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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26. 주일설교요약
본문▶ 미가서 7장8절
제목▶ 다시 일어나리라.
미가라는 뜻은 “여호와 같은 자 누구신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가는 3명의 왕을 걸쳐서 활동했던 서민적인 선지자였습니다.
특별히 미가가 활동했던 가장 왕성한 시기는
아하스라는 임금 때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남유다에 많은 임금이 있었지만,
그 중에 서너명 정도가 선한 임금에 들어가고,
대부분이 악한 임금이었습니다.
그 중에12번째 임금인 아하스는 정말 악한 임금이었습니다.
왜그러느냐?
우상 숭배를 적극적으로 했던 임금이 아하스였습니다
아하스 임금 때에 국제적인 정세를 보면
남쪽 유다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있었지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라는 민족에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국제적인 정세도 좋지 않았고
신흥 강대국이었던 앗수르가 강하게 일어나서
막대한 영토를 늘려가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이때 남유다는 앗수르에게 땅을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앗수르에게 이미 조공을 바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남쪽 유다의 금이 바닥이 났다 이런 표현을 합니다.
아하스 임금이 정치를 잘 못하고,
영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임금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남유다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활동했던 선지자가 미가라는 선지자였습니다.
남쪽 유다는 늘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앗수르가 언제 쳐들어와서
자신들을 짓밟을까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에 떨고 있던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던 선지자가 바로 미가였습니다.
미가서의 전반부를 보면
그들의 상황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영적인 타락이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가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한 선지자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미가서 후반부를 보게 되어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다합니다.
미가서 6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이러면서 설명을 해나갑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진 것처럼
‘다시 일어나게 되어 질 것이고,
어둠 가운데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다‘
이런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미가라는 선지자가
이 어두웠던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의미 있는 부탁을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첫 번째로는, 믿음을 잃지 말라고 부탁을 합니다.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4대 임금이 선한 임금이자나요?
그 다음에 선한 임금이
13대 임금이 히스기야 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세요.
5대, 6대, 7대, 8대, 9대, 10대, 11대, 12대
이렇게 8대를 걸쳐서 악한 임금들이었는데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내일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한 임금의 특징은 영적으로 타락하고
그 타락으로 인해 백성들을 힘들게 했던 임금을
악한 임금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중간 중간 좋은 임금이 나타나면 좋을텐데,
8대를 거치면서 좋은 임금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남유다 백성들에게는 좌절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못하면 믿음을 놓쳐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면
나름대로 믿음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이 계속되어지다 보면
이 믿음을 놓쳐 버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미가라는 선지자는
믿음을 위해서 예언하게 하셔서
너희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머지않아서 오니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믿음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시 일어나게 할 것이고
지금 비록 어둡지만 하나님은 빛이 되어서
너희를 밝게 비추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오면 다른 것을 많이 점검해야 하고
다른 것을 많이 확인해야 하고,
다른 것을 많이 들여다 봐야 할테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정검 할 것은,
믿음이 아직도 내게 있나 그것부터 정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오면 믿음부터 찾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부터 확인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연속적인 어려움이 오더라도
한 해를 믿음으로 마무리 하고
새로운 한 해를 믿음을 가지고 출발해야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어두움이 빛으로 바뀔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끝까지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굉장히 약한 것 같지만
우리가 사실 굉장히 강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우리 앞에 어떤 염려할 일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도 이미 다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생각한 것보다
여러분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면 ‘괜히 염려했네’ 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강한 이유가 무엇이냐?
믿음이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강한게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을 이렇게 보면
굉장히 강한 것 같습니다.
그 펀치를 맞아 가면서도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여러분 보통 맷집이 좋은게 아니예요.
우리가 이렇게 영적으로 강한 이유가 뭐냐면
믿음이 있으니까 강하지 믿음을 쑥 떼어 버리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힘이 없어져 버립니다.
저도 부흥사 사역을 하면서
“이걸 어떻게 하지”
“이번 주는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걱정과 고민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이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강하구나”
그렇다면 내 강함이 어디서 왔을까?
세상에서 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믿는 믿음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님들 한분, 한분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너무나 강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그 강함이 어디서 오느냐?
믿음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연약하다 생각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주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24장 16절을 보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쓰러질 듯 하면서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을 듯 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랬자나요.
