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고등학교 근무할 때는 방학이면 더우나 추우나 보충수업으로 시간이 묶여야 했다. 중학교로 옮겼더니 방학이면 느긋한 자유인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느긋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방학 중 몇 차례 연수를 받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재충전한 기회로 삼았다. 올 겨울방학 때는 산림인력개발원에서 여는 교원산림체험 연수를 받으려고 했더니, 신청을 늦게 하여 연수 정원 밖이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방학하고 연일 산으로 들로 쏘다녀보았다. 지난 연말 밀려둔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재검대상이었다. 혈압은 지극히 정상이고 위내시경도 깨끗했다. 그런데 혈당수치와 감마지피티가 정상치보다 높게 나왔다. 몸의 노화 현상은 막을 수가 없어도 좀 천천히 오길 바랄 뿐이다. 높게 나온 혈당이 나의 평소 생활습관을 비추어준 거울이었다. 술잔은 천천히 비우고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지라고 정신 차렸다.
며칠 작정하고 걸었더니 평소 조심해 써 왔던 왼쪽 무릎이 시려 하루 집에서 쉬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빈둥거리며 놀 입장은 아니었다. 아침 식후부터 나한테는 일거리가 한 가지 안겨졌다. 지난 번 김장하고 남겨 둔 시골에서 온 마늘이었다. 마늘 망 반 자루는 그 때 까서 쓰고 남은 마늘을 모두 까 둘 작정이었다. 마늘을 아파트 베란다 오래 두면 골아서 버려야하는 경우가 더러 나오기 때문이다.
양이 좀 되기에 점심때까지 까도 못다 까서 두 시 넘게까지 해야 했다. 거실 뒷설거지는 집사람한테 맡기고 나는 동네병원에 갔다. 먼저 이비인후과 들릴 일이 있었다. 가끔 왼쪽 귀가 우리하고 청력이 떨어진 듯해서다. 의사가 내 귀 안을 내시경으로 비추어 보여주는데 오른쪽은 깨끗하고 왼쪽엔 귀이지가 꽉 차 있었다. 바깥의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이지가 막고 있었으니 지나갈 수 없었다.
나는 인근 내과로 옮겨갔다. 건강검진결과에 따라 혈당수치를 관리해야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알씩 먹으라는 약을 먹고 보름 뒤에 오라기에 갔다. 간호사가 체크한 혈당수치를 의사가 살피더니 그사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사실 그사이 신경 써서 몸을 다듬었더랬다. 한시적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될 처지였다. 건강은 타고 나는 부분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이 따라야함을 느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동학교 동창생이 있다. 친구는 고향 면장을 지내다가 공무원교육원을 거쳐 도청으로 복귀했다. 친구가 지난 연말 가는 해를 아쉬워하며 소주 한 잔 나누자고 연락이 왔더랬다. 나는 전화를 받고 반가우면서도 미안해해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바람대로 곧장 나가 함께 자리하였건만 그럴 입장이 아니었다. 그간 몸을 무리한 죄업으로 자숙하는 중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해가 바뀐 어느 날 초저녁에 친구가 우리 아파트 단지 앞이라면서 또 전화가 왔다. 둘이서 가끔 마주 앉아 잔을 건네고 채우고 하던 구이 집이라고 했다. 친구는 내가 더욱 생각난다면서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곁에 있던 주인 아낙이 전화를 넘겨받아 덤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지위나 금전으로 남에게 도움 주지 못해도 마음만은 이웃에게 신망 잃지 않았으면 한다.
세월 따라 눈이 침침해지고 눈가 잔주름도 늘게 마련이다. 귀밑머리는 당연히 세고 머리숱은 하도 빠져 체념하기도 한다. 식사 중 입가 밥풀이 붙거나 흘러내리기도 한다. 치아가 성글어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불편한 관절로 오르막보다 내리막에 더 힘들어하기도 한다. 하릴없이 새벽잠을 설쳐 일찍 깬다. 개인차가 있긴 해도 중년이후 나타나나는 신체적 징후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나는 육신의 노화가 오고 있을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조급해지지 말자는 생각을 해보았다. 흔히 우리네 인생을 계절의 순환에 비유한다. 씨앗은 싹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갈무리된다. 그러나 인생은 종점에서 끝이 나고 계절은 원점으로 돌아오는 차이가 있다. 다행이 의술의 도움을 받는 영역이 있음만도 감사해야 한다. 나머지는 얼마나 맑은 영혼으로 살다가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 퇴장하느냐다. 09.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