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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취미 생활을 하지 않다가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린 것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다.
그것도 우연히 콘크리트 길 위에서 하트 모양의 돌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생명이 없는 곳에서 비롯한 취미생활인
것이다. 어쩜 지나치는 모든 것에 내가 의미를 두지 않으면, 역시 내게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생명 없는 것에서의 출발은 나름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일 수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으나 80~90 년 대쯤 많이 유행했던 표현으로
'생명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척박한 땅 콘크리트 길 위에서도 피어나는 사랑법' 이라 했다.
농로를 따라 걸으며 거의 대부분의 길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 길을 새삼 발견하니
괜시리 발도 아프고 그런 것 같았다. 그러다가 둑방길로 잠시 발걸음을 옮기니, 거기에는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거의 다 지고 뒤늦게 한 송이만 겨우 피어 있는 민들레를 보며 사진을 찍은 것도 같은 날의 일이다.
사진 한 장만 있으면 덧글은 언제든지 바꾸어 쓸 수 있으므로 그때 그때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길을 가다가 좀 괜찮다 싶은 것을 만나면 얼른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는 것이 아니라 아쉬운 대로 핸드폰으로 찍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은 고스란히 사진 속에 나타난다.
그렇다고 몇 개월 동안 어디를 많이 다닌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의 것들을 사진 속에서는 색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집 주변에서 찍은 사진인데, 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본 구절과 어울릴 듯 하여 덧글로 쓴다.
대개는 직접 쓰지만, 가끔은 읽던 책에서 따오기도 한다.
사진을 찍어 놓고 보면, '괜찮다!' 싶은 것들이 분명 있다.
여지껏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괜찮은 곳이구나 느끼는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진으로 찍고 덧글을 달며 괜찮은 곳이 의외로 많음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위의 사진은 , 성산을 거의 아침에 주로 오르는데, 이날은 추석 연휴기간이라서 오후에 산을 올랐을 때 찍은 것이다.
헬기장에 거의 도착하였을때 하늘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얼른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과 어울릴 법한 성경구절을
찾아낸 것이다. 성경이어쓰기를 한다고 해도 어찌 그 많은 구절들 중에서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어림없는 일이다.
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적절한 구절이 눈에 띄니, 그걸로 덧글을 입히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사진을 찍으면 그 시기에 읽는 책이 같은 경우가 있으므로 종종 그렇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 덧글을 입혀놓고는 혼자 보니 뭔가 근사해 보이고 그냥 좋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성환에서 찾을 수 있는 게 더욱 좋다.
성산을 오르면서 가끔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크고 높은 산이 아니라서 누구나 맘만 먹으면 오를 수 있는 산,
그런데도 그 선물을 찾아 누리는 사람이 있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는 거구나 싶은 것이다.
나도 성산에 오르기 전에는 그랬으니까.....
아니, 어쩜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하다.
<성산 일출>
<성산 오솔레미오길>
특별한 이름이 없는 산책로인데, 태양이 비추는 모습을 보곤 '오솔레미오길'이라 이름지었다.
몇 개월 동안 성산을 오르내리며 숱하게 걷던 길.
며칠 전에 가 보니 잎사귀는 다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더라.
어느날, 산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만났다. 산행 중에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므로 여느 사람을 만난 것 마냥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뜬금없이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으신다.
"네? 아, 네에....."
그랬더니, 구절초가 피어있는 곳을 가르쳐 주신다. 늘 걷는 등산로를 벗어나 조금 위쪽으로 가니 그곳에 구절초가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구절초가 한껏 피어있었다.
며칠 뒤에 다시 산을 오르다가 구절초가 생각나서 그곳으로 가니, 꽃은 시들고 남아있는 꽃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그곳에 곤충 한 마리가 날아와 꽃술이라도 먹는 듯이 오물오물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덧글 달아본 것이다.
어떤 분이셨을까?
성산에서 등산객이 장난스레 엮어놓은 풀을 보며 화답이라도 하듯 씨익 웃으며 적어본다.
