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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ienza 2007. 11. 7
미국과 유엔 본부에 대한 사도적 방문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과의 만남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연설
뉴욕, 2008년 4월 18일 금요일
의장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총회에서 저의 연설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제게 환대의 말씀을 주신 의장님께 심심한 감사를 표시하고 싶습니다. 또한 같은 감사를 유엔 본부를 방문하도록 초대하셨으며 저를 환대해주신 반기문 사무총장께도 드립니다. 각국의 대사님들과 외교관님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이 기구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들의 행동을 조화하는 중심” (참조, 유엔 헌장 1.2-1.4항)이라는 창설 정신을 지속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95년에 말씀하셨듯이, 이 기구는 “국가들이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발전시키면서 집처럼 느끼는 ‘국가들의 가정’으로, 윤리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설 50주년 기념 유엔 총회의 메시지, 뉴욕, 1995년 10월 5일).
유엔을 통해서 국가들은 비록 인류 가족의 전체 공동선에 부합되지 않는다해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선익의 근본적인 부분을 대변하는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냅니다. 이 기구의 근본 원리들, 즉 평화의 염원, 정의의 추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경, 인간애적 협조와 도움은 인간 정신의 올바른 갈망이며 국제 관계 저변에 위치할 이상을 만들어냅니다.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저의 선임자들께선 이런 근본적인 생각에서 출발하여, 가톨릭 교회와 성좌가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의 활동에서 공동 규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세계 공동체 안의 문제와 갈등을 다루셨습니다. 유엔은 “국제적 지향점의 윗 단계”에 대한 염원을 실현하며 (요한 바오로 2세, 사회적 관심: Sollicitudo rei socialis, 43항), 보조성의 원리에서 영감을 받고 다스려지며, 동시에 국제적인 관계들의 규칙과 민족들의 삶의 일상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구조를 통하여 인류 가족의 요구에 응답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의 문제들이 국제 공동체의 공동 행동의 형식을 요구하는 가운데서도, 소수 국가의 결정에 종속되는 이유에서 생겨난 위기가 계속되는, 다원적인 동의의 분명한 독설적인 모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안전의 문제, 발전의 목적, 지역적이고 전체적인 불평등의 감소, 환경 보존, 자원과 기후의 보호 등의 주제는 모든 국제 공동체의 책임자들이 함께 실천하고 선의를 가지고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법을 존중하고, 지구 상에서 가장 약한 지역에 대해 연대성를 증진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지구화의 부정적인 결과만을 체험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국가들과 세계 다른 지역의 나라들 가운데 통합적이고 진정한 발전에 소외되어 있는 국가들을 생각합니다. 국제 관계의 반경 안에서, 공동선을 증진시키며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밀접히 활동할 수 있는 규칙들과 구조들의 상부적 역할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규칙들은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유를 증진시키고, 공동선에 반하여 활동하는 행동을 금지할 때 그의 분명한 효과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두고 타협하지 않습니다. 