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처럼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가 있으랴?
군대에서 제대말년에 -D달력을 가동하듯이 학교에서 방뺄날을 하나씩 하나씩 체크해
나가다 드디어 2013년 5월 16일부로 모든 짐을 다 싸들고
교직에서 물러났다.
물론 공식적인 은퇴는 8월 31일까지니까 아직 3개월여의 기간이
남아있지만, 특별휴가와 수안보로 2주간의 퇴직예정자 연수를 떠나니
실질적으로는 백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학교에서 졸업앨범 촬영을 하기에 기념으로 마지막 사진을 찍어 두었다.
아직은 좀 더 일해도 할 수 있을것 같기는 하지만,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말로는 내가 곧 떠나니 후임자가 사용해도 되다고 말하긴 했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후임자가 내 자리에 드리닥치니
금방 내가 설곳이 없어졌다.
각오는 이미 다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할 말이 없다.
은퇴를 앞두고 내 개인적인 변화가 너무도 급격히 많았다.
지난 4월에는 우리 손녀가 돌 잔치를 하게되었다.
내 생각은 그냥 저희들 집에서 사람들을 초대하여 밥이나 한번 먹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딸과 사위는 그게 아니다.
팔레스 호텔로 그럴싸하게 파티를 마련했다.
돈은 들었지만, 제법 그럴싸하다.
예쁜 우리 손녀의 모습이다.
또한 4월은 매우 바쁘다.
젊었을 때 전주여고 재직했었는데...
그때 제자들이 홈커밍데이 잔치를 마련했다.
역시 크고 좋은 학교에서 근무했던것이
졸업 후 30년이 지난 후에도 폼나게 잔치를 한다.
그들이 모두 훌륭하게 성장했고 나도 기분이 좋다.
전주여고 졸업 후 30년이 지났으니 그들도 50살로 접어들었다.
사회의 중견들이다.
경동고등학교로 마지막 출근하던 날
카메라를 들고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학교로 출근하는 도중 성북구청 주변의 모습이다.
성북천 주변에 도로변에 보리, 상추, 고추.....등 을 심어서 시민들에게
정서적으로 도회지에서도 시골스런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지자체가 정착해 가는 모습을 느낀다.
얼마나 자상하고 다양한 행사들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몇년동안
성북구청주변으로 출근을 하다보니 느낌이 온다.
올해도 다시 시작한 주말 농장의 모습이다.
5평 10만원짜리다.
비료, 씨앗, 모종 등 등 벌써 한 5만원추가로 들었다.
경제적으로는 비능율적임을 금새 느껴지지만,
흙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는 재미가 싫지가 않다.
상추, 쑥갓, 부추, 열무, 얼가리배추...
자주 가 보지 못하니 저희들 맘대로 여기 저기 자라고 있다.
오늘 비가 온 후에 다시 가서 제대로 옮겨 심어
모양을 갖추어야겠다.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시장해 보이나
어제 다시 가보니 제법 잘 자라고 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비가 오고 퇴비를 주고 햇볕이 비치니
밭의 작물이 아주 잘 자란다.
남태령의 내 주말 농장의 모습
지난 5.4(토)은 우리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신사역 주변의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그냥 그럭 저럭 모양을 갖추며 결혼식을 마쳤다.
어린이 날 등 연휴가 끼고 또 당사자들의 이런 저런 일로
제대로 청첩도 다 하지 않았는데도
하객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모여
제법 그럴싸하게 행사를 마칠 수 가 있었다.
더욱이 이번 혼인식은 당사자들의 뜻에 따라 주례가 없이
저희들 둘이서 신랑의 아버지인 내가 성혼 선언을 하고
우리 사돈이 덕담을 하고
새신랑인 우리 아들은 신랑입장후에
바로 " 결혼해 주세요"(가수 이승기)라는 곡을 반주에 맞춰서
노래르 부르면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 아들도 수 많은 하객들 앞이라서인지
떨면서 시작했지만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멋지게 마무리 한다.
