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upon a time
40 여 년 전 박준형 김성식 임병천 김만경 박은규 김철호 그리고 곽노동 7인의 무법자가
02시경 음산한 밤안개를 뚫고 모시울 다리를 건너갑니다.
모시울 다리는 조치원에서 전동을 넘어가는 충남과 충북의 경계다리입니다.
전날 박준형과 김만경이 모시울 절寺에갔다 내려오면서 보아둔 토종닭과 토실토실한 토끼를 서리하러 가는 길입니다.
미리 보아둔 집에 다다라 닭 서리 선수인 박준형의 지시에 따라 장닭은 건들이지 않고
암탉만 닭 머리를 꼬아 날개에 접어 넣고 양 가슴에 한 마리 식 옷 속에 감추고는 순서대로 조용히 빠져나옵니다. 토끼는 원래 조용한 짐승이니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냥 옷 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다들 박준형에게 미리 배우고 연습을 해놓아서 신속히 일을 끝내고 그 집을 빠져나와 1번 국도로 접어듭니다.
모시울 다리를 다시 지나올 때 곽노동이
품고 있는 닭이 목이 가슴에서 빠졌는지 프다닥 거립니다.
이 곽노동은 원래 우리 패와 잘 어울리는 녀석은 아니지만 항상 어울리며 악동 짓을 하는 우리를 부러워해 같이 패에 넣어줄 것을 청했지만 우린 비싸게 굴며 거절했었는데
이날은 녀석이 군대 갔다 휴가를 온 날이라 거절을 못하고 데리고 온 것이지요.
그러서인지 “네 닭 조용히 시키라”는 핀잔에 녀석은 과잉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냥 품고 있는 양쪽 겨드랑이 팔에 좀 힘만 주면 될 일을 닭을 꺼내 머리를 잡고 하늘에 큰 원을 그리며 난간에 두 번을 내리 쳤습니다.
우린 속으로 “뭐 저런 녀석이 있나!” 하며 섬짓 하더라구요.
어쨋거나 이 곽노동은 3.4일후 충북 오송면 과의 경계인 중봉리 다리에서 군복을 입고 지나가는 헌병차를 막고 행패를 부리다가 51사단 헌병대에 끌려가 다음날 屍體가 되어 나왔고
그야말로 군사독재체제인 당시 어찌 손도 못써보고 별 보상도 없이 사건이 종료되었습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를 합시다.
말하자면 도둑놈들이라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이 두려워 경부선 철도를 택해 철로 길을 따라
우리들의 집이 있는 조치원시내 쪽으로 조용히 걸어갑니다.
지금의 홍대분교 정문 (신안2리)를 지나 짱구내 방앗간 앞을 지날 때 부산 쪽에서 오는 급행열차가 “부빵-” 긴 고함소리와 함께 강한 불빛을 내 쏘며 지나갑니다.
순간 우리는 잠시 앞이 안 보이는 암흑을 느꼈습니다.
그와 함께 “으악-!” 하는 긴 비명소리를 들었지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지만 앞이 보이기 시작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한 놈이 없어지고 앞엔 鐵橋 가 있었습니다.
그리곤 다리 밑에서 “끄 끄긍” 하는 신음소리가 났습니다.
김철호 란 놈이 너무 강한 기차 불빛 때문에 앞이 안보여 다리로 떨어진 것 이지요.
난 속으로 “아차 !”했습니다.
딴 놈들은 모르지만 난 술값이 궁하면 정미소를 하는 짱구에게 술값을 뺏으러 이곳에 자주 왔었기 때문에 이 다리에 물은 없지만 울퉁불퉁 바위투성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순간 모두 우린 가슴이 철렁. “어디로 올라 올수 있나?”를 생각하며 두리번두리번 녀석의 상태를 살피고 녀석이 올라오기를 기다립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렸는지 “으! 으! ”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우리가 서있는 쪽으로 기어옵니다.
이제 위로 기어 올라와야지요.
사실은 누가 내려가서 부축해 올려줘야 했지만, 다 같이 올라오려는 철호를 쳐다보면서 하는 말은
“야! 닭은? 토끼는?”
하지만 녀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아직도 양쪽 겨드랑이에 꼭 끼고 있는 토끼와 닭을 한 마리 식 우리에게 건네주었지요.
우린 안전한 토끼와 닭을 확인하고 다리를 못 쓰는 녀석을 부축해 끌어올렸지요.
안타깝지만 철호 녀석은 닭과 토끼를 먹지 못했습니다.
금이간 다리를 치료하고 얼굴과 팔 몇군데 꿰메느라
15일간 병원신세를 지며 한동안 깁스를 하고 집에서 근신해야 했지요.
사실은 우리도 제대로 먹지는 못했어요.
14마리나 되는 닭과 토끼를 어떻게 다 먹겠어요.
공연히 주위 어른들께 혼만 나고 주위사람 좋은 일만 했지요.
박준형이 왜 서리를 잘하느냐 구요?
중학교 때부터 화투놀음판에 끼어 노름을 했는데 일찍 아버님을 여의어 생활능력이 전혀 없는 어머니 맹 여사 밑에서 무슨 돈이 있겠어요? 돈이 있어야 놀음을 하지요.
방법은 남에 닭 서리 해서 음식점에 팔아 돈을 마련하는 수밖에.
푸대 자루를 들고 닭 2.30마리 훔치는데 단 5분이 안 걸립니다.
장닭을 안 건드리는 이유는 장닭이 소릴 내면 모든 암탉들이 당황해 시끄러워 집니다.
이 박준형은 골프선수 박세리의 바로 위 큰아버지입니다.
