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6편 다윗의 기도
1.본문배경
시편은 모두 150편으로 되어 있는데, 다윗과 관련된 시편이 모두 73 편이다. 시의 장르 구분상 다윗의 시편은 다윗의 노래 (‘미즈모르’란 단어 사용, 3-6, 8-9, 12-13, 15, 19-22, 29-31 편 : 이중 30편은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부른 노래로 노래와 시가 함께 어우러진다. 38-41, 62, 65, 68편은 영장, 시, 노래가 함께 나온다. 101, 108-110편으로 총27편), 다윗의 기도(트필라, 17, 86편으로 총 2편), 다윗의 지혜(마스킬, 32, 52-54, 142편 :기도와 마스킬이 제목으로 함께 사용됨. 총 5편), 다윗의 편지(믹탐, 16, 56-60편으로 총 6편), 다윗(25-28, 34-35, 37, 103, 138, 144편으로 총 10편), 다윗을 기념하는 노래 (38, 70편으로 총 2편), 다윗의 찬송(트힐라, 145편으로 총 1편), 다윗의 식가욘(7편, 하박국 3 : 1), 영장에 맞춘 다윗(11, 14, 18편), 노래는 안 나오고 영장과 악기만 나오는 경우는 61편 등으로 나뉜다.
시편 86 편은 다윗의 기도이다. 따라서 시편 86 편은 노래로 불려지거나 시로 낭송기보다는 기도로 아뢰어지는 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시편 17편도 다윗의 기도이다. 반면에 시편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이다. 102편은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의 제목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9절의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이 부분을 시로 낭송할 때와 노래로 부를 때와 기도로 드릴 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본 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다. 히브리어 한나(통촉하소서.)와 니함(위로하소서.)을 사용하여 자신의 처지를 아뢴다. 개역한글성경은 이 두 단어를 모두 긍휼로 번역한다 : 3절의 "긍휼히 여기소서"(하네니 -통촉하소서), 15절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하네니 -통촉하소서), 16절의 "내게로 돌이키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니함타니 -위로하소서),
왜 시인은 하나님의 위로와 통촉하심을 구할까? 그것은 시인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1절). "나의 환난 날에" (7절), "내 영혼을 깊은 스홀에서 (13절),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14절). 한마디로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경건을 유지한다. 이것이 시의 중심 메시지이다. 환난을 당하나 경건한 삶을 유지하는 시인의 신앙을 배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경건으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원뜻을 살펴보는 것이다. "나는 경건하오니 (하씨드 아니), 여기서 경건의 의미로 번역된 ‘하씨드’의 원래 의미는 긍휼하심을 입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성도'라고도 번역된다.
정리하면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는다는 것이 성도의 경건의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없이 신앙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본 시편의 다윗의 기도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절규요. 선포요. 믿음의 고백이며, 감사인 것이다.
2.본문 주요내용
본 시는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기도를 들어주소서(1-7절) 둘째, 하나님을 찬양 (8-10절) 셋째, 마음을 같이하여 간구하며 여호와께 감사하겠다는 맹세를 드림(11-13절) 넷째, 적으로부터 구원을 간청함(14-17절)이다.
시인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살펴보자.
1. 호칭
여호와(예호바),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아타 엘로하이), 주여(아도나이),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아타 아도나이).
2. 주의 성품에 대한 찬미
주는 선하시다(마타 아도나이 톱- 당신은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주는 사유하기를 즐거워하신다(쌀라흐), 인자하심이 후하시다(랍 헤쎄드 -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십니다.), 신 중에 주와 같은 분이 없도다(에인 카모카 바엘로힘), 주님은 광대하시다(가돌 아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다(오쎄 니플라옷), 주만 하나님이시다(아타 엘로힘 레바데카), 주 여호와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리가 풍성하신 분이시다(아도나이 엘 라훔 베하눈 에렉 아핌 베랍 헤쎄드 베에멧),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신다(아타 아도나이 아자르타니 베니함타니).
3. 다윗의 신앙
첫째, 종일 기도한다.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3절). 둘째, 주를 의지한다.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2절), 셋째, 주님을 찬송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2절).
4. 기도의 내용
"내게 응답하소서" (1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2절),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2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3절), "주를 우러러보니 "(4절),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6절),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6절),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17절).
다윗은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부른다(시편 18편의 제목 : "여호와의 종 다윗" : 36편).
특히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자신을 주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본 시편 외에 시편 116 : 16에서도 시인은 자신을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른다―"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보통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만 알려져 왔다. 그런데 본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주님을 섬겨 왔던 여종이 낳은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다윗의 경우 아버지는 이새였다. 그러나 정작 성경이 말씀하는 이새가 생각하는 다윗은 8명의 아들 중 막내에 불과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이새의 한 아들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으로 세우기 위해 찾아갔을 때, 이새는 다윗을 제외한 일곱 아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래서 첫째 아들 엘리압(나의 하나님은 아버지시다.)을 내세운다. 첫째 아들은 용모와 신장이 출중해서 아버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당황한 이새는 둘째 아들 아비나답(자원해서 아버지를 섬긴다.)을 내세운다. 하나님은 아비나답도 선택하시지 않는다. 그러자 이새는 세 번째 아들 삼마를 내세운다. 이렇게 일곱을 다 내세우지만 다윗은 아버지의 뇌리 속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 아버지로서, 신앙의 멘토로서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궁금한 것은 아버지가 관심을 갖지 않은 막내 아들, 들에서 양이나 치는 목동인 다윗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더욱이 사울 왕에게 악신이 들어 그를 괴롭게 할 때에 왕을 고치기 위해 추천된 사람이 다윗이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을 추천한 사람이 어릴 때부터 다윗을 주목해 보아 왔던 동네 사람이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삼상 16:18).
다윗의 어릴 적 신앙은 그가 골리앗과 싸울 때 한 고백에서도 잘 나타난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삼상 17 : 37 상) ...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와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참으로 놀랍다. 어떻게 해서 다윗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을까? 본문은 우리에게 이에 대한 대답을 준다. 다윗이 “환난 날에 고백한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라는 기도 속에서 다윗의 어머니가 다윗에게 신앙을 물려 주었음을 알게 된다.
성경은 다윗이 추천될 때 그는 구변이 있다고 말한다. 이 뜻은 하나님의 말씀이 입술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고, 배우고, 암송하고, 실천했다는 것이다. 다윗의 멘토가 누구일까? 그분은 바로 다윗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뜻의 신앙을 이어받았다. 나오미의 신앙을 이어받았다. 기생이었던 라합의 신앙을 이어받았고, 유다의 며느리인 다말의 신앙을 이어받았다. 룻은 착한 며느리였다. 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떠나지 않은 것은 신앙 때문이었다. 라합도 신앙 때문에 자신의 민족과 신앙을 버리고 이스라엘 하나님께 돌아와 주의 백성이 되었다. 다윗의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귀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 그는 신앙의 멘토가 있는지 질문한다. 우리도 신앙의 멘토가 되어 후손에게 신앙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3.오늘의 기도와 관상
"나의 힘과 소망이신 하나님! 살아 있는 동안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늘 돌리기 원합니다. 항상 주의 말씀과 법도 행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나님!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주의 법도를 알게 하옵소서. 주의 진리의 말씀을 행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온 마음을 다하여 주의 이름에 합당한 존귀를 주님께 돌리게 하옵소서. 묵상 내내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