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인물화가 최경(崔涇)에 관한 오류 정정 요청
1. 최경을 소개(한국학중앙연구원자료)
최경(崔涇)의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사청(思淸)·여청(汝淸), 호는 근재(謹齋)
최경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소 채찍으로 땅을 그어 인물과 여마(驢馬)의 형상을 그렸는데, 매우 생기가 있어 촌부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 아이는 그림으로 출세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도화원 생도가 되어서도 화업(畵業)에 정진하여 도화원의 최고직인 별제까지 올랐다.
성종 때 소헌왕후[세종의 비], 세조, 예종, 덕종[세조의 세자]의 어용(御容)을 성공적으로 그려 여러 차례 당상관(堂上官)에 제수되기도 하였으나 출신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쳐 취소되었다. 도화서의 동료인 안귀생(安貴生), 배련(裵連)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최경은 어용, 불상, 인물 등 주로 인물화에 뛰어나 당대에 ‘산수화엔 안견(安堅), 인물화엔 최경’으로 일컬어졌다. 말년에는 산수와 고목을 즐겨 그려 심묘한 경지에 들어갔으나 안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받았다. 마원(馬遠)의 산수인물화를 공부하였고, 남송 유송년(劉松年)과 북송 이공린(李公麟)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연구하여 그 진수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2. 기록 오류 정정 요청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는 최경이 안산의 미천한 염부의 아들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일부 인터넷자료에서는 수성최씨 최경과 혼돈하여 탐진최씨 최경을 수성최씨 안산 입향조로 둔갑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최경은 탐진최씨 시조 최사전과 중시조 최총의 후손으로 고조부 최표는 목은 이색의 제자로 고려조 문과급제, 안동부사, 참지정사를 지냈으며 조선개국과 더불어 불사이군하여 재야에 뭍힌 분이다(전남 강진 강덕사에 배향되어 있으며 매년 강진향교에서 제를 드림), 증조부 최귀령은 문과급제, 담양부사를 지내셨으며, 조부 최자완은 생원이셨다. 부친 최옥지는 진사셨으며, 큰아들 최흡은 생원으로 기자전 참봉을 지내셨고, 둘째아들 최준은 생원으로 형조좌랑을 지내셨고, 셋째 아들이 최경이시다 최경의 부친과 두 형님들의 묘소는 전남 보성군에 고이 모셔져 있다. 단, 최경의 묘소는 분실된 상태이다. 결국 최경이 안산의 미천한 염부의 아들 출신이라는 기록은 당시 최경이 스스로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말하였거나, 최경을 시기한 사람들이 폄하하기 위해 작성한 기록일듯 하다.
이상의 사실에 기초하여 최경에 관한 오류를 사실인양 기록하고 있는 기관, 단체, 개인들이 모두 확인작업을 거쳐 사실대로 정정해주길 바란다(연락처: 순천팔마중학교 최대욱)
첫댓글 훌륭한분이시군요
기록이 잘못전해졌다하니
맘아프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