나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걱정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후에
아주 색다른 결혼식이고 그럴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
기분이 좋다.
어제는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그리이스, 프랑스 등으로 다녀왔는데
지난 주에는 처가에 들리고 2주가 지난 석가 생일날에야
우리 집에 왔다.
결혼을 해도 옛날과 달리 저희들 위주로 살아가니
서운함도 있지만,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시집온 후 며느리가 처음으로 집에 들리니
마누라의 뜻대로 노량진에 수산센타에 가서 횟감을 떠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아버지인 내가
이렇게 하는것이 맞는 처사인가 아닌가 나도 잘 모르겠다.
노량진으로 가면서 중앙차로 변에 심어진 가로수를 배경으로
스마트 폰으로 찍어보았다.
나무도 예쁘지만 하늘이 무척 파랗다.
내 가슴도 저렇게 파랗게 펼치며 살고 싶다.
마지막 학교로 출근하는 길에 성북천 주변의 산책로
파란 색이 시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저 산책로를 많이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다시 걸을 날이 없겠지...
성북천 주변의 인공 농장.
성북구청의 연례 행사.
경동고등학교의 진입로.
경동고의 복합관
160억짜리 건물이다.
차령산맥 아래쪽에서만 자란다는 대나무를 저렇게 옮겨 심었다.
지구의 온난화라는 말이 실감난다.
정말 잘 자랄지 지켜보았으면 좋으련만...
교직에 들어온지 정확히 40년 7개월이다.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기쁘기도 하고 가슴아픈 일도 많고 온갖 감회가 섞어진 시간이었다.
이제 대 단원의 막을 닫아야 할 시간이 된것이다.
그리고 이제 야인으로 백수로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인생 길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것은 아들, 딸을 모두 잘 키워서 제대로 된 짝을 맞춰서
내보내게 된 것이다.
언제 그런 일들을 다 마칠 수가 있을까?
걱정 걱정 했던일인데 어찌 어찌하다보니
모든 일들을 다 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홀가분하게 떠나고 있는 것이다.
경동고의 정보관과 복합관 사이의 하늘
하늘은 늘 푸르고 깨끗하다.
나도 이제 마음속의 응어리며 아쉬움과 서운함 이런 저런 것들을 모두 비우고
저렇게 푸르고 깨끗하게 살면서 인생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 출근날
교실에서의 내 모습
빔프로젝트, usb, 파워포인트, x-pointer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은퇴했어야 했을 것이다.
교직 말년에 10년여는 이런 도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정말 고마운 문명의 이기라는 생각이 든다.
경동의 야구부
최근 한번도 경기에서 이겨봤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전설로는 전국 대회 우승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지만...
지금은 전혀 아닌가 보다.
경동고 교정에서 제일 키가 큰 포풀라 나무.
태풍에 대비하여 몇일전에 다 가지친 나무의 모습이다.
경동고의 후정
떠나기 전에 경동의 구석 구석 다 돌아다녀본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복합관 주변의 시설물.
제법 멋을 부린 흔적이 나타난다.
경동고에서 제일 멋진 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앉아서 쉴만한 공간이 여기 저기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5.20(월)부터 5.31까지 수안보 상록호텔에 머물면서 교직에서 마지막 연수 활동만이 남아 있다.
아침 저녁으로 원없이 온천욕을 즐기면서 테니스 치면서 각계 각층의 퇴직 예정공무원들과의 만남 만이 남아있다.
그들은 또 어떻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그들의 계획은 무엇인지...
서로 참고가 될만한 이야기들을 들어둘 차례이다.
그리고 백수의 맹세를 나름대로 정리 해 본다.
1. 술은 먹되 절대 낮술은 안된다.
1. 마누라하고 싸우지 않는다. 마누라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1. 아침식사외에는 가급적 밖에서 해결하여 일식이님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1. 다른 사람과 만날 때는 먼저 밥값을 계산하는 모범을 보인다.
1. 다른 사람의 장점만 말하고, 단점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1.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종교나 정치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다.
1. 내 앞에 큰 감을 놓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