대부분 직접 찍은 사진에 덧글을 달지만, 가끔은 다른 분이 보내주신 사진에도 덧글을 입히기도 한다.
감 하나를 얼마나 실감나게 찍었는지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재미삼아 만든 것을 보내드리기도 하고..
어릴 적, 신작로에서 집까지 이르는 길은 엄마가 심어놓은 코스모스가 항상 꽃길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이야 다른 건물도 생기고 집도 있어서 외딴집이라 할 수 없지만, 어릴 때는 신작로에서 집까지
그리고 집에서 다른 집을 만나기까지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집이었다. 그 길에 코스모스가 피어있으니
적적하지 않고, 장난도 치며 놀 수 있는 길이 되어 주었다.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서 코스모스 꽃잎에 앉아 있는 벌을 얼른 나꿔챈 후, 팔을 빙빙 돌려 벌이 어지럽게 한다.
그런 다음 바닥에 신발을 내동댕이를 치면 벌을 잡을 수 있었다. 겁도 없이.....
그러다가 벌에 쏘여 눈텡이가 밤텡이 되기도 하고...
꽃잎이 벙그러지기 전에 물을 머금은 코스모스를 톡톡 따서 터뜨려보기도 하고...
코스모스는 어린 시절 익숙하게 보던 꽃이라 그런지 정겨움이 있는 꽃이다.
집은 낡고 허술했어도 항상 꽃을 심어놓으셨던 엄마 덕분이어선지 코스모스에 대한 기억이 좋다.
마치 솟대마냥 치솟은 코스모스를 보며 잠시 옛 생각에 젖어 써 보기도 한다.
이렇게 감 사진을 포함하여 처음 만든 것들을 딸에게 카톡으로 보내줬더니,
" 아, 뭐야, 엄마~ 이런 거 하지마~~!!"
그러면서도 친구에게 사진을 보낸 걸 안다. 얼마 전에도 사진을 보며 이리저리 덧글을 달고 있는 걸 보더니,
"엄마, 이게 오십 대 감수성이야?" 하길래,
" 응? 어? 어~~!"
하니, 텍스트 글씨보단 손글씨가 더 낫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 바로 손글씨로 고쳐쓴다. 참으로 단순하다.
<광덕산에서 찍은 사진>
그냥 보는 것 만으로도 좋은 사진이 있다. 다들 정상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바쁜데, 바로 한 걸음 아래에 억새풀이 있었다.
거기서 한 걸음 내려가 핸드폰으로 찍었다. 광덕산 정상은 밋밋하기만 한데, 억새풀을 찍음으로써 멋진 곳으로 살아난다.
그 다음 주에 다시 가보니, 억새풀은 이미 다 질대로 져서 멋진 자태를 뽐내던 것이 맞나 싶었다.
사물 하나를 만나는 데에도 때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가끔은 순간 포착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을 보며 한 곳에서 떠나지 못하는 마음은 어떨까 싶어 써 보기도 하고......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던 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데, 나는 그냥 지나치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새로운 취미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내가 가는 곳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게 된다.
그렇다고 결코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산길을 걷고 또 걸으며 만나기도 하고......
그 길에서 만난 나무를 찍은 후, 덧글을 쓰기도 하고 .......
새벽 미사 끝난 후, 집으로 가는 길에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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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아이들 등굣길에도 만난다.
부자마을과 남산골 앞 사거리. 신호 대기하고 있다가 만나기도 하고.....
이렇게 사진을 찍기 전에는 성환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해 본 적이 없다.
근데 사진을 통하여 재발견하고 있는 셈이니, 내가 몸 담고 사는 이곳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어디까지나 별 볼 일없는 작은 소읍에 지나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 했던가.
성환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찾아 보면 가까운 곳에 많은 보물이 많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냥 지나치며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이성지.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본의 아닌 찬조출연. 사진 속에 계십니다.>
은이 성지에 가니,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처음 사목활동을 하셨다는 곳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게 나무의자를 놓았다. 그 나무의자 위에 낙엽이 몇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며
' 쉬어가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싶었다.
