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1494∼1553)의 장편소설로 <제1 가르강튀아>(1534), <제2 팡타그뤼엘>(1532), <제3 팡타그뤼엘>(1546), <제4 팡타그뤼엘>(1552), <제5 팡타그뤼엘>(1564)의 전(全) 5권으로 된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최대 걸작이다. 사후에 출판된 최종권은 위작이라는 의심이 있다.
처음의 두 권은 거인국의 왕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부자 2대의 유년시대·편력수업·경이적 무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수도원 원장과 인텔리 변덕쟁이인 파뉴르주 등의 매력있는 측근을 안배해 두고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는 우스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자기의 존엄과 자유에 눈뜬 르네상스인의 환희와 몽상, 구태의연한 정치, 사회, 사상의 왜곡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종횡무진하게 짜여져 당시의 시대를 적절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또한 이 작품은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더불어 서양 ‘풍자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작품인데, 불문학 전공자들로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1979년에 을유문화사 판[민희식 옮김]으로 출간된 후 절판되었고, 최근에 다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프랑스 ‘르네상스 정신의 위대한 구현자’라는 수식어구가 있는 라블레 작품의 국내 번역이 전무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16세기 불어로 씌어져 원문이 워낙 난해한 데다, 작가가 의사 출신이어서 갖가지 의학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라블레에게는, 신에게서 독립한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의학과 문학이 같은 도정에 있었다)하여 번역 상의 어려움 때문이다.
둘째, 법률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에 걸친 방대한 지식을 풍자와 해학의 문체로 담아낸 라블레의 작품 독해가 난해한 까닭이다.
셋째, 사실 우스꽝스러움과 진지함, 인간의 본능적인 면 이를테면 성교, 출산 배설 등에 대한 노골적 묘사와 르네상스의 이상과 지적 추구 등의 상반된 양상이 공존하는 현상을 한국식으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거인국 왕의 왕자로 출생하게 된 가르강튀아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목말라, 목말라" 하고 울었다. 그는 자라나면서 가정교사에게 배웠다. 그러나 학문밖에 모르는 선생이었기 때문에 인간 수업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고 오히려 가르강튀아는 어릿어릿한 바보로 퇴보했다. 때문에 왕인 아버지는 화를 내어, 이번에는 포노클라트 씨를 선생님으로 초빙했다. 선생은 가르강튀아를 파리로 데리고 가서 나무랄 데 없는 교육을 실시했다.
가르강튀아가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동안에 그의 나라는 이웃 나라인 피크로콜의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르강튀아는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갔다. 피크로콜의 포병들은 대포를 쏘아 댔지만, 거인인 가르강튀아에게는 그것이 쇠파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승리를 차지한 가르강튀아는 자기 옆에서 용감히 싸워준 장 수도사(베네딕투스회 수사)를 위해 텔렘 수도원을 지어 주었다. 그 수도원의 규칙은 단 한 마디, "네 멋대로 하라"는 것뿐이었다.
가르강튀아는 484세가 되었을 때 아들을 얻게 되어, 그 이름을 팡타그뤼엘이라고 지었다. 그 아이의 식성이란 정말 놀랄 만한 것이어서, 갓난아이지만 4천6백 마리 분의 우유를 마셔 치우는가 하면, 암소 한 마리를 거뜬히 먹어 없애기도 했다. 그러나 머리도 또한 영리하기 짝이 없었다.