자유의 이름으로 의무와 권리 사이의 연관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한 선택에 책임을 지도록 불리워졌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의 생각은 과학과 기술의 연구 결과가 적용이 되는 방식에 대해 미치게 됩니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재화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몇몇 적용의 방식은 창조 질서에 분명한 침해가 되며, 심지어 인간 생명의 신성한 성격에 반대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인간과 가정이 자연적인 정체성마저 상실할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환경을 보존하고 다양한 형태로 지구상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국제적 행동은 단순하게 기술과 학문의 이성적인 사용을 보호하면 안되고, 창조의 진정한 모습을 다시 발견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는 학문과 윤리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선택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윤리적 정언명령을 진정으로 합당한 과학적 방법을 채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 가족의 일치에 대한 인식과 모든 인간의 태생적 존엄성에 대한 주목은 보호의 책임이라는 원리에 대한 새로 각성된 강조점입니다. 최근에서야 이 원리가 정의되었지만 유엔의 근본에 함축적으로 존재해 있었으며, 지금은 이 기구의 활동에 특징이 되었습니다. 모든 국가는 인권에 대해 중대하고 지속적인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국민을 보호하는 일차적인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인류가 겪은 위협의 결과에서 또한 인간 본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만약 국가들이 이런 보호를 보장하지 못할 정도라면, 국제 공동체는 유엔 헌장과 다른 국제 기구들에 정해져 있는 법적 수단을 통해 개입해야 합니다. 국제 질서의 기본 원칙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 국제 공동체와 기구들의 행동은 원치 않는 강제나 주권의 제한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이런 개입에 대한 무관심이나 소흘은 실제적인 폐해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외교적인 모든 가능성과 대화나 화해의 원의에 가장 나약한 상징에 대하여까지도 주목과 격려를 다 하면서, 개입과 분쟁 해결의 방식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보호의 책임”이라는 원칙은 통치받는 이들에 대한 통치자의 행동을 규정하는 옛 시민법 (ius gentium)의 근본이었습니다. 절대 국가 개념이 발전되던 시기에, 도미니코회 수사 프란치스코 데 비토리아 (Francisco de Vitoria)는, 이런 책임이 모든 국가들 사이에 공유되는 자연적인 이유라는 측면이라고 묘사하고, 국제 질서의 과제는 국민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국가들 연합이라는 이상의 선구자로 생각되었습니다. 이제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같은 원칙은 창조주의 모상인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환기시키고,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자유에 대한 원의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엔의 창설은 인류가 초월성에 대한 상징과 자연적인 이성에 대한 원리를 버렸을 때, 그리고 그 결과로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 중대하게 침해된 사실을 체험해야 했던 깊은 고통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역자주, 2차대전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참사가 벌어졌을 때에, 세계 질서에 영감을 주고 지배하던 가치의 객관적인 근거가 위협을 받았고, 설득력 있는 원리들을 근거로 하여 유엔에 의해 침해되지 않게 문서화되고 함께 공공히하게 된 것입니다. 새롭고 지속적인 도전에 대해 처해 있을 때, 효과를 최소화하고 최약화하면서까지 “공동의 지역”을 설정하는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오류입니다.
우리가 보호할 책임이 있는 근본적인 것이며 대상이 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언급은 유엔의 인권 선언 6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주제입니다. 이 문헌은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유산들의 결과이며, 또한 모든 인간을 제도, 법, 사회적인 개입의 중심에 놓으려는 공통의 원의에서 기인되었으며, 인간을 문화, 종교, 학문의 세계에 본질로 여긴 결과입니다. 인권은 공통의 표현으로 또한 국제 관계에서 주요한 윤리에 항시 존재해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인권의 전체성, 불가분성, 상호 의존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보장조치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헌장에서 인식되었고 강조된 인권들은 “인간”이라는 공통의 기원 덕에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될 수 있으며, 그러기에 인간은 세상과 역사 안에 창조주 하느님께서 하신 계획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권은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진 자연법에 근거하고, 다양한 문화와 문명에 존재합니다. 