 오직 2명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정복할 수 있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있었다는 것이 뒤에 증명되었다.
사진설명-여호수아 14장 6절-15절을 본문으로 '여호와를 온전히 좇은 자'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 이명재 목사
믿음생활에서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12명 중 2명은 백분율로 따지면 17%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을 제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다수가 지배하고 강한 자 높은 자, 주류(主流)가 지배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예로 나는 김은국의 소설 '순교자'에 나오는 한 대목을 들었다. 6.25 전쟁 때 평양에서 14명의 목회자가 인민군들에게 잡혀 갔는데, 그 중 12명은 총살당하고 두 명만 살아 돌아왔다. 죽은 12명은 순교자로, 돌아온 2명은 배교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을 받는데, 실제 내용인즉 다수인 12명은 배교를 해 비겁한 목회자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2명은 끝까지 하나님을 살아계심을 주장한다. 인민군들은 그 지조를 높이 사 살려준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소설 속나오는 한 장면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믿음은 여기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비록 소수였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갈렙처럼 말씀 위에 굳게 설 것을 나는 권면했다.
예배를 마무리하면서 회장 김창영 장로님은 두 개의 사자성어로 우리의 다짐을 유도했다. 적진태산(積塵泰山)과 수적천석(水滴穿石)이 그것이다. 전자는 우리 속담에 '띠클 모아 태산'이라는 뜻과 같고 후자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 장로님은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오래 가르쳤고 김천 석천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분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우리 생활에 접목시켜 교훈으로 귀결시킬 수 있는 힘이 바로 그의 이런 이력에 기인할 것이다. 교직 은퇴 후 더 바쁜 시간을 보내는 있는 김 장로님은 인생을 옹골차게 보내고 있는 모델이 될 것이다. 그 바쁜 시간 안에 교회의 일과 독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부럽게 다가온다.
순서지에는 사회가 광고를 하게 되어 있었지만 김 장로님은 내게 바통을 넘겼다. 나는 순서지에 올려져 있는 대로 함께 하신 장로님 성도님들께 감사했으며, 우리 교회의 몇 가지 기도 제목을 올리고 기도를 부탁했다. 지은 지 20년이 된 조립식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게 해 달라는 것, 주일학교와 학생회의 활성화를 위해 몇 가지 악기와 탁구대를 설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작은 농촌 목회자 자녀로서 가질 것 갖지 못하고 즐길 것 즐기지 못한 가운데 공부하고 있는 나의 자녀들(대학생 2명, 고등학생 1명) 학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광고했다.
사진설명-순회예배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예배당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축도로 전체 예배를 마친 우리는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맛있는 다과를 들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성도들이 직접 뜯은 쑥으로 쑥떡버무리를 만들고 과일을 깎아 올리고 음료수를 나누는 등 서로에게 음식을 권하며 사랑의 마음까지 얹어 나눴다. 작은 농촌 교회를 찾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어제 우리 지방회 장로회에서 임원들이 순회예배를 드리고 목회자에게 저녁 식사를 공궤했으며 또 참석한 장로회 임원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거둬 농촌교회에 정성껏 헌금을 전달하는 것은 오늘날의 신앙이 살아있다는 좋은 보기가 된다. 사회가 각박하고 희망이 보이지 안는다고들 하지만 주위의 작고 약한 것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활동하시는 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의 끈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쁘고 유익한 어제 장로회 순회예배였다.
첫댓글 목사님과 합력할 든든한 장로님이
덕천교회도 계셨으면 합니다
기도할께요~~
기도해 주세요. 그럴 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세미한 음성까지 들으시고 응답 주시는 하나님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