파리에 유학차 오게 된 팡타그뤼엘은 거기서 파뉘르주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 사이, 이웃나라인 디프소드 사람들이 유토피아 땅에 침입해 오자, 팡타그뤼엘은 파뉘르주와 함께 그들을 정복하러 나갔다. 그리고 3백 명의 거인을 모조리 무찔러 버리고 말았다. 침략자들이 없어지자, 이번에는 파뉘르주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팡타그뤼엘은 여러 사람에게 좋은 신붓감을 마련해 주도록 물색해 놓았으나, 좀처럼 어떤 여자가 좋은 신붓감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팡타그뤼엘은 광명신(光明神)의 계시를 받기 위하여 파뉘르주와 함께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다. 여행 도중 파뉘르주가 염소를 매매하는 장사꾼 단드노와 말다툼을 할 때는 한 마리 염소를 바다로 집어 던지자, 남은 염소 전부가 그 뒤를 따라 바다에 뛰어든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은 뒤에 드디어 광명신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신에게서 받은 계시는 "마시라"는 한 마디 말뿐이었다. 파뉘르주는 그것을 "술을 마시라"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사실은 "지식의 온갖 샘물을 마시라"는 뜻이었다.
이설이 분분하겠지만, 소설 문학의 아버지를 들라면 주저 없이 라블레를 꼽아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몇몇 “소설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는 수사학적 에너지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재치, 언어유희, 유머 등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주춧돌을 놓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블레는 지나칠 정도로 감각적이고, 때로는 외설스럽고 음탕하기까지 한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훗날 『돈키호테』에서 『율리시즈』에 이르는 희극의 시작을 알렸다. 아마도 라블레의 가장 위대한 점은 분수를 모르고 흥청대는 천박한 물질주의를 가장 인간적인 재치로 비유했던 그의 자유로운 정신일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거인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이다.
제1권에서는 어린 시절 팡타그뤼엘과 그의 익살꾼 친구 파뉴르지가 겪는 황당무계한 사건들이 그려진다.
제2권에서는 가르강튀아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구시대적인 교육 방식과 케케묵은 학풍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점이 눈에 띈다.
제3권 역시 팡타그뤼엘의 영웅적인 무훈과 말을 빌려 학문 위주의 교육에 회의를 표한다.
제4권에서 팡타그뤼엘과 파뉴르지는 성스러운 병(甁)의 신탁을 얻기 위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이들의 여정을 통해 지나치게 종교 중심적인 사회를 풍자한다.
제5권에서 그들은 마침내 성스러운 병을 모신 신전을 찾게 되고, “마셔라!”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다소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구성으로 피카레스크 소설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서술 자체의 발랄함은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다.
이 작품에서는 거인왕의 행적에 관한 서술(narration)보다 화자의 사설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라블레 특유의 글쓰기 방식이 나타난다. 주인공의 출생, 성장, 교육, 전쟁에서 무훈 등의 순서대로 기사도 소설의 틀에 맞게 사건이 전개되지만, 이야기는 기본 줄거리와 상관없이 독자를 상대로 화자가 엮어나가는 ‘대화’와 ‘여담’을 통해 계속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되어나간다. 라블레 소설에 자주 나오는 장터의 장사치나 다름없는 이야기꾼의 거친 입담이나 욕설, 철학적 주제에 대한 현학적 문답, 시나 편지, 웅변 등의 다양한 문체와 횡설수설 같은 말의 유희, 여러 인물들이 들려주는 별개의 일화나 빈번한 고전의 인용과 궤변적 해석 등은 이야기 중심의 대중소설과는 달리 지적 담론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전설적인 두 거인왕의 출생에서 영웅적 활약상으로 이어지는 연대기 형식의 작품이다. 당시 프랑스의 지적 풍토·종교·정치·사회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고, 프랑스 르네상스의 이상과 염원을 형상화한 걸작이다. 주인공인 거인들은 단지 신체적 크기, 힘, 식욕에서뿐 아니라 그들의 지적 능력, 정신적 깊이에서도 초인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그들의 학문적 성취는 바로 인문주의의 이상을 실현한 것이며, 그들의 지적 탐구와 삶의 지혜를 얻으려는 노력은 현세적 삶 속에서 행복과 진실을 추구하려는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라블레는 그가 처해 있던 시대 상황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새로운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현대의 작가 못지않게 다양한 시도를 펼쳐 보였다. 이는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새로운 글쓰기라는 현대 문학의 본질적 문제를 시대를 앞서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