어제 그제 살고 있는 하와이에서 우릴 만나보러 일부러 왔습니다. 더 늙기 전에 옛날 6인의 악동들. 한번 모여서 회포를 풀자는 약속이 되어 있던지라 카나다에 이민가 우체국을 하던 김철호도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공항에서 세리 아빠 준철이 내준 차를 철호가 운전해서 준형의 바로위兄 박준성씨와 함게 인천공항에서 준형이를 pick up. 오고 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김만경에게 도착을 알리고 대전으로 오라는 연락만하면 되는 거지요.
김만경.
부자집 아들이었지요.
조치원 교동 국민학교 옆 평동 그 넓은 땅이 모두 만경이네 땅이었어요.
공부는 우리 모두와 같이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忠南高를 나와 東國大. 法大를 졸업.
좋은 직장도 다닐 뻔했지만 그때마다 연좌제에 걸려 좌절되었지요.
와세다 대학을 나오셨지만 人共(6.25)때 연기군 인민위원장을 하신 작은아버지.
그 밑에서 여맹위원장을 하신 큰누나. 쟁쟁하신 두분 때문에 어디도 들어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건물을 짓고 독서실을 하며 소일하더니 몇 년을 밥 한 끼 잡숫지 않고 술과 청요리로만
연명하시던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조치원 재산을 정리. 청주시내에 큰 건물을 장만해
스포츠 용품 대리점을 하며 살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모두 털어먹고 마누라하고도 이혼. 지금은 중僧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잠시 후 조치원에 사는 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김만경이 죽었다고요.
26일 세리아버지 박준철이네 집으로 가 박준형과 김철호를 만나고 충남 도 보건과장이던 임병천도 만났습니다. 준철네 집은 유성에 있더군요.
농촌지도소 있던 동네라고 하는데 큰길에서 한 부렄 들어가고.
주위엔 한참 아파트 공사도 하구요.
집이 참 어마어마합니다.
법원장 사택 두 채를 사들여 다시 지은거 랍니다.
참! 세상은 착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꼭 성공하고 출세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리는 산 증인이 바로 박준철입니다.
난 녀석이 10대 20대 적에 내력을 다 알고 있고 세리엄마도 대전여상 다니며 임신해서(세리언니 유리) 준철을 쫓아온걸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교양 있는 듯이 나오는 테레비 프로를 보며 씁쓸했었거든요.
“준철이 뭐하냐?” 했더니 둘째형 준성씨 하는말“ 야 !깡패가 할게 뭐있냐? 돈놀이 밖에.”
-나 원 참! 그 명성에, 그 귀한 돈 벌어서 겨우 사채업을 한단 말가?
그 큰돈을 가지고?-
다른 나무도 많지만 1억짜리 소나무만도 두 그루입니다.
잔디밭도 100평은 되겠던데요.
이 건물 안에 노래방만 3개고 화장실이 8개입니다.
야그가 그게 아닌데 딴 방향으로 갑니다.
뭐 어짜피 목적 없는 글이니 아무데나 흐르면 어떻습니까?
왜 죽었는지? 왜 하필이면 외국에 사는 친구까지 다 모이기로 해놓고 제일 친했던 준형이가
오는 날 죽었는지? 궁금해 하는 말을 나누며 조치원 신안동 중앙장례식장으로 향합니다.
딸만 셋. 마누라가 집을 나가게 된 이유 중 하나인 이 딸만 셋.
그중 막내딸은 선천성 소아마비. 심한 기형입니다. 가슴 아픔니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도 중이 될 때부터 얘들을 버린 격이니 훨씬 전부터 어린 언니들이 이 얘를 보살펴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 얘가 살아가게 될지.... 울컥 가슴이 막혀옵니다.
오늘 (27일)출상.
오늘도 역시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고 혼자 우두커니 지팡이를 짚고 하루 종일 그렇고 혼자 앉아 있습니다. 가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걸 보니 정신은 똑바른것 같습니다.
불쌍한 녀석에게 향을 살라주고 좋아했던 술을 한잔 더 딸아봅니다.
자살한 이유. 시원한 대답도 듣지 못하고 , 나쁜놈! 나쁜놈! 소리를 연발하는 이젠 80이 훨신 넘으시고 쪼그랑 할머니가 된 여맹위원장 출신 큰누님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떠나는 친구를 보냅니다.
영구차는 아무 말도없이 무심히, 정말 무심히 떠나갑니다.
우린 거길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시간 반 가량 아무 말 없이 그냥 거기에 그렇게 서 있었지요.
철호 준형이 나 병천이 은규. 그렇게 다섯이서요.
첫댓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우정은 영원한 것 --------몃날 밤은 뒤숭숭 했겠구려--- 친구는 아주 편안한 세상으로 갔겠지요 다정한 친구 다섯이 마지막 배웅에 동참했으니까요 행복한 친구였네요
다큐 멘타릴 같은 소설 ..또 한편의 성장 소설 같은 실화로다.. 실명이 더욱 와 닿고 이래서 우리들의 봄날은 가는가보이..................아 나는 낼 마라톤 간다네
건투를 바라며 좋은 기록 으로 완주하시길 하루종일 빌고 있을께. 조현세 화팅!
전번 친구 한명 보낼때도 한참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소화가 안되고 뭘 먹으면 가슴이 아프네. 그 세째 딸내미-학영이- 생각을 작구 해서 그런가? 생각을 안한다고해서 생각이 안나는것도 아니고... 제길헐.
저도 짧은글 잠시 읽으면서 한편의 소설을 영화화 한것 처럼 스처 지나가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성식성님을 사랑하는 사람 한명 추가요~~ 썩~스