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_신인추천완료작
│신인 추천완료작___시부문│
장병환, 「도둑 맞은 시계」 외 2편
―─심사위원 / 최규창·이충이
■추천완료 심사평
사유와 서사의 요소 돋보여
장병환의 「도둑 맞은 시계」 외 2편을 추천완료작으로 선정했다. 응모한 18편의 작품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긴장미와 절제미가 돋보였다. 그의 시는 상투적이고 낡은 서정성이나 관념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것은 남과 다르게 쓰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이다. 「비열한 거리를 걷다」나 「여자에 대한 보고서」 역시 그렇다. 사유와 서사의 요소를 적절하게 전개해 가며 시어의 선택이나 환치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도둑 맞은 시계」 외 2편을 추천완료작으로 결정한 것은 그의 시가 서정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시적 구체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력은 디테일한 묘사로도 가능하다. 「도둑 맞은 시계」에서 “구두주걱을 걸어놓고 눈을 현관에 숨겨두고 나왔다”는 풍자적 유연성이고, “말랑한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현관에/ 숨겨둔 눈이 보이지 않았다”, “시계가 걸렸던 자리에 눈가 주름이 걸려 있었다”는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의 어법이다.
장병환은 남과는 다른 열정과 새로운 환상으로 삶과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고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현실적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시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겸허하게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날카로운 자기투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 및 초월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방법으로 정진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최규창·이충이>
추천완료 당선소감
시詩, 그녀의 매력에 빠지다
내가 잠시 그녀를 보았던 건 문학을 꿈꾸던 중학생 나이였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교 시절이었기에 대학 입학 후 당당한 모습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다른 언어와 문화를 접하는 동안 그녀를 잊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 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지난 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더욱 아름다운 매력을 뽐내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토론토대학교 튀리니티에 재학 중인 큰딸 혜진이가 “전 아빠처럼 긍정적인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말을 떠올리며 「긍정에 대한 보고서」란 시를 썼는데, ‘긍정’을 ‘여자’로 바꿔보니 전혀 다른 시가 되어버렸다. 시어 하나가 이렇게까지 다른 의미로 전해질 수 있음에 나는 새삼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질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을 그녀와 함께 하리라 생각해 본다.
부족함이 넘치는 저에게 시인이란 이름을 주신 『시와산문』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녀를 더욱 사랑하라는 뜻으로 알고 겸허한 자세로 그녀의 세계에 임하겠습니다. 많은 선배님들의 조언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장병환 /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캐나다로 이민, 토론토 Laurier 고등학교와 McMaster 대학교를 졸업했다. 1996년 역이민해 2000년 GnB영어전문교육(주) 창업 멤버로 활동했으며 현재 지앤비 어학원 본부장 및 CMIS 캐나다 국제학교 이사장으로 있다.
추천완료 당선작
도둑 맞은 시계 외 2편
장병환
도로에 넘어진 안개를 비집고 햇살이 고개를 틀면
눈 비비며 밤새 숨어있던 뉴스를 듣는다
아파트 관리실 방송에 볼륨을 낮게 앉히고
귀를 열었다 그저께 101동에 도둑이 들었고
어제는 102동에 도둑이 들어 똑같이
벽에 걸린 시계를 훔쳐갔으니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눈이 벽에 걸린 시계로 옮겨갔고
대학입시 때 도둑 맞은 시계가 떠올랐다
구두주걱을 걸고 눈을 현관에 숨겨두고 나왔다
서류에 눌려 가쁜 숨을 쉬다 해가 머리를 묶을
저녁 무렵, 사무실에 쌓인 책상을 휴지통에 던졌다
군밤 한 알 입 속에 넣으며 졸고 있는
어깨를 업고 거리에 누운 가로등 불빛을 밟았다
말랑한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현관에
숨겨둔 눈이 보이지 않았다 졸고 있던 어깨가
들썩거렸다 틈을 비집고 어느 새 다녀갔을까
시계가 걸렸던 자리에 눈가 주름이 걸려있었다
비열한 거리를 걷다
거리 한편에 휘어진 그림자가 납작 엎드렸다
수십 마리 참새, 작고 앙상한 군집群集은
노을 몇 점을 서쪽 하늘에 게워냈다
가위에 눌린 꿈은 이마 깊이
주름살을 모아 빌딩 안으로 숨었다
분주하던 거리가 어느 새 숨을 죽였다
옷을 갈아입은 벽화壁畵를 애써 외면하며
그림 속에서 참새 한 마리
어떤 별을 쪼아먹었는지 궁리窮理에 들어갔다
부평도서관 벽화에 담긴 별이 없어졌다
몇 개의 햇살 뒤로 몸을 숨겼다
그 때 참새가 뱉어 낸 별똥별이 뿌려지자
빌딩 위로 은하수가 흐르기 시작했고
부리에 쪼인 은하수는 굽은 길을 지나서
저 아득한 인천대교를 건너갔다
참새 떼가 빌딩 옥상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비열한 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겨울
끄트머리에서 서둘러 산수유를 초대하고
나는 빌딩 사이 공원산책로를 지나가고 있다
여자에 대한 보고서
나를 여태까지 키운 것은 여자였다 아침으로 먹고
점심으로 먹고 저녁으로 먹고 간식까지 먹는다
내 몸에 항상 음식과 함께 여자가 소화 중이다
어쩌다 굶으면 허기가 지고 제일 먼저 먹고 싶다
쌀밥 위에 얹혀진 여자는 풋풋한 봄 냄새가 진동한다
여자를 끊임없이 요리해 먹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때로 볶음밥에 넣어 먹는다 스파게티에 뿌려먹는다
비빔밥에 비벼먹는다 김치찌개에 넣어 먹는다
미역국에 풀어 먹는다 빈대떡과 함께 부쳐 먹는다
여자를 넣어 요리할 수 있는 건 다 만들어 먹는다
때와 장소에 따라 가끔은 눕거나 서서 먹는다 그 때는
급체하지 않기 위해 꼭꼭 씹어먹는다 위를 지나서
구곡간장九曲肝腸을 지나고 항문으로 가는 길이다
여자는 분해되어 나를 살찌게 하고 튼튼하게 키운다
여자의 씨를 받아 마음 밭에 잘 뿌리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실수로 오른쪽에 뿌리면
새들이 와서 쪼아먹는다 왼쪽에 뿌리면
토양이 부족해 싹만 틔우고 죽는다 아래쪽에 뿌리면
착한 마음이나 선한 행동 같은 비료가 없어 죽는다
나는 오늘도 심혈을 기우려 씨를 뿌리고
여자를 요리해 먹으며 빛나는 하루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