인권을 이런 반경에서 제거하는 것은 자신들의 환경을 격하하는 것이고, 모든 인권의 의미와 해석에 대해 상대적인 개념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권들의 범세계성은 문화, 정치, 사회 심지어 다양한 종교의 이름으로 부정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권만이 범세계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의 주체인 인간의 범세계성을 부정하는 이런 어두운 측면들의 다양한 면모들을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국가적 차원이나 국제적 차원에서의 공동체의 삶은, 정의와 불의, 발전과 빈곤, 안전과 갈등 사이의 관계를 평가하는데 필요한 공동선의 척도로 이어지는, 인권에 대한 존중과 보장을 분명히 드러내 보입니다. 인권을 증진하는 것은 국가들과 사회 단체들 사이의 불평등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계획이며, 동시에 안전을 증대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인간의 존엄성이 폭행당한 곤경과 절망의 피해자들은 폭력 행동의 손쉬운 사냥감이 되고, 평화를 파괴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권들이 목표로 도달하도록 돕고 있는 공동선은 올바르게 행위적 진행 순서를 적용한다고 해서, 또는 상반되는 권리들의 단순한 형평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인권 선언의 혜택은 각기 다른 문화들 안에서 인권이라는 중심 가치에 대한 조화점에 대해 법적 표현과 제도적 모델을 갖도록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언의 근거를 다시 해석하기 위한 요구에 대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며, 인권들 사이의 내적 일치를 공공히 함으로써 자주 몇몇의 특정한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인간 존엄성을 보호하는 일로부터 멀리 거리를 유지하기 쉬울 것입니다. 인권 헌장은 “지속할 공통의 인식” (전문)으로 제정되었으며, 그러기에 인간의 통합성 즉 인권들의 불가분성에 반할 위험에 쉽게 처할 수 있는 경향들과 이해적 선택에 따라 인권을 각기 따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인권에 대한 강조가 법적인 조치의 결과나 권력있는 이들의 다양한 기구에서 규정으로 결정되었을 때에, 법이 정의보다 자주 우선했던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권은 단순히 법적인 형식으로 표현되었을 때에, 자신의 근거이고 목적인 윤리나 이성의 측면과는 떨어져 있는 나약한 한 분야로 전락하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반대로 헌장은 인권에 대한 존중은 바뀌지 않을 정의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위에 국제적인 선언들이 나올 관련 역량들이 기초를 내리고 있다는 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측면은 실용주적 전망의 이름으로 인권들의 진정한 기능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가운데 홀대받고 있습니다. 인권과 그에 따르는 의무는 인간의 내면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이기에, 이들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즉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연대성에 근거되어 있는 정의에 대한 공통의 인식의 결과라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직관은 5세기에 이미 우리 지성적 유산의 스승 중의 하나이며 히포의 아우구스티노께서 “다른 이가 너에게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너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원칙이 “세상에 현존하는 다양한 이해에 따를 심산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바뀌어서는 안된다” (De doctrina christiana, III, 14)는 말씀을 통해 최고조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권은 법 제정자의 의지에 대한 존경이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정의의 표현이라는 이유로써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들의 역사가 흐르는 가운데 새로운 상황들이 생겨나고 이 상황들에 의해 새로운 인권을 제정할 경향이 생깁니다. 식별, 즉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민족들의 삶 자체와 행동에 관한 요구가 있는 이 상황에 더욱 본질적인 것입니다. 인권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이런 요구가 중요한 상황들과 심층적 현실에 연관되어 있음을 직시하면서, 이제 식별은 불가피한 덕이면서 동시에 풍성한 결실을 맺는 덕이 됩니다.