그리고 처음엔 살아 있는 나무가 죽은 나무에게 낙엽을 주며 함께 사는 것으로 썼다.
그런데 며칠 뒤에 다시 사진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무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먼 발치에서나마 늘 함께 서 있던 나무였으나, 사람들에 의해 베어지고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니 낙엽은 어느새 그리움의, 반가움의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 인양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나무를 많이 찍었다.
한 곳에 멈추어 오랜 세월을 지내는 나무는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안성 미리내 성지를 갔을 때에도 오히려 나무에 더 관심이 갔다.
미리내 성지는 두 번 다녀갔던 곳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무를 못 보았는데, 감나무의 모양새가 또 심상치 않은 것이다.
꽤나 오랜시간을 견뎌내며 죽을 힘을 다해 열매를 맺고 있는 듯 했다.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보다 자꾸 곁가지로 뻗는 관심은 나무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
그렇지만 나무를 통하여서도 성지순례의 길은 그곳이 인상적인 곳이 되기도 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광덕산 정상에 거의 다 오르니, 나무들은 이파리를 떨궈내고 겨울을 준비하는 듯하다.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도 든든하게 껴입고, 난방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
그런데 나무들은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 둘 씩 버리며 겨울을 준비하는 것만 같다.
살아남는 방법이 잎사귀들을 버리고 정제된 태양빛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최소한의 가지만 남긴다.
버림으로써 얻는 자유.....
나무들은 겨우내 눈, 비, 바람, 햇빛 등을 온 몸으로 받아내기 위해,
한 몸이었던 잎사귀들을 떨궈내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몇 백 년을 보낸 나무는 이렇게 몸을 흔드는 것만 같고......
<외암마을에서>
<안성 죽산 성지 입구 광장 휴게소에서>
죽산성지 갔다가 잠시 밥을 먹기 위해 들른 휴게소에서도 나무는 말하고 있다.
나무가 서로 껄껄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재미나게 하는 걸까?
가지가 수만 갈래로 뻗어 있는 나무를 보며, 문득 그 가지들마다 하나의 염원을 담으면 어떨까 싶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의 한 구절로 갈래갈래 퍼져 나가던 생각들을 모은다.
옹이지고 결이 제각각 다른 모습을 지닌 나무들로 그 결을 살려 창조해내는 악기들처럼,
나도 조금은 달라지기를 바라며 겸손하게 마음을 모은다.
몇 달 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자신을 본다.
나무를 보다가 시선을 하늘로 돌려보면 구름의 움직임은 신비롭기만 하고......
단풍에 취해 보기도 하면서 지나다보니 어느덧 겨울로 접어든다. 그새 시간도 많이 흘렀다.
<성산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였어도 성산, 광덕산 등을 오르며 보낸 시간들 속에서 보낸 시간들은 고스란히 마음 속으로 스며들겠지.
혼자서도 잘 노는 시간들을 통하여 새로운 취미 생활은,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활력을 얻는 '살아 있음' 으로 거듭나는 것만 같다.
첫댓글 드디어 며칠 간의 도전이 끝났습니다. 따로 배운 적도 없고, 사진 올리는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만 하다가 계속 실패를 했었지요. 한두 장 올리는 건 쉽게 할 수 있었는데, 여러 장 올리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성공입니다. 덕분에 새벽까지 왔네요~~ㅎㅎ
성당에는 새벽에 움직이는 분들이 많으신가 봅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조회수가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ㅎㅎ
대단하십니다...
나도 배워보고 싶은데
머리 쓰는게 이젠 귀찮답니다~
저도 머리 쓰는 건 이제 좀 잘 안 써질라고 그럽니다...ㅎㅎ
그래도 도전해서 맛보는 성취감이 있네요.
사진을 올리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뜻대로 잘 안 올려져서 그냥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어설픈 대로 부끄럼도 모르고 기냥 적고 보는 중입니다.~~ ^*^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는데....ㅎㅎ
사진 올리느라 급급해서 원래 쓰려고 했던 것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시간 내어 조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