힘들다고 해도 볼에 살이 쪄서 살아 있다고요
진짜 힘들어 보세요. 볼에 살이 찌겠습니까?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나고, 시련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도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그러느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주님이 없으면 약하지만
주님을 바라본다면 약하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시자나요.
약한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강하신 주님을 붙들고 있기에
우리가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강해지기 위해서
믿음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남쪽 유다가 힘들다 보니까 소망이 없어지는 거예요.
사람이요? 오늘의 고난을 견디게 만들어 주는 것은
내일의 소망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의 고난이 힘든게 아니라
내일의 소망이 없는게 힘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왜 힘드냐?
끝이 안보인다고 생각할 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느 일정 기간만 참으면 된다는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라는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대로 끝이 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멀리 내다보며 천국이라는 소망이 있기에
이 땅의 삶이 견디어 지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소망이 없다면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강한지 아십니까?
천국을 향한 소망이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소망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하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겨내는 정도가 다릅니다.
아무리 모진 겨울이 닥쳐와도
봄이 오면 죽은 것 같아 보이던 것들이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견딜만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봄이 오기 때문에 말입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연이어서 악한 임금을 맞이하면서
점점 소망이 사라져 갑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소망을 불어 넣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고,
또한 히스기야 왕이 등장해서 행복을 줄 것이라 말입니다.
좋은 생각을 많이 품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평소에 안 좋은 것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저와 여러분은 어느 쪽의 사람들입니까?
생기지도 않았는데도 미리 걱정하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항상 선한 생각 건설적인 생각을 품고 살아갑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좋은 생각을 많이 품고
건설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올해는 힘들어도 내년은 소망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2018년 소망을 갖고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을 합니다.
당시에 남쪽 유다가 이렇게 연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까
어떠한 증상이 나타나느냐? 사랑이 식어 버립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사랑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의와 인자 겸손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왜 요구하시는지 아십니까?
삶이 각박하고 다툼이 많아지다 보니까
서로 간에 사랑하고, 서로 간에 보듬어 주는 모습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웃자고 농담을 했는데
싸우자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사랑이 있으면
싸우자고 덤비는 사람한테 웃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길거리를 나가보면
여기저기서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왜 싸우는지 확인해보니까 어려워서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이 불편하고 자시의 환경이 불편하고
자기의 상황이 불편하니까 모든게 분쟁거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서민적인 선지자였습니다.
서민들의 삶을 돌아보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때론 잘못 된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 미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가가 백성들을 돌아보니
가는곳 마다 싸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가가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더 큰 어려움이 온다.
그래서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나님이 너희를 다시 일어나게 해주시고
어두움 가운데 하나님이 빛을 주실 것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아이들이 자랄 때 사랑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너무 야단을 치고 혼을 내면
나중에 이 아이가 사랑을 베푸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버릇이 나빠 질 수도 있지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누군가를 사랑 할 줄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누군가를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많이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그 사랑을 모르면 우리의 사랑도 식어 버립니다.
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내 마음에 사랑이 없어서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식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견딤에서 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이 식어버리면 모든게 짜증나고 화가나고
그래서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화낼만한 일이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심사가 불편해서 화를 내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화를 안내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화를 내버려요. 이렇게 말투를 들어보면
저사람 마음에 평안이 없구나 그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저 정도면 화를 낼만한데
화를 내지 않는 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 사람의 마음이 평안이 있구나.”
“저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구나”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요.
우리를 죄대로 처단하지 않으시고
허물대로 우리를 처벌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도 끝까지 우리를 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사랑을 해야 합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면
너도 사랑하는 마음을 미가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그랬을 것입니다.
“지금 사랑할 만한 환경이 아니예요.”
“지금 먹고 살기도 너무나 힘이들어요.”
그런데 하나님도 똑같다는 거예요.
우리를 사랑할만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뻐할 만해서 이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엄마가 딸에에 이러는 거예요.
“어이구 귀여운 내새끼”
그런데 누가 봐도 귀여운 얼굴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귀엽습니까? 사랑이예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조건이 되어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해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조건 없는 사랑인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런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 각박한 시기에
우리 축복교회 성도님들의 삶에 믿음을 잃지 않고
오직 소망을 품으며 2018년도를 맞이하는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서로 다투고 헐뜯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공동체가 되기보다는
서러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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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믿음 소망 사랑을 품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