식별은 개별 국가들에 배타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법과 제도에게 개인, 공동체 그리고 전 민족의 염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종적 책임을 어떻게 맡길 수 있는 지를 드러내며, 가끔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해 사회적 규칙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도 합니다. 다른 면으로 종교적 측면으로 다져진 삶의 전망은, 모든 인간이 지닌 초월적인 가치를 인식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폭력, 테러리즘, 전쟁에 항거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이런 목적으로 추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즉 유엔이 지지하도록 요구를 받고 있는 종교간의 대화라는 반경을 넘어, 인간 활동의 여러 영역 간의 대화에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대화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시각을 표현하고 가치와 특별한 목표에 관한 진리에 관한 동의를 만들어 내는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는 자유롭게 실천되는 종교들의 본성으로, 종교들은 생각과 삶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대화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의 반경이 정치적인 행동과 분리되어 있도록 요구된 차원에서 조차도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서 위대한 선익이 이들에게서 나옵니다. 한편으로, 유엔은 종교들 사이의 대화의 결과에 기대를 걸고, 그들의 신자들의 경험을 공동선을 증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결과로 취해야 합니다. 그들의 과제는 신앙의 시각을 비관용, 차별, 갈등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진리, 공존, 인권과 화해에 대한 전체적인 존중이라는 형태로 제시해내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권은 동시에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이며, 한 개인이 사회의 시민이면서 신자라는 두 측면을 확실히 구분하면서도 인간의 통합성을 드러내는 시각의 표현인 자유로운 종교의 권리를 포함해야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유엔의 활동은 종교적인 시각을, 그들이 가진 모든 측면 즉, 예배, 경신례, 교육, 선교 그리고 종교 신봉과 선택의 자유에 입각한 모든 면에 대하여 공적인 토의에 대한 공간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시민이 되기 위해서 그 신앙에 강제되어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신을 부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종교와 연관이 있는 권리들은 세상에서 득세하는 이념이나 배타적 성격을 지닌 거대 종교와 갈등의 관계에 있을 때 더욱 보호가 필요합니다. 종교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경신례 실천의 차원에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종교의 공공적인 측면을 정당하게 염두에 두어서 신자들이 사회 질서 건설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어야 합니다. 사실 종교들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과학 연구소, 학교들, 의료 시설 그리고 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애덕의 봉사 시설을 통해 많은 주도적인 일의 다양한 연결망에 영향력있고 정성스런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이런 공헌을 종교적인 측면이나 본질적으로 인간 사이의 일치의 표현인 절대자에 대한 탐구의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개인적인 접근 방식을 옹호하고 인간의 일치를 갈라놓을 것입니다.
제가 이 총회에 참석한 것은 유엔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고, 이 기구가 국가들 사이의 일치의 표징이며 모든 인류 가족에 대한 봉사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의 표현입니다. 또한 가톨릭 교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으며 모든 개인과 민족들이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움으로 국제 관계의 건설을 위한 도움을 주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성좌의 국제 활동을 통해 윤리와 도덕의 영역과 신자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성좌는 국제 사회의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유엔의 회의들에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최근에 유엔이 확인하였듯이, 성좌는 국제법의 규정에 고유한 도움을 주며, 이를 정하는데 힘을 보태고 그것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유엔은 교회가 수세기를 걸쳐 모든 종족과 문화에 속한 민족들 사이에서 발전된, “인류 사이에서” 했던 고유한 경험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국제 공동체의 회원들에게 제시하는 특별한 자리입니다. 이러한 경험과 활동은 모든 믿는이들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서이며 더 나아가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에 대한 보호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런 권리는 인간의 초월성에 기초되어 있고 형식화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신앙의 길을 걷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인류의 희망과 미래의 세대의 권리를 위한 협력과 보장을 지탱해 나가는 가운데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저의 회칙 “희망으로 구원되었습니다: Spe Salvi”에서, 저는 “인간적 일을 위한 법적인 그물망을 찾기 위한 새롭고 힘든 노력은 모든 세대의 과제” (25항)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에서 생겨난 희망에 의해 원인이 제공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이 위대한 기구의 활동에 기쁘게 동참한 이유이고, 이 기구에 전 세계에 평화와 선의를 증진시킬 책임을 맡긴 이유입니다. 친애하는 친구여러분,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연설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면서, 여러분들의 위대한 과제를 계속하는데 제가 기도를 통해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위대한 회의에 작별 인사를 드리기 전에 유엔의 공식 언어들로 여러분이 대변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 저의 심심한 인사를 드립니다.
Peace and Prosperity with God’s help!
Paix et prospérité, avec l’aide de Dieu!
Paz y prosperidad con la ayuda de Dios!
سَلامٌ وَإزْدِهَارٌ بعَوْن ِ الله ِ!
因著天主的幫助願大家 得享平安和繁榮 !
Мира и благоденствия с помощью Боҗией!
대단히 감사합니다.
번역: 정연혁 베드로니오 신부(교황청 그레고리아나 대학